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Best Jazz Albums 30

드디어 2021년 나를 사로잡은 앨범 해외편 30장을 소개한다. 지난 해는 정서적으로 너무 피곤했다. 그것이 나이 듦과 만나 일종의 무기력증, 우울감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지난 해 나는 복잡하고 치열한 연주에 그리 마음을 주지 않았다. 긴장 없는 유럽식 서정이라 하는 것에도 다소 시큰둥했다. 그보다는 직선적이고 전통적인 스타일의 연주, 단순 담백한 연주를 더 많이 들었다. 그 결과 예년과는 다소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또한 이번 선정은 최근 몇 년간 가장 개인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사실 지난 해 들었던 300여 장의 앨범 중 후보작으로 70여 장을 분류하고 여기서 다시 30장을 선정했지만 예년에 비해 확연히 눈에 띄는 앨범이 많지 않았다. 2021년의 수확이 그렇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전에 내 마음이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므로 무조건 추천이라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이 리스트에서 한 두 장 당신의 귀를 열게 만드는 앨범이 나오길 바란다.

30
Sachal Vasandani & Romain Collin – Midnight Shelter (Edition)

보컬 사찰 바산디니와 피아노 연주자 로맹 콜랭의 이 듀오 앨범은 “한 밤의 도피처”란 타이틀에 걸맞게 달콤한 고독으로 가득했다. 다만 혼자 덤덤히 부르는 발라드 성향이 더 강했기에 재즈의 맛이 상대적으로 덜해서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너무나도 고요해서 외로운 밤에는 저 멀리 들리는 누군가의 희미한 목소리만으로 위안을 얻듯이 두 사람의 연주와 노래는 허한 내 가슴을 채웠다. 술 한잔할 기분마저 들지 않는 지친 영혼을 위한 안식의 노래였다.

29
Nate Smith – Kinfolk 2: See the Birds (Edition)

이것도 재즈야? 하는 경계에 놓인 음악에 나는 관심이 많다. 이 때 경계는 내가 알고 있는 영역 사이에 놓인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 위험성, 모험성을 알 수 있으니까. 드럼 연주자 네이트 스미스는 이번 앨범에서 재즈, 소울, 펑크, 록, R&B 모두를 분할하는 매우 복잡한 경계에 놓인 음악을 선보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균형을 잃고 어느 한 쪽으로 위태로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그 위험을 기꺼이 즐긴 음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 장르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들이 최전선에서 만났다는 것이 좋았다.

28
Patricia Barber – Clique! (Impex)

지난 2019년도 앨범 <Higher>는 시적인 노래를 부르는 파트리시아 바버의 매력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러나 메이저 레이블 발매가 아니어서 인지 음악에 어울리는 주목을 받지는 못한 것 같다. 를 녹음하고 남은 시간에 편안하게 녹음한 곡들을 담은 이번 앨범도 그 길을 걷고 있는 듯. 그러나 모처럼만에 자작곡이 아닌 스탠더드 곡 중심으로 노래하고 연주했다는 것, 그래서 초기 앨범의 분위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었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특별한 주목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녀의 음악을 어렵게 만드는 어두운 색채가 연해진 것도 색다르게 다가왔다.

27
Gary Brunton – Night Bus: Second Trip (Juste Une Trace)

베이스 연주자 게리 브룬튼-게리 버튼이 아니다-을 중심으로 피아노 연주자 보얀 Z, 드럼 연주자 시몽 구베르가 함께 한 트리오의 이번 앨범은 타이틀만 두고 보면 매우 고즈넉한 연주를 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실제는 매우 직선적이고 뜨거운 포스트 밥 연주를 담고 있다. 늦은 밤 승객 한두 명만 있는 쓸쓸한 버스가 아니라 이런저런 밤의 즐거움을 만끽 한 후 고기 냄새, 술 냄새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승객들로 가득한 버스 같은 연주였다. 다소 소란스럽지만 그것이 또 밤 길을 즐겁게 만드는. 취한 듯 자유로우면서도 노선을 벗어나지 않는 세 연주자의 어울림이 특히 좋았다.

26
Nikolai Olshansky – New Places (La Note)

새로운 앨범의 선호는 내 취향을 이루는 여러 스타일들이 어떤 비중으로 결합되어 있는가에 달린 것 같다. 새롭더라도 전혀 생소하면 안된다는 것. 러시아 출신의 베이스 연주자 니콜라이 올샨스키의 이 첫 앨범도 연주자, 곡, 연주 자체는 처음이었지만 시간을 축으로 수평적으로 흐는 연주와 약간의 우수를 머금은 서정성에서 과거 팻 메시니를 들었을 때를 추억하게 했다. 그렇다고 질감이 비슷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장소”를 주제로 이동에 이동을 거듭하는 연주를 펼쳤기 때문일 것이다. 이동하면 풍경은 변한다. 이 앨범에 담긴 풍경도 다양했다. 그래서 듣는 내내 나는 여행을 꿈꾸었다. 비행기가 아닌 기차 여행을.

25
Jazzmeia Horn and Her Noble Force – Dear Love (Empress Legacy)

재즈메이아 혼은 그저 보컬로만 규정 짓지 어려운 부분이 있다. 작곡을 해서가 아니다. 설정한 음악적 방향이 개성적이어서이다. 빅 밴드와 함께 한 이번 앨범은 남들과 다른 그녀의 음악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 그렇다고 그 다름을 위해 새로운 무엇인가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익히 알려진 전통적인 요소로만 자신만의 노래와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비밥과 길 에반스의 우아한 빅 밴드 질감의 결합으로 요약할 수 있다. 흔치 않지만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결합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녀의 노래와 어울려 매우 참신한 순간을 만들어 냈다.

24
Luciano Biondini – Dialogues(Enja)

2021년 나는 흔히 말하는 유럽적인 것을 담은 앨범을 그리 즐기지 않았다. 이상하게 공허한 느낌을 받았다. 유럽과 남미를 아우르는 악기인 아코데온 연주도 그랬다. 하지만 루치아노 비온디니의 이번 앨범은 무심하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아코데온에 운명적으로 깃든 노마드적 서정에 매몰되지 않고 공간과 공기에만 집중한 연주 때문이었다. 여기에 찰리 헤이든, 폴 모션, 라비 아부 칼릴 등의 곡을 연주한 것도 색다르게 다가왔다. 물론 그럼에도 이곳이 아닌 저곳에 대한 강한 동경의 정서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그것이 없는 음악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것의 농도가 덜해 한층 깔끔한 맛의 음악을 원했던 것인데 이 앨범이 그랬다.

23
François Bourassa – L’impact du Silence (Effendi)

나는 침묵을 좋아한다. 단순히 소리가 없는 진공 같은 상태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 음악이 필요 없다. 소리가 없는 공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상태를 좋아한다면 이해가 될까? 그 공간은 악기의 미니멀한 울림을 통해 드러난다. 캐나다 퀘벡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프랑수아 부라사의 이 앨범은 타이틀만큼이나 (공간에 끼치는) 침묵의 영향을 잘 느끼게 해주었다. 그가 솔로 연주를 통해 말한 침묵의 영향은 소리 없음이 아니라 서정이 솟아오르는 공간이었다. 그것이 정말 아름다웠다.

22
Martin Tingvall – When Light Returns (Skip)

피아노 연주자 마틴 팅발의 솔로 연주는 프랑수아 부라사의 솔로와는 90도 다른 감흥을 자극한다. 공간, 침묵에 대한 고려가 있기는 하지만 그 전에 멜로디와 그 속에 담긴 서정미가 중심이 되어 있다. 따라서 소리가 아니라 피아노로 들려주는 연주자의 이야기를 먼저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이전 그의 어느 연주보다 제목이 그대로 상상되는, 덜 추상적이었다. 가끔은 뉴에이지 스타일의 심심한 맛을 주기도 했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워낙 정감 있어 좋았다.

21
Nadav Berkovits – Waking the Heart (Ubuntu)

이스라엘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나다프 베코비츠의 이 첫 앨범에 담긴 연주는 대략적으로 포스트 밥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운명적으로 타고난 이스라엘과 중동 지역의 색채감이 이 탄탄한 앙상블 연주를 조금은 다르게 듣게 했다. 새로운 곳으로 상상의 여행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가상의 지도를 그리는 음악은 나다프 베코비츠가 유일하지 않다. 그러나 같은 장소를 찍어도 사람마다 사진의 느낌이 다르듯 이 피아노 연주자의 음악은 묘하게 부유하는 질감이 있어 더욱 매혹적 몽상을 자극했다. 그것이 좋았다.

20
Michel Portal – MP85 (Label Bleu)

만 85세에 과연 나는 미셀 포르탈 같은 정신을 지닐 수 있을까? 음악이 새롭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하던 스타일을 노련하게 유지하면서 그것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 넣는 넓은 시야 때문이다. 진보적 분위기와 달리 다른 연주자들과의 어울림이 여유로운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박학다식가의 말처럼 곡들의 색이 매우 다채롭다. 곡들의 모임이 만든 그루브가 앨범을 질리지 않게 한다. 여기에 더 놀라운 것은 지난 세월을 가로지른 듯한 음악의 시간이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인한 격리도 막을 수 없었던 통시간적 음악.

19
Charlie Hunter Trio – Live at the Memphis Music Mansion (CHM)

연주와 음악 안에 담긴 전언과 이미지의 뛰어남, 완성도와 상관 없이 그리 마음이 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내가 모험하기를 두려워하는 무엇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기타 연주자 찰리 헌터의 음악이 내게는 대체적으로 그랬다. 그러나 색소폰 연주자 마이클 블래이크, 드럼 연주자 조지 슬러피와 베이스 없는 트리오를 이루어 2017년 멤피스 맨션에서 했던 공연을 담은 이 앨범은 매우 좋았다. 특별한 이야기를 하려 하기보다 라이브인 만큼 즐겁고 흥겹게 연주하는 것 자체에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타 연주자가 이런 연주를 처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소울 충만한 즐거움은 적어도 내 귀엔 드물었다. 이 공연 당시 세 연주자는 식중독에 걸린 상태였다 한다. 그래서 결과를 아쉬워하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만족하게 되었다 한다. 이처럼 나를 놓은 연주였기에 좋았던 것은 아닌지.

18
Kate McGarry – What to Wear in the Dark (Resilience Music)

케이트 맥가리는 조금은 더 재즈적인 노라 존스, 시정을 중심으로 한 유럽 보컬에 대한 미국의 화답이라 할 수 있는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녀만의 경계에 놓인 음악을 했다 할까? 그 가운데 남편인 기타 연주자 키스 간즈와 다시 함께 한 이번 앨범은 스틸리 댄, 이글스, 폴 사이먼, 비틀즈 등의 곡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노래했는데 그 분위기가 참 좋았다. 시적이지만 너무 추상적이지 않은, 밤 분위기지만 너무 어둡지 않은 공간. 그녀가 말하는 어둠 속에서 입어야 하는 것은 검정색이나 빨간색 옷이 아니라 연인의 품처럼 따스한 옷이었다.

17
Thierry Maillard – Ballades (NoMad Music)

발라드 연주는 멜로디와 코드 진행 모두에서 음들의 연결, 음들의 합을 넘어서는 서정성이 나와야 한다. 또한 그 연주는 감상자가 알고 있는 영역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 면에서 티에리 마이야르의 이번 발라드 앨범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테마 자체의 시정을 담백하게 표현하고 이를 부드럽게 솔로로 발전하고 또 어느 수준에서 절제해 다시 테마로 돌아오는 연주는 내가 알고 있는 영역을, 내 안의 쾌감을 느끼는 부위를 건드렸다. 그 건드림이 너무나도 정확해서 싫증을 느끼기 힘들 정도였다.

16
Nicholas Thomas 4 Plays the Music of Hank Jones (Fresh Sound)

비브라폰 연주자 게리 버튼의 첫 앨범 <New Vibe Man In Town>(1962)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꼈던 신선함은 내 오랜 재즈 감상 인생 중 잊지 못할 순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비브라폰 연주자 니콜라스 토마스의 이번 앨범을 들으며 나는 게리 버튼의 추억을 떠올렸다. 행크 존스를 주제로 한 가볍고 경쾌한, 그러면서도 재즈의 진득한 매력을 담은 연주가 너무나도 상쾌했기 때문이다. 스타일 면에서 보면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평범함이 요즈음의 게리 버튼이나 그리 많지 않은 다른 비브라폰 연주자들에게서 받기 힘든 청량감을 주었다.

15
Masabumi Kikuchi – Hanamichi (Red Hook)

솔로 앨범은 감추려 해도 연주자 자신의 내면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피아노 연주자 마사부미 기쿠치의 유작으로 발표된 이 솔로 앨범 또한 그랬다. 아픈 몸을 이끌고 그는 진지하게 피아노 앞에서 혼신의 연주를 펼쳤다. 그것은 삶이 곧 끝날지도 모른다는 연주자의 외침이 아니라 지난 세월 동안 품고 또 품어 만든 진주 같은 영롱한 아름다움이었다. 지금보다 아니면 지금만큼 아름다울 것이란 믿음이 바탕이 된 새로움을 향한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연주가 될 지라도 그는 후회나 아쉬움이 없었을 것이다. 봄날 벚꽃이 바람에 떨어져도 아름다움은 그대로인 것처럼.

14
Charles Lloyd – Tone Poem (Blue Note)

색소폰 연주자 찰스 로이드는 이제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더 많다. 어느 상황에서도 식별 가능한 그만의 소리와 프레이징 때문이기도 레퍼토리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통의 재즈 연주자들이 스탠더드 곡을 통해 자신의 현재를 드러내듯 그는 자신의 이전 곡을 다시 연주하고 또 연주해 현재를 이야기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지난 시간의 세세한 부분까지 현재로 소환해 자신의 지금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연주는 반복적이지만 진부하지 않다.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어쩔 수 없이 새로움의 정도가 줄어들긴 한다. 이번 앨범도 그렇다. 어? 또? 하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그 알만한 연주는 여전히-아직까지는 강력한 아우라로 나를 사로잡았다.

13
Vijay Iyer – Uneasy (ECM)

2017년도 앨범 <Far From Over>에서 피아노 연주자 비제이 아이어는 (현재까지) 그의 음악적 정점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그에 비해 이번 트리오 앨범은 다소 평이했다. 허를 찌르는 번뜩임이 덜했다. 그러나 사회의 부조리함이란 주제를 다룬 연주라는 점에서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피아노 연주자의 성향으로 보아 이런 무거운 주제에는 더 단단하고 거친 스타일로 연주했을 것 같은데 실제는 힘에 의존하지 않는, 여유로운 호흡을 바탕으로 한 연주를 펼친 것이다. 그것이 “Uneasy”한 사회가 “Easy”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연주자의 바람으로 이어지니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12
Joris Teepe & Don Braden – Chemistry (Creative Perspective Music)

피아노 없는 트리오는 그 자체로 긴장을 머금고 있다. 아무리 부드럽게 연주해도 그 뒤로 어둠의 기운처럼 긴장이 솟아오르곤 한다. 네덜란드 베이스 연주자 요리스 티페와 미국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 돈 브래든은 오래 전부터 드럼 연주자를 그때 그때 초대해 피아노 없는 트리오 연주를 펼쳤다. 이번 앨범에서는 드럼 연주자 제프 테인 와츠, 루이 헤이스와 함께 했는데 역시나 긴장감 가득한 연주를 펼쳤다. 하지만 그 긴장이 위태로움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좋았다. 비어 있음이 주는 여유랄까? 템포가 빠른 곡에서도 그 허전함이 새로운 매력을 발휘한 것인데 이것은 스탠더드 곡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알려진 곡들을 연주했다는 것, 그리고 경청이 바탕이 된 대화를 나눈 것에 기인한다.

11
Eberhard Weber – Once Upon A Time (Live in Avignon) (ECM)

베이스 연주자 에버하르드 웨버는 2007년 이후 건강 문제로 연주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이전 공연을 정리한 앨범들이 계속 발매되고 있다. 이 앨범도 1994년 프랑스 아비뇽 공연을 담고 있다. 연주된 곡들도 그 무렵 발매했던 앨범 수록 곡들이다. 그래서 처음이지만 오래 전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오래된 솔로 공연이 주는 감동은 매우 컸다. 건강했던 시절의 베이스 연주자의 추억부터 베이스 하나로 오케스트라에 버금가는 울림을 만들어 내는 솔로 연주의 현대성까지 경탄을 거듭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그만큼 연주하지 못하는 그의 현재에 대한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켰다.

10
Kenny Garrett – Sounds from the Ancestors (Mack Avenue)

재즈 연주자들이 아프리카에 관심을 갖는 것을 근원으로의 회귀로만 이해하면 안된다. 오히려 새로움의 원전을 향한 모험으로 이해할 필요도 있다. 색소폰 연주자 케니 가렛의 이 앨범도 타이틀로만 보면 다시 아프리카로! 를 외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선조로부터’ 받아 만든 지금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하나가 아닌 여러 스타일이 연주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반대로 그의 현재형 연주는 곳곳에서 흑인 음악의 원초적 질감을 느끼게 했다. 이렇게 시간을 거스르고 통합한 색소폰 연주자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드는 시원함이 좋았다.

9
Chick Corea Akoustic Band – Live (Concord)

에버하르드 웨버의 솔로 앨범처럼 왜 이제서야 발매되었을까? 궁금하게 만든 앨범이었다. 칙 코리아 어쿠스틱 밴드의 앨범은 그 명성에 비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칙 코리아 유작으로 발매된 이 앨범은 그 자체로 반가웠다. 연주는 더욱 놀라웠다. 멜로디 감각 넘치는 리듬 연주, 리듬 감각 넘치는 멜로디 연주를 쳘치는 칙 코리아의 솔로와 이에 대한 베이스 연주자 존 패티투치와 드럼 연주자 데이브 웨클의 역동적인 반응은 최고의 짜릿함을 선사했다. 지난 과거에는 우리가 모르는 빛나는 순간이 많았음을 생각하게 하는 연주였다.

8
Joe Alterman – The Upside Of Down (Live at Birdland) (Ropeadope)

2021년 들었던 여러 앨범 중에 가장 유쾌하게 들었던 앨범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즐기기 위한 연주라 하면 실례일까? 하지만 느낌은 그랬다. 오스카 피터슨, 램지 루이스, 몽티 알렉산더의 가장 밝은 면을 결합해 만들어 낸 듯한 조 앨터만의 피아노 솔로는 모든 삶의 불안을 잊게 했다. 연주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재즈를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재즈의 낭만성을 다시 상기하게 하는 연주였다. 듣는 것을 넘어 보고 싶게 만든 연주.

7
Dave Holland – Another Land (Edition)

새로운 영감은 새로운 경험 외에 지난 경험에서도 나올 수 있다. 베이스 연주자 데이브 홀랜드의 이번 앨범이 그랬다. 타이틀로만 보면 그가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난 것 같지만 실제 연주는 추억의 장소로 돌아갔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추억의 장소를 청소하고 다시 새로운 건물을 만들어 과거와 다른 풍경으로 만들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앨범으로는 선보인 적이 없었던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를 펼친 것이 기타 연주자 케빈 유뱅크스, 드럼 연주자 오베드 칼배어와의 트리오 연주를 새롭게 했다. 또한 그 새로운 연주는 쫄깃하고 달달했다.

6
Renaud Détruit & Florent Sepchat – InTime Brubeck (La Saugrenue)

비브라폰과 마림바를 연주하는 르노 데트뤼와 아코데온을 연주하는 플로랑 셉샤 듀오의 이 앨범은 무엇보다 편성에서 색다른 흥미를 자극했다. 여기에 데이브 브루벡을 주제로 연주했다니. 감상 전 기대만큼 감상 후 느낌 또한 좋았다. 비브라폰(마림바)과 아코데온의 어울림은 데이브 브루벡의 음악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옮겼다. 그것은 작곡가의 시간-박자 연구를 공간 탐구로 치환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내재된(Intime) 다른 아름다움의 발굴이었다. 데이브 브루벡의 음악만큼이나 유쾌하면서도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연주였다.

5
Florian Arbenz – Conversation #4: Vulcanized (Florian Arbenz Hammer Recordings)

스위스 드럼 연주자 플로리안 아르벤즈는 2021년 개인적으로 큰 프로젝트를 감행했다. “대화”란 제목으로 12개의 다른 밴드를 만들어 연주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네 개의 대화가 앨범으로 발매되었는데 네번째 대화에 해당하는, 쿠바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 마이켈 비스텔, 프랑스 베이스 연주자 프랑수아 무탱과 함께 한 이번 앨범이 마음에 들었다. 원래 함께 하려 했던 트럼펫 연주자가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부랴부랴 트리오로 연주하게 되었다는데 그래서인지 피아노 없는 트리오를 넘어 트럼펫까지 빠진 트리오 연주가 주는 긴장이 무척 재미있었다. 빈 곳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인정하고 뒤뚱거리며 나아간 연주를 들으며 나는 피아노와 트럼펫을 오가며 상상의 연주를 펼쳤다.

4
Jorge Rossy – Puerta (ECM)

나는 호르헤 로시가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를 떠난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후 그가 드럼 스틱이 아닌 비브라폰 말렛을 잡은 것을 보고 그가 직접 멜로디를 만들고 코드를 연주하고 싶어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번 앨범에 이르러서야 그가 품었던 음악적 이상이 실현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비브라폰-베이스-드럼의 트리오 편성의 연주를 통해 그는 빌 에반스에서 시작되어 브래드 멜다우를 통해 경험했던 삼각형의 완벽한 형태를 구현하려 했다. 물론 사운드는 악기 구성만큼이나 전통적 피아노 트리오와 다르다. 그러나 세 악기가 공통의 리더처럼 유기적으로 어울리고 움직이는 연주는 민주적 트리오의 모범이라 할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정삼각형을 향한 흔들림에서 나온 신비함이 참 매력적이었다.

3
Ken Stubbs – 3 Shadows, 4 Angels (Cherryk)

영국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 켄 스텁스는 그룹 퍼스트 하우스의 멤버로 1980년대 후반 ECM에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던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 중 2021년 두 장의 앨범을 한꺼번에 발표해서 시선이 갔다. 한 장은 에스뵤른 스벤슨을 주제로 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앨범인데 나는 자작곡과 스탠더드 곡을 섞어 연주한 이 앨범이 더 마음에 들었다. 밤의 정서를 머금은 발라드 연주와 누아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절제된 연주 때문이었다. 지친 하루를 마치고 맥주 한 잔에 낮을 잊듯이 그의 덤덤한 색소폰 연주는 음악적 진지함을 넘어서는 친근감이 있었다. 그렇다고 가까운 친구 같지는 않았다. 아파트 앞 동 남자의 연주 같다고 할까? 이 밤에 뭐지? 하다가 이내 넋을 잃게 만드는.

2
Eliane Elias – Mirror Mirror (Candid)

나는 피아노 연주보다 보사노바를 노래하는데 더 집중하고 있는 엘리아니 엘리아스의 요즈음에 아쉬움이 많다. 그 노래들이 아주 싫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 설탕을 많이 넣었고 양도 많이 좀 질린다. 그런 중 피아노 연주자로 돌아가 칙 코리아, 추초 발데스와 각각 듀오로 연주한 이 앨범은 무척 반가웠다. 게다가 달콤하지만 너무 달지 않은 연주를 담고 있어 선물처럼 다가왔다. 그 중 추초 발데스와의 연주는 지하실 구석까지 비추는 화사하디 화사한 햇살 같았다. 연주의 기교와 대화도 훌륭했지만 햇살이 화사한 오후 두 시의 해변 카페를 절로 상상하게 만드는 여유로움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1
Rebecca Trescher Tentet – Paris Zyklus (Enja)

나는 빅 밴드 연주를 덜 선호한다. 개인적인 느낌의 연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빅 밴드가 내밀한 분위기를 연출할 때는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곤 한다. 독일 출신의 작곡가이자 클라리넷 연주자인 레베카 트레셔의 이 10중주단 앨범이 그랬다. 파리 국제 예술 공동체(Cité Internationale Des Arts De Paris)의 거주 작가로 선정되어 파리에 머물며 받았던 도시에 대한 느낌을 동역-마레 지구-갤러리 라파이에트 백화점-오르세 미술관을 중심으로 표현한 이 앨범은 대편성 연주임을 잊게 할 정도로 섬세한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악기들의 겹침과 펼쳐짐이 만들어 내는 다채로운 소리는 그냥 그런데? 싶다가도 어라? 뭐 이리 잘 어울려? 하는 탄성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떠나고 싶어하면서도 떠나면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는 파리의 낭만과 우울에 대한 정확한 묘사이기도 했다. 그래서 앨범을 들으며 지도로 내가 살았던 파리의 마지막 집을 찾아보기도 했다. (아쉽게도 사라졌다.) 어쩌면 내 개인적 경험과 맞물려 이 앨범을 더 좋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를 제거해도 이 앨범의 뛰어남은 전혀 줄지 않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