Ziggi Loch : 연주자와 감상자를 연결하는 제작자

zl10월 6일 한국을 찾은 ACT 레이블의 수장 지기 로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막 문을 연 스트라디움에서 한 시간 동안 진행된 대화에서 이 노장 제작자는 작은 질문에도 특정 연주자들을 예로 들어가며 마음을 다해 답변을 해주었다. 대화를 통해 그는 제작자는 연주자와 감상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경영자 출신의 제작자이기에 가능한 생각이 아닐까 싶었는데 그것이 결국 레이블의 음악적 균형, 상업적 균형을 이루고 현재까지 레이블을 지속시키는 힘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적인 부분만 고려해 앨범을 제대로 알리지도 팔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작은 독립 레이블 제작자들에게는 깊이 생각해 볼만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나만의 레이블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낯선 청춘: 제가 알기로는 당신은 19세 때부터 30여 년간을 EMI, 필립스, WEA 등의 메이저 음반사의 유럽 쪽 경영자로 일했습니다. 많은 팝, 록 앨범의 제작과 판매에 관여했죠. 그런데 50이 다된 나이에 ACT를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재즈를 전문으로 하는 레이블이었을까요? 물론 재즈를 좋아하기 때문이었겠지만 오랜 시간 경영 쪽에서 일하신 분에게는 재즈 레이블을 만드는 것이 사업적으로 주저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지기 로흐: 제가 제일 처음 좋아한 음악이 재즈였습니다. 15살이었을 때 시드니 베쉐를 처음 들었죠. 그래서 재즈 연주자가 되고 싶어서 레드 어니언이라는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이 밴드로 스드니 베쉐, 루이 암스트롱을 연주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리 뛰어난 연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꿈은 컸지만 결코 내가 좋아하던 연주자들 수준으로 연주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재즈는 제 삶에서 매우 소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즈와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를 위해 음반사에 들어갔습니다. 제작자가 되기 위해서 말이죠. 그러면 언젠가는 나만의 레이블을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제 꿈이었어요.

알고 계시다시피 저는 음반사에서 영업 쪽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모든 장르의 앨범을 팔았죠. 재즈 앨범은 극히 적었습니다. 이후 재즈 레이블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리버사이드, 컨템포러리, 퍼시픽 재즈 등 여러 미국 재즈 레이블을 관리했습니다. 그 무렵 첫 재즈 앨범을 제작했습니다. 클라우스 돌딩어(Klaus Doldinger)의 앨범으로 1962년이었습니다. 클라우스 돌딩어는 지금까지 좋은 친구로 우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한편 1962년에 함부르크에는 스타클럽이라는 클럽이 있었습니다. 그 때 유명해지기 전, 그러니까 토니 쉐리던이 있었던 비틀즈가 그곳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 공연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전통적인 재즈에서부터 블루스, 리듬 앤 블루스까지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토니 쉐리던과 비틀즈가 들려준 음악은 리듬 앤 블루스의 영국 버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재즈는 아니지만 그룹의 음악이 재즈와 매우 가까운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스타 클럽에서 공연을 펼친 록 뮤지션들의 앨범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독일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밴드 래틀즈 같은 그룹의 앨범이 대표적이죠. 이 그룹은 1865년 영국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그 때 롤링 스톤즈가 오프닝 밴드로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웃음) 어쨌건 초기 록 앨범을 제작해서 저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전문 제작자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었습니다.

1971년에는 당시 워너 인터내셔널을 설립 중이었던 네수히 에르트건으로부터 합류제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 재즈 레이블을 만들고 싶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만류했습니다. “지기 재즈는 돈이 되지 않아” 하면서 말이죠. 결국 워너에 합류한 후에 저는 롤링 스톤즈를 비롯한 여러 유명 록 아티스트의 앨범을 팔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몇 재즈 연주자들의 앨범 제작을 돕기도 했습니다. 장 뤽 퐁티의 첫 앨범을 제작하기도 했고 조지 그룬츠의 첫 앨범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작을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알 자로가 워너와 계약을 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요아킴 쿤이 아틀란틱 레이블과 계약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고요. 클라우스 돌딩어와는 여전히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 참으로 다양한 장르의 앨범을 판매했습니다. 그 결과 워너의 유럽 지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참 좋은 일이었죠. 삶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저는 돈이 많고 충분히 자유로운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막 50대가 되었었죠. 그때 저는 이제는 재즈 레이블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워너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제게 ACT는 사업이라기 보다 좋아서 하는 일의 성격이 강합니다.

낯선 청춘: 아주 먼 길을 돌아서 당신의 레이블에 도착한 것이었군요. ACT의 첫 앨범으로 당신은 빈스 멘도사가 이끄는 WDR 빅 밴드의 <Jazzpaña>를 선택했습니다. 첫 앨범으로 빅 밴드 앨범을 제작한다는 것은 다소 모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당신이 당시 스페인에서 머무르고 있었고 그때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앨범 제작에 이르렀다는 것을 듣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재정적인 상태가 좋지 않았다면 모험을 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지기 로흐: 오래 전부터 저는 이 앨범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재즈사의 중요한 명반 중의 하나로 마일스 데이비스가 길 에반스와 함께 했던 <Sketches Of Spain>를 꼽습니다. 진정한 미국의 재즈 앨범이죠. 약간의 유럽 향기를 곁들였지만 말이죠. 그런데 후에 이 앨범이 플라맹코를 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965년에 저는 앨범 한 장을 제작했습니다. 진정한 플라맹코 음악을 담고 있는 앨범이었습니다. 당시 필립스 레이블을 통해 발매했는데 다음 달에 제가 판권을 다시 사서 재발매 될 예정에 있습니다.

낯선 청춘: 아. 그렇군요.

지기 로흐: 아무튼 이 앨범을 제작하면서 저는 플라맹코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ACT를 시작하면서 저는 <Sketches Of Spain>과 같은 아이디어에 기반한 앨범, 하지만 스페인 재즈 연주자와 플라맹코 연주자가 정상의 미국 연주자와 같이 어울리는 앨범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길 에반스는 제 우상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을 떠나고 없죠. 그래서 저는 쾰른에 있는 WDR 빅 밴드의 책임자였던 볼프강 힐슈만에게 제 생각을 말했습니다. 그 또한 제 생각에 열렬히 동의했습니다. 그렇게 스페인 연주자, 미국 연주자 그리고 빅 밴드가 갖추어지자 작, 편곡자가 필요해졌습니다. 저는 그 때 아리프 말딘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미국 팝 음악의 위대한 제작자 중의 한 명이죠.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 수 많은 팝 명반을 제작한 그는 재즈와 플라맹코 음악 애호가이기도 했습니다.

아리프 말딘은 제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도 앨범 전체를 다 책임질 수는 없고 3악장으로 된 조곡 정도만 작곡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고 했죠. 그 때 볼프강 힐슈만이 미국에 있는 젊은 친구 하나를 알고 있다고 했는데 그가 바로 빈스 멘도사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앨범의 나머지 부분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WDR 오케스트라는 제게 무료로 녹음에 참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나머지 부분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 비용을 저는 스패인 작가 협회를 통해 해결했습니다. 협회는 제 생각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좋아했죠. 그래서 제게 25000달러를 주었습니다. 큰 돈이었죠. 그렇게 해서 앨범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였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낯선 청춘: 이 앨범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면 ACT의 역사는 계속될 수 없었을 지도 모르겠군요.

지기 로흐: 그렇죠. 하지만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이 첫 ACT의 앨범은 그래미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낯선 청춘: 그렇다면 레이블을 시작할 때 나는 이런 앨범을 만들겠다는 일종의 제작 방향이 정해져 있었나요?

지기 로흐: 저는 재즈를 순수주의자적인 관점에서만 보지 않습니다. 사실 재즈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특히 평론가들이 그런데요. 이것은 재즈고 저것은 재즈가 아니다, 재즈는 이러저러한 형식을 지녀야 한다는 식으로 엄격히 구분하는 것을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재즈는 언제나 자유의 음악이었습니다. 초기 뉴 올리언즈 재즈만해도 여러 스타일이 섞여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음악, 미국 포크 음악, 쿠바나 카리브해 쪽의 음악, 그리고 유럽의 음악 특히 프랑스 브라스 밴드로 구성된 행진 음악이 섞여서 만들어졌습니다. 어쨌건 제게 재즈는 열려 있는 음악이자 그러한 음악이어야 합니다.

레이블을 시작할 때 저는 저 스스로 연주자를 발굴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살고 있지 않으니까 어떻게 미국 연주자를 발굴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유럽 연주자들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 결과 자연적으로 ACT는 유러피언 재즈 레이블이 되었습니다. 물론 몇몇 미국 연주자들의 앨범도 제작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유럽 재즈 앨범에 보다 많은 공을 들이게 된 것이죠.

스타일로서 유러피언 재즈는 없습니다

낯선 청춘: 저는 ACT를 1994년 무렵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레이블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죠. 그런데 그 당시에 제작된 앨범들이 대부분 유럽의 포크, 민속적인 성향의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레이블을 시작할 때의 제작 방향에 대해 질문을 드렸던 것입니다. 아무튼 말씀 중에 “유러피언 재즈”라고 하셨는데 실제 유러피언 재즈가 지역이 아닌 스타일의 차원에서 존재한다고 보십니까?

지기 로흐: 아니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성공한 유럽 연주자들의 음악에서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나온 것 같습니다. 유럽 연주자들은 특히 미국 재즈 연주자들을 흉내 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60년대 많은 유럽 연주자들은 그리 독창적이지 않은 연주를 펼쳤습니다. 그들보다 훨씬 더 잘 연주하고 창의적이었던 미국 연주자들의 것을 연주 했죠. 1962년 피아노 연주자 얀 요한슨 정도가 그만의 재즈를 연주했을 뿐입니다.

낯선 청춘: 저 얀 요한슨의 음악을 매우 좋아합니다.

지기 로흐: 아 그래요? 1960년대 유럽의 젊은 연주자들은 미국 재즈에 초점을 맞추어 연주를 했습니다. 스탄 겟츠 그룹의 공식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 중이었던 얀 요한슨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이를 보고 당시 스웨덴이 거주하고 있었던 퀸시 존스는 유럽 연주자들에게 “이봐. 자네들 연주는 매우 좋아. 하지만 보다 더 독창적일 필요가 있어. 그러려면 자네들만의 음악 유산을 집중해서 파고 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아”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음악만 듣지 말고 유럽 음악도 들으라는 것이었죠.

그 뒤로 시간이 흘러 지금의 젊은 유럽 연주자들을 살펴볼까요? 과거의 연주자들은 독학으로 재즈를 배웠지만 지금의 젊은 연주자들은 모두 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합니다. 게다가 클래식을 제일 먼저 공부하곤 하죠. 그래서 재즈를 연주하더라도 클래식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편 지금의 재즈는 록이나 팝적인 부분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발굴했던 에스뵈욘 스벤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늘 제게 키스 자렛을 제일 처음 들었냐고 물어봅니다. 그런데 아니에요. 제가 제일 처음 들었던 음악은 쇼팽이에요. 제 어머니가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였고 쇼팽을 좋아하셨죠. 그래서 저도 쇼팽을 좋아합니다. 다음으로 록 그룹 슬레이드의 음악을 들었고 그리고 한참 후에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유라는 재즈의 기본 철학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이죠. 그렇게 클래식과 록은 그만의 음악이 만들어지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음악이 팝 음악처럼 들리길 바랬습니다. 이런 점들이 과거의 유럽 재즈와 지금의 유럽 재즈의 차이를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청춘: 저도 동의 합니다. 하나의 스타일로서 유러피언 재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많은 감상자들은 유러피언 재즈라는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답변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말씀하신 것처럼 요즈음 등장하는 젊은 연주자들은 재즈에서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클래식, 월드 뮤직, 팝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곤 합니다. 이들의 음악을 ACT에서 많이 수용하고 있기도 하죠. 그런데 오랜 시간 재즈를 들어온 사람으로서 때로는 어떤 음악은 아무리 자유롭게 생각을 해도 재즈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재즈를 오래 듣다 보면 일정 부분 보수적인 경향이 생기지 않을까요?

지기 로흐: 아니요. 일단 ACT 레이블에서 발매되는 모든 앨범은 제 취향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제 재즈를 하나의 스타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재즈 안에 실로 많은 스타일이 존재하죠.

낯선 청춘: 재즈가 많이 개인화되기 때문이죠?

지기 로흐: 맞습니다. 개인화 되었죠. 그래서 많은 스타일의 재즈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제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도 있습니다. 또 어떤 재즈는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ACT를 통해 앨범을 발매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ACT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상업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 그리 잘 팔리지 않는 스타일의 재즈가 있습니다. 저는 이 불확실한 것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팔 수 있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음악은 앨범으로 발매하지 않습니다.

루드레쉬 마한타파의 음악을 예로 들어보죠. 그의 음악은 분명 상업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주자는 정말 대단하죠. 이 경우 저는 “난 당신과 당신의 음악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도와주고 싶다. 하지만 당신의 음악을 모두에게 팔 수 없으리라는 점은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앨범을 만들고 홍보하는 것에 있어서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라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알아요 이해합니다. 당신이 내 음악을 좋아한다니 기쁘네요. 한번 같이 해보죠”라고 답했습니다. 다행히 그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공연을 펼칩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천 장을 팔고 미국에서 이천 장, 프랑스에서 오백 장 등 곳곳에서 앨범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만 장의 앨범을 판매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이처럼 저는 저만의 취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싫어하는 음악은 앨범 제작을 하지 않습니다.

낯선 청춘: 그렇다면 새로운 연주자들은 어떻게 찾아냅니까?

지기 로흐: 처음에는 곳곳을 다니면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연주자가 나오는 공연보다는 모르는 연주자의 공연을 보러 다녔습니다. 23년이 지난 지금은 레이블을 통해 앨범을 발매한 연주자들이 그 역할을 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처음 닐스 란드그렌과 계약을 합니다. 그리고 닐스 란드그렌은 한 때 그의 펑크 유닛의 키보드 연주자였던 에스뵈욘 스벤슨을 데려옵니다. 라스 다니엘슨의 경우 울프 와케니어스를 데려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윤선과 함께 앨범을 녹음합니다. 저는 나윤선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함께 앨범을 녹음하고 울프 와케니어스가 나윤선의 매니저인 인재진을 제게 소개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저는 여러 곳을 다니면서 직접 새로운 연주자를 찾고 있습니다. 미지의 음반을 구입하고 공연을 보면서 찾아냅니다. 사실 저는 직접 그 연주자의 공연을 보지 않고는 계약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미하일 볼니가 그랬습니다.

낯선 청춘: 나윤선씨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사실 나윤선씨가 ACT와 계약 전에 인재진씨가 제게 프랑스의 나이브와 ACT 사이에서 어떤 선택이 좋을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ACT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웃음)

지기 로흐: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제작자는 아티스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낯선 청춘: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였구요. 그렇다면 당신은 제작자로서 어디까지 앨범 제작에 관여합니까?

지기 로흐: 일단 저는 ACT의 모든 앨범을 제작하지 않습니다. 저는 스튜디오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웃음) 중요한 점은 제가 아티스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더 나은 앨범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인데요. 여기서 더 나은 앨범이란 아티스트의 예상보다 더 잘 팔리는 앨범을 의미합니다. 저는 제가 아티스트와 감상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반사는 팔기 위해 앨범을 제작하죠. 그래서 연주자들의 녹음을 보면서 제가 그것을 팔 수 있겠다고 확신을 갖곤 합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두 개의 귀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예술적 귀죠. 아티스트들이 음악을 통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는 것입니다. 다른 쪽 귀는 감상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듣습니다. 그래서 제 머리 속에서 이를 결합합니다. 그 뒤 아티스트들을 도우려고 하는 것이죠.

팔리는 앨범을 제작하는 것은 예술적이지 않아 보일 지도 모릅니다. 그저 돈을 위한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티스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한 아티스트에게 앨범이 잘 팔리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아티스트가 상관 없다고 하면 저는 “그렇구나 안녕 잘가”라고 이별을 고합니다. 그가 앨범을 팔고 싶지 않는 아티스트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티스트가 앨범을 잘 팔고 싶다고 말한다면 저는 “좋아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 지 살펴보자”고 합니다. 아티스트는 음악을 연주하면서 감상자에게 시선을 돌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앨범을 구입하니까요. 이 때문에 저는 종종 논쟁을 벌이곤 합니다. 대부분의 요즈음의 젊은 아티스트들은 자신이 쓴 곡으로만 앨범을 제작하려고 하곤 합니다. 아티스트로서, 재즈 아티스트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죠.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 저는 “그거 알아? 그런데 감상자들은 네가 쓴 곡을 다 이해하지 못할 수 있어. 그래서 감상을 포기하곤 하지”라고 합니다. 제 말에 대부분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존 콜트레인을 좋아하나? 그런데 그의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앨범이 무엇인지 아나?”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모두 <A Love Supreme>이라고 대답을 하죠. 존 콜트레인의 예술적 성취가 가장 높은 앨범이니까요. 하지만 가장 상업적인 앨범은 아니었습니다. 아틀란틱 레이블에서 발매된 <My Favorite Things>였죠. 이 앨범에서 그가 연주한 곡들은 모두 브로드웨이 히트 곡들이었습니다. 그가 작곡한 곡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앨범은 진정 존 콜트레인의 것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이들 곡들을 그만의 것으로 바꾸었으니까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곡들을 사용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하려고 했던 음악을 감상자가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하나의 예로 종종 이용합니다. 현재 성공을 이어가고 있는 아티스트인 미하일 볼니의 트리오 앨범을 제작할 때 그랬습니다. 그의 트리오는 자작곡만으로 다섯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만들었습니다. 조금씩 우리는 앨범 판매량을 높여 삼 천장 정도 판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독일에서만 말이죠. 그런데 다섯 번째 앨범을 자작곡으로만 채워 완성했을 때 저는 더 멀리 나가고 싶다면 조금 다른 것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크래프트베르크의 곡,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1악장”을 편곡한 것, 슈베르트의 소품 등 제가 선택한 세 곡을 연주해 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들 곡을 나보다 당신들이 더 잘 알고 있잖아. 그러니 한번 연주해보는 것이 어떨까?”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연주를 해보았고 트리오는 그 연주에 매우 만족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전보다 두 배 이상으로 앨범을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낯선 청춘: 그 앨범이 <Weltentraum>이었던가요?

지기 로흐: 아니죠. 그 앨범은 다음 앨범이었고 <Wasted & Wanted>였습니다. <Weltentraum>은 제가 처음으로 제작 전체를 담당한 미하일 볼니의 앨범이었습니다. 힌데미트, 알반 베르그 같은 작곡가의 곡들을 연주한 앨범이었습니다. 미하일 볼니의 이전 앨범들과는 다른 성격의 앨범이었습니다. 이처럼 제작자는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한편 감상자들을 불러모아야 합니다.

저는 제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연주자를 찾습니다.

낯선 청춘: 저는 제 머리 속에 듣고 싶은 음악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작자가 아니라 일반 감상자라서 그 음악을 찾기 위해 앨범을 구입하고 또 구입합니다. 당신은 직접 발굴하거나 다른 연주자의 소개를 통해 연주자를 만나 앨범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적당한 연주자가 나타나면 만들어야지 하고 있는 음악이 있나요?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만들고 싶은 앨범이 있습니까?

지기 로흐: 늘 그렇습니다. 저는 늘 제 생각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연주자를 찾습니다. 그것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아티스트는 자신이 하고픈 것을 너무나 명확히 알고 있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에스뵈욘 스벤슨이 그랬습니다. 그에게 무엇을 녹음해야 할 지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녹음한 것이 성공을 거둘지 아닐 지가 문제였죠. 그와 저는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음악 자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앨범에 수록될 곡을 정하는 것에 대해서만 대화를 했죠. 그는 늘 앨범에 수록될 것보다 더 많이 녹음했거든요. 보통 그는 대여섯 시간 분량을 녹음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앨범 한 장을 만들려면 얼마나 녹음해야 하는지 묻는 미국 연주자들과는 달랐죠. 그는 “이게 내가 생각한 음악인데 이걸로 성공을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하며 묻곤 했습니다.

이로 란탈라의 경우 최근 존 레논 헌정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의 아이디어는 그에게서 나왔습니다. 전 존 레논을 잘 압니다. 스타 클럽에서 그를 많이 봤습니다. 저는 그의 음악을 존중합니다. 저는 재즈를 알기 전에 이미 존 레논을 알았고 헬싱키에서 합창단에서 그의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음악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특히 그 간결한 맛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재즈적인 것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로 란탈라는 존 레논의 음악이 지닌 깊이에 감명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지적인 의미를 지닌 가사도 환상적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올 해 10월 9일이면 존 레논이 75세가 되는데 이를 기념해 헌정 앨범을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앨범을 제작했죠.

그런데 이후 공연을 기획할 때 저는 존 레논과 에스뵈욘 스벤슨에 대한 헌정 공연을 하자고 했습니다. 이로 란탈라는 왜냐고 했죠. 하지만 제 생각에 두 사람은 잘 어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떠났죠. 그리고 존 레논은 40세에 세상을 떠났고 에스뵈욘 스벤슨은 44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을 주제로 공연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공연을 했는데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그걸 녹음했는데 후에 앨범으로 발매될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저는 앨범을 제작합니다.

낯선 청춘: 아까 음악적인 부분과 상업적인 부분 모두를 고려한다고 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음악은 좋더라도 판매가 어려운 앨범들을 연달아 제작하게 될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랬을 때 음악적으로 훌륭하지만 덜 팔리는 앨범과 대중적인 앨범을 계산해서 발매 시기를 결정하나요?

지기 로흐: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직관에 의해 결정됩니다. 누구도 성공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성공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 성공을 하지 못하곤 하죠. 대중은 매우 예측하기 어려운 모험을 요구하는 구매자입니다. 매우 위험스럽죠. 위험이 없으면 즐거움도 없다라는 말을 이 있지요? 이를 바꿔 저는 위험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위험을 안고 가야 합니다. 안전만을 추구한다면 도태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만의 취향이 제일 중요합니다. 저는 제 취향을 믿습니다.

재즈 연주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연주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재즈 연주자는 팝이나 클래식 연주자들처럼 하나의 연주자일 뿐입니다. 연주자로서 그는 진실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험을 즐겨야 합니다. 그리고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특별한 재즈 앨범 제작자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재즈 앨범을 제작하는 평범한 제작자일 뿐입니다. 제 임무는 그것을 성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 일입니다.

낯선 청춘: ACT를 통해 꾸준히 앨범 활동을 이어가는 연주자도 있지만 최근 야론 허먼처럼 블루 노트 같은 조금 더 큰 레이블로 자리를 옮기거나 비제이 아이어처럼 이웃 ECM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가는 연주자가 보입니다. 그래서 연주자와의 계약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며 언급한 연주자들처럼 ACT를 통해서 성장해서 자리를 옮기는 연주자들에 대해서 서운함 아쉬움은 없나요?

지기 로흐: 계약은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재즈를 계속 하는 것과 부자가 되는 것은 별개 입니다. 저는 레이블을 만들기 전에 돈이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를 설립한 것이니까요. 저는 미술, 연극. 음악 특히 현대 미술 수집을 좋아하는 마니아이지만 사업가 이기도 합니다. 사업가로서 저는 회사가 성공가도를 달리도록 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재즈계에서는 부자가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재즈를 다루는 회사는 그 지속가능성을 늘 고려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연주자와의 모든 계약을 체계화합니다. 그리고 경쟁도 해야 합니다. 연주자는 그리 조건이 좋지 못한 계약을 했다고 생각하면 바로 계약을 해지합니다. 그것은 결국 회사에게도 좋지 못한 계약, 해를 끼치는 계약이 됩니다. 그러므로 게임의 법칙을 지켜야 합니다. 한 아티스트의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사업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제가 제작한 앨범들은 모두 매우 개인적인 인간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옛날 대형 음반사에 있었을 때와는 다릅니다. 그 때는 변호사가 개입하고 계약서에 이런저런 조항들을 살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재즈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요. 저는 몇몇 믿는 사람들과의 계약에서 실수를 했습니다. 저는 그의 음악이 좋았고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좋았기에 그들이 저를 사업가가 아니라. 친구로 대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저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음을 알고 매우 실망하곤 했습니다. 사업가로서 매우 어리석었던 것이죠. 사업가라면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매우 감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이 종종 생깁니다.

낯선 청춘: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게 된 이유는 며칠 전 야론 허먼의 새 앨범 <Everyday>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ACT에서의 앨범보다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ACT에서 조금 더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래서 당신도 조금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도와줄 수 있는데 그가 떠나서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질문한 것이었습니다.

지기 로흐: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죠. 야론 허먼의 경우 그는 매우 좋은 친구입니다. 아직 ACT와 그는 계약이 남았습니다. 한 장의 앨범을 더 제작해야 합니다. 그런 중에 그가 이 앨범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솔직히 그가 이번에 발표한 앨범을 저는 듣지 않았습니다. 모릅니다. 하지만 이 앨범 제작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앨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는 솔로 피아노 앨범을 만들기 위해 팝 쪽의 제작자를 부르고 싶어했습니다. 이런 그의 생각에 저는 “야론 나는 그게 좋은 생각으로 보지 않아”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야론 허먼은 그 앨범을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 “네가 그 앨범을 만들고 싶고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할 수 없네. 하지만 우리가 함께 만들 수는 없을 것 같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아마도 그런 것 같네요. 좋아요. 그럼 계약을 끝내고 그냥 친구로만 남죠.”라고 했습니다. ACT를 떠난 뒤에도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 아담 발디치와 앨범을 레이블에서 한 장 만들었습니다

야론 허먼은 제게 친구입니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분명 그는 한 아이디어가 있었고 그걸로 앨범을 만들고 싶었죠. 저는 그게 그리 좋지 않다고 보았구요. 상업적으로는 비현실적 예술적으로는 설득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봐. 넌 네가 하고픈 것을 해라 난 내가 하고픈 것을 할게”라고 했습니다. 그 뿐입니다. 저는 그에게 불만이 없습니다.

또 다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노래를 매우 잘하는 보컬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독일어 가사를 붙여 마이클 부블레처럼 빅 밴드를 배경으로 노래한 앨범을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앨범이 매우 멋질 것이라 생각되지만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제작할 앨범이 아닌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레이블에서 앨범을 녹음했습니다. 그 앨범은 제가 제작한 모든 아티스트들의 앨범 판매량을 합합 것 보다 더 많이 팔렸습니다. 백만 장 이상 팔렸어요. 그래서 저는 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친애하는 로제, 축하하네. 내가 앨범 제안을 거부한 것이 네게 최고의 일이 되었구나”라고 말이죠. 그가 누군가 하면 로제 시세로입니다. 매우 환상적인 피아노 연주자였던 유진 시세로의 아들이죠. 로제 시세로는 아주 멋진 남성이자 훌륭한 보컬입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팝적이라 생각합니다. ACT는 팝 음악 레이블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작을 거절한 것인데 그래도 친구로서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물론 누군가를 믿는다면 같이 일할 때 포괄적인 부분에 있어서 서로 잘 이해합니다. 계약도 필요 없죠. 그런데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그가 다른 레이블과 예약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매우 화나는 일이죠. 제게도 그런 일이 있기는 했지만 다행히 많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낯선 청춘: ACT는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잘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처음 시작할 때보다는 전반적으로 음반 시장이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재즈도 그렇죠. 그 때와 지금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지기 로흐: 음악은 계속 성장 중에 있습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음악이 있죠. 멋진 음악과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음반 시장은 추락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아티스트의 앨범을 제작하고 홍보하는 비용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계속 사람들이 인터넷, 스트리밍 등으로 무료로 듣는다면 미래에는 누가 아티스트의 발전을 위해 비용을 지불할 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할까요? 삼성? 정부? 미술 같은 경우 누가 위대한 화가들에게 돈을 지불할 까요? 그림을 수집하는 슈퍼 리치들이 어떤 작품이 좋은지를 결정하는 상황입니다. 그들이 구매하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음악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게 문제죠.

낯선 청춘: ACT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웃음)

지기 로흐: 전 예언가가 아닙니다. 그저 앨범 제작자일 뿐이죠.(웃음)

낯선 청춘: (웃음) 나이도 있으신데 언제까지 제작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지기 로흐: 디지 길레스피가 한 말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I Will Bop, Until I Drop”

낯선 청춘: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16 COMMENTS

  1. 오호! 좋은 생각입니다. 좋아요에 한표!

    참…다른 분들 하기 전에 낯선청춘님 자신을 인터뷰해보시는 건 어떠신지?
    ‘다른 나’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으면서도 ‘말랑말랑하며 예민하며 약간은 우울한 나’를 잠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 하하하..
      그런데, 그건 진정한 인터뷰가 아닌 것 같은…?! ㅋㅋ

      제가..특정인물의 생애사연구를 시도한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지도교수님이 그 사람 인터뷰하기 전에 너 자신을 너가 한번 인터뷰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굉장히 신선한 경험을 했었습니다. 자서전적 글쓰기 이상의 뭔가가 있더라고요. 주관적인 나와 객관적인 나를 교묘하게 오간다랄까요..

      암튼, 인터뷰 모음집은 정말 기대됩니다~!

    • 나를 인터뷰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죠. 답을 아니까….새로운 무엇을 찾기 어렵죠. 반대로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려면 그래서 다른 인터뷰어가 하지 못했던 부분을 꺼내려면 그를 좀 알아야 합니다. 그게 어려워요.ㅎ

    • 흠…정말 그러네요. 뻔한 인터뷰가 아닐려면요..

      제가 이 분야 전문가라면 당장이라도 낯선 청춘님 인터뷰를 하고 싶지만..^^
      멀지 않은 언젠가는 낯선 청춘님을 인터뷰이로 한 내용을 꼭 보고 싶기도 합니다~!

    • 저 처럼 댓글로 의견을 표현하지 않으셔도 여기들어오시는 분들 상당수가 저와 같은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만.. ^^

    • 아이쿠..ㅋㅋ ;; 인터뷰하시는 분이 낯선청춘님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안하셨군요!

  2. 많은 경험을 한다고 해서 이렇게 ‘멋지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은데..Ziggi Loch 멋진 분이네요.

    순수주의자적 관점이 아니라 곡의 재구성은 늘 열려있다는 것, 제작자로서의 판단 또한 직관적이라는 답변에..내공이 보통이 아니시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Ziggi Loch 맞은편 분이 낯선청춘님이신가요?

    • 맞습니다. 맞은편 뒷모습이 접니다. ㅎ 지기 로흐는 어찌보면 상업적 제작자로서의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또 그런 성향이 연주자들이 음악을 지속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이번 만남을 통해 들었습니다. ㅎ

    • 재즈 스페이스라는 공간과 특유의 문체와 외모적으로 풍기는 분위기가 일치하는 분을 만나는게 흔치는 않은데…^^

      이번 인터뷰가 낯선청춘님에게 의미있는 인터뷰였군요..
      결국 상업적인 면과 음악가가 추구하는 것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게 관건이긴 한데… Ziggi Loch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균형점의 그 미묘한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인터뷰 질문이 구체적이니 Ziggi Loch가 이렇게 썰을 많이 풀어내신 듯하네요.잘 읽었습니다~!

    • 제가 영어를 잘하면 조금 더 깊은 이야기가 가능했을 것 같은데…짧아서…그냥 일반적인 질문, 당사자는 수 없이 받았을 질문만 한거죠..ㅎ 제 분위기는 뭐 그냥 그렇습니다. ㅎ

    • 하긴…전문가이시고 인터뷰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법 합니다.. 그래도 독자입장에서는 좋았다는..^^

      하하…쑥쓰러워하시다니..슬쩍 보이는 얼굴 옆모습에서 섬세함과 예민함이 언뜻 느껴져서, 단지 제 주관적 느낌을 표현한 것뿐입니다~

    • 막상 실체를 알게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ㅎㅎ 인터뷰는 제가 좋아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을 인터뷰해서 그걸 책으로 내는 것도 해보고 싶은 일의 하나입니다.ㅎ 그러려면 제가 그 사람을 먼저 많이 알아야 하는데 또 그건 게을러서..ㅎ

댓글

KOREAN JAZZ

About Happiness – 조남혁 (윈드밀이엔티 2017)

행복에 대한 희망을 담아낸 연주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 연인, 가족, 학교, 회사, 국가 등 다양한 조직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판단하는...

Alone Together – 시앙 (The Open Music 2009)

앳된 모습에 본명 대신 ‘毸雵’이라는 예명에서 평범한 가요 앨범을 생각한 감상자들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표지의 주인공이 들고 있는 색소폰을 보라. 이 앨범은 이제...

CHOI'S CHOICE

‘Round About Midnight – Miles Davis (Columbia 1955)

마일스 데이비스의 이름은 거의 전 사조에 편재한다. 그만큼 연주실력 외에 음악적으로 앞을 내다보는 시각이 뛰어남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이 가장...

최신글

Plucked’N Dance – Édouard Ferlet, Violaine Cochard (Alpha411 2018)

피아노 연주자 에두아르 페를레와 하프시코드 연주자 비올랜 코샤르는 지난 2015년 앨범 <Bach: Plucked/Unplucked>에서 바흐의 클래식에 대한 색다른 시선을...

The Balance – Abdullah Ibrahim (Gearbox 2019)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 만약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Blue Note: Beyond The Notes – Sophie Huber (Mira Film 2018)

올 해로 블루 노트 레이블이 창립 80주년이 되었다. 독일 이민자 알프레드 라이언과 프랜시스 울프에 의해 1939년에 설립된 블루 노트는...

김현철 – Drive

https://youtu.be/LKT9JMvUKB4 빛과 소금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외에 요즈음 길을 걸을 때 한 두 번씩은 듣는 노래가 하나...

빛과 소금 –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https://youtu.be/7a-Fpt6dR0I 음악은 때로 있지도 않은 추억을 만들어 낸다. 요즈음 빛과 소금의 “내 곁에서 떠나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