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베스트 재즈 앨범 30장을 소개한다. 2020년 나는 대략 350여 장의 앨범을 들었다. 들으면서 올 해의 앨범 후보를 따로 분류하곤 했는데 그것이 60여장이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증 유행 때문일까? 2020년은 압도적인 문제작이 드물었다. 또한 갈수록 개인적이고 지엽적인 부분을 천착하는 현 재즈의 경향은 더욱 심화된 것 같다. 하지만 집에서 머무르면 사회성이 떨어지듯이 적어도 2020년만큼은 감히 사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앨범들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직선적이고 간결한 연주를 담은 앨범에 더 마음이 갔다. 너무 센 소리를 내거나 복잡한 프리 재즈 계열의 연주를 담은 앨범에는 손이 덜 갔다. 마음에 여유가 없거나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2020년 나의 선택은 평소보다 더 개인적이다.
한편 개인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새로운 무엇을 지향한 앨범은 매우 드물었다. 대부분 과거의 어느 누구나 어떤 앨범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그만큼 재즈를 오래 들었기 때문일 수 있다. 반면 그 지난 것을 떠올린다는 이유로 마음에 들어온 앨범도 많았다. 그만큼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내가 재즈에서 보수적이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30장의 앨범들이 지닌 음악적 완성도는 객관적으로도 매우 훌륭하다. 적어도 몇 장은 당신에게도 감동을 줄 것이다. 끝으로 마지막까지 고민하게 만들었던 10여장의 앨범에 안타까움을 전한다.
01. Ted Poor – You Already Know (Impulse!)
2020년 최고의 앨범으로 드럼 연주자 테드 푸어의 이 앨범을 선택했다. 색소폰 연주자 앤드류 디안젤로와 듀오로 대부분의 곡을 연주한 이 앨범에서 드럼 연주자는 다채로운 리듬으로 색소폰에게 나아갈 방향과 목적지의 공간감을 제시했다. 그것이 매우 절묘하고 재미있었다. 색소폰이 없었어도 멜로디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악기의 기본에 충실한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서는 연주였다. 간결한 작곡 또한 좋았다.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는 그냥 드럼의 두드림만 들렸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들으면서 이 연주자가 단지 시간을 갖고 노는 것에 만족하지 않음을 느꼈다. 그는 강약은 물론 섬세한 잔향 등을 통해 공간을 창조하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가까이 있지만 보지 못했던 미지의 우주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러니 어찌 최고의 앨범으로 꼽지 않을 수 있을까?
02. Fred Hersch – Songs from Home (Palmetto)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증 유행으로 인해 2020년 여러 연주자들이 이를 주제로 집에서 앨범을 녹음했다. 피아노 연주자 프레드 허쉬의 이번 솔로 앨범이 그 중 가장 좋았다. 집에서 무료함을 지우기 위해 생각 없이 연주한 듯 그의 연주는 다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편안하고 정겨웠다. 그것이 묘한 위안의 느낌을 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뻔한 진행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 편안함은 연주에 전 존재를 투영함으로써 나오는 개인적이며 공감 가능한 정서 때문이었다. 집 하면 떠오르는 그 정서 말이다.
03. Guy Mintus Trio – A Gershwin Playground (Enja)
이스라엘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가이 민투스의 이전 앨범에 나는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거쉰의 곡들을 연주한 이 앨범도 듣기 전에는 그냥 평범한 스탠더드 트리오 앨범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들으면서 나는 익숙한 곡들이지만 아직도 새롭게 바뀔 수 있는 여지가 많음을 깨달았다. 피아노 연주자와 트리오는 테마를 현대적으로 재 구성하는 등 거쉰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었다. 그것이 매우 즐거웠다. 다만 허밍 수준이지만 몇 곡에서 가이 민투스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이것이 없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04. Emanuele Passerini – Trio Geometrics (Dodicilune)
피아노가 없는 트리오 편성은 절로 자유로운 연주를 기대하게 한다. 이탈리아 색소폰 연주자 엠마누엘레 파세리니가 베이스, 드럼과 함께 한 이 트리오 앨범도 그랬다. 게다가 아예 앨범 타이틀을 “트리오 기하학”이라고 해서 트리오의 완벽한 균형을 추구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에 걸맞게 연주는 매우 자유로웠다. 세 사람은 손을 데일 듯 뜨겁게 어울리며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며 완벽한 삼각형(의 순간)을 찾아 부단히 움직였다. 이 삼각 편대의 유지는 극한의 폭발에도 어지러운 느낌을 주지 않았다. 균형이 주는 쾌감을 느끼게 했다.
05. Joshua Redman, Brad Mehldau, Christian McBride & Brian Blade – RoundAgain (Nonesuch)
이 앨범은 일단 조슈아 레드맨, 프래드 멜다우, 크리스티안 맥브라이드, 브라이언 블래이드가 1994년 이후 실로 오랜만에 다시 뭉쳤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그 사이 보다 확고한 중견 연주자로 성장한 네 연주자의 어울림은 그만큼 단단하고 조화로웠으며 능란했다. 한편으로는 16년 전의 어떤 상쾌함 같은 맛은 덜했다. 긴박한 순간에도 잃지 않는 여유로움이 이를 대신했다. 경험이 만들어 낸 그 느긋함은 이내 긴박한 연주를 매력적이게 했다. 오랜 친구들의 모임이지만 어쨌건 그들은 과거보다 현재에 집중했던 것이다.
06. Benjamin Koppel – The Art of the Quartet (Unit)
2020년 덴마크 색소폰 연주자 벤야민 코펠은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케니 워너(피아노) 스콧 콜리(베이스) 잭 드조넷(드럼)과 함께 한 존 콜트레인의 후기 풍의 음악을 담은 이 앨범이 마음에 들었다. 그를 중심으로 한 쿼텟은 이 앨범에서 자유롭고 격정적인 연주를 펼쳤다. 자유롭다고 하지만 완전히 풀어진 연주는 아니었다. 네 연주자의 촘촘한 교감이 풀어질 수 있는 연주를 꽉 조였다. 그 조인 상태에서 비약하는 연주는 정상뿐만 아니라 상승 과정 자체에서도 대단히 짜릿한 쾌감을 주었다.
07. Oded Tzur – Here Be Dragons (ECM)
ECM 레이블은 2020년에도 새로운 연주자들의 발굴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 오디드 추르도 그 중 하나였다. 내가 이 색소폰 연주자의 앨범을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은 밤의 서정시라 해도 좋을 차분하고 푸른 질감의 느린 연주 때문이었다. 과거 토드 구스타프센을 만났을 때만큼 신선했다. 하지만 들을수록 더욱 좋았던 것은 음악 안에 은근히 자리잡은 중동적인 요소, 그것이 주는 신비감이었다. 그것이 바로 푸른 밤의 서정적 분위기를 만드는 요인이었다.
08. Julian Costello Quartet – Connections Without Borders (33 Jazz)
영국 색소폰 연주자 줄리안 코스텔로를 중심으로 폴란드 기타 연주자, 러시아 베이스 연주자, 캐나다 드럼 연주자가 모였다. 앨범 타이틀은 이 여러 문화의 결합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색소폰 연주자는 인위적으로 이국적이고 색다른 질감의 음악을 연출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다른 환경의 연주자들을 가로지르는 공감에 집중했다. 그 공감은 감상자에게도 전달될 수 있는 시적이고 서정적인 아름다움-느림을 통해서 만들어진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이 나를 사로잡았다.
09. Yuri Honing Acoustic Quartet – Bluebeard (Challenge)
색소폰 연주자 유리 호닝은 2015년 앨범 <Desire> 이후 어쿠스틱 쿼텟 편성으로 사색적인 분위기의 앨범을 연달아 발표해왔다. 그 앨범들은 모두 만족스러웠다. 여러 차례 결혼할 때마다 아내를 살해한 귀족과 이를 해결한 마지막 아내의 이야기인 프랑스 전래 이야기에 기반을 둔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을 주제로 한 이 앨범도 그랬다. 이전 앨범의 경험 때문에 다소 감흥은 약했지만 색소폰을 중심으로 네 연주자가 만들어 낸 황량하고 쓸쓸한 분위기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뻔한 듯 하지만 그래도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하게 되는 시리즈 영화처럼 앞으로도 유리 호닝의 이런 음악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10. Anja Lechner, Francois Couturier – Lontano (ECM)
클래식과 재즈, 재즈와 클래식의 만남 같은 표현은 사실 부차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연주자들의 인간적 교감이다. 피아노 연주자 프랑수아 쿠튀리에와 첼로 연주자 안야 레흐너의 어울림이 딱 그런 경우다. 타르코프스키 쿼텟부터 이전 듀오 앨범으로 농밀한 호흡을 보여주었던 두 사람은 이번 앨범에서 한층 더 자유로운 감성으로 장르의 거리를 뛰어넘는 멋진 결과를 만들어냈다. 투명한 피아노와 공간에 스며드는 첼로가 조화와 대비를 통해 만들어낸 “음악”은 가슴 시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11. Dino Rubino – Time of Silence (Tǔk)
가만히 아무 말 없이 혼자 있으면 절로 지난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이탈리아 피아노 연주자 디노 루비노의 이번 앨범이 그리는 “침묵의 시간” 또한 지난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향한다. 선명한 멜로디와 서정 가득한 연주를 내내 나는 어린 시절의 즐거운 일들을 떠올렸고,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안타까움에 빠졌다. 특히 그 끝에서 키스 자렛의 유러피언 쿼텟, 특히 “Country”를 연주할 때의 쿼텟과 이들의 음악을 듣던 30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12. Christian McBride Big Band – For Jimmy, Wes and Oliver (Mack Avenue)
베이스 연주자 크리스티안 맥브라이드는 이번 세 번째 빅 밴드 앨범에서 오르간 연주자 지미 스미스, 기타 연주자 웨스 몽고메리, 색소폰 연주자이자 빅 밴드의 리더였던 올리버 넬슨을 추억했다. 이 세 연주자는 1966년 함께 했던 적이 있다. 그가 1966년 세 연주자를 새삼 현재로 불러들인 것은 추억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과거의 음악이 여전히 지금의 세대에게 현재적 흥겨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흥겨움은 오히려 1960년대를 가상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13. Marc Copland – John (Illusions Mirage)
내가 한 해의 베스트 앨범 선정을 다음 해 1월 말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앨범 때문이다. 2020년 12월에 발매된 마크 코플랜드의 이번 피아노 솔로 앨범은 기타 연주자 존 애버크롬비를 주제로 하고 있다. 피아노 연주자가 기타 연주자의 밴드에서 활동했던 이력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연주는 그 인연보다 더 깊이 피아노 연주자가 기타 연주자의 음악을 좋아했음을 보여준다. 직접 함께 연주했을 시절의 곡은 물론 랄프 타우너, 존 애버크롬비 듀오 시절의 음악 등 그 이전의 음악을 촘촘히 듣고 자신이 좋아하고 또 솔로로 연주하는데 무리 없을 곡을 골랐다는 인상을 준다. 이를 통해 마크 코플랜드는 한 기타 연주자의 음악에 내재되어 있던 아름다운 시정(詩情)을 드러냈다.
14. Jacob Anderskov – Anterior Current (ILK)
덴마크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야콥 안데르스코프는 2020년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하나는 데이빗 보위의 곡을 연주한 <Impressions Of Bowie>였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곡을 연주한 이 앨범이었다. 나는 이 앨범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앨범에 담긴 곡들은 멜로디가 확실하지 않다. 그렇다고 자유로이 선 밖을 나가지도 않는다. 주어진 공간에서 조심스레 음들이 유영할 뿐이다. 그 느슨한 연결이 만들어 내는 긴장, 지속되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 일 없이 조용히, 고독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배경음악 같기도 했다.
15. Henri Texier – Chance (Label Bleu)
노장의 음악은 세월 속에 만들어진 견고함이 장점이다. 반면 바래진 느낌을 피할 수 없다. 프랑스 베이스 연주자 앙리 텍시에의 최근 음악들도 그랬다. 그의 색은 여전했지만 다소 힘이 떨어진다는 느낌 또한 있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다시 원기 회복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의 유랑자적 상상력이 새로운 공간감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보다 강력해진 워킹 밴드의 유기적인 어울림 때문이기도 했다. 근 20년 사이 베이스 연주자의 앨범 중 최고였다.
16. Keith Jarrett – Budapest Concert (ECM)
지난 뮌헨 공연 앨범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또한 과거에는 몇 미터만 파도 금이 나왔지만 이제는 더욱 깊이 파야 하는 오래된 광부를 보는 듯한 안타까움도 느꼈다. 그래도 키스 자렛이 위대한 피아노 연주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연주는 익숙함 속에서 다시 나를 황홀경으로 이끌었다. 앨범 발매에 즈음해 뇌졸중으로 이제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생명이 다한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렸다. 따라서 이번 앨범은 광부 키스 자렛이 캐낸 마지막 황금을 담고 있는 지도 모른다.
17. Tania Giannouli – In Fading Light (Rattle)
어떻게 연주자들이 알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해외 연주자들이 직접 내게 음반이나 음원을 보낸다. 감사히 듣지만 객관적으로 리뷰하기에 부담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그리스 피아노 연주자 타니아 지아노울리의 경우는 다르다. 그녀의 앨범은 늘 나를 만족시킨다. 그 만족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상상력 때문이다. 이번에는 트럼펫 연주자 안드레아스 폴리조고풀로스, 우드 연주자 키리아코스 타파키스와 트리오를 이루었는데 그 색다른 편성만큼 음악 또한 새로웠다. 특히 이 그리스 트리오가 만들어 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과 무(無)를 향하는 듯한 밝음으로 이루어진 원시, 원초적인 자연의 이미지는 매우 매혹적이었다.
18. Marcin Wasilewski Trio – Arctic Riff (ECM)
나는 마르신 바실레프스키 트리오의 음악을 좋아한다. 그런데 트리오보다 관악기를 더해 쿼텟 연주를 할 때가 더 마음에 든다. 2014년 색소폰 연주자 요아킴 밀더와 함께 했던 앨범에 이어 조 로바노와 함께 한 이번 앨범도 좋았다. 트럼펫 연주자 토마추 스탕코와 함께 했던 좋은 시절의 추억 때문일까? 아무튼 시적이고 하나의 분위기를 지속시키는 연주가 아름다웠다. 또 트리오의 연주에 동화되어 평소보다 한층 부드러워진 조 로바노의 연주도 신선했다.
19. Kandace Springs – The Women Who Raised Me (Blue Note)
자신의 음악적 영향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신의 음악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캔디스 스프링스는 이번 앨범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준 여성 보컬에 대한 존경을 표현했다. 그렇다고 누구를 모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음악이 주었던 정서적인 면을 드러내는데 집중했다. 여러 명을 주재로 한 만큼 게스트도 화려했다. 그러나 음악은 어지럽지 않았다. 지난 시절의 명인들의 그림자는 그녀의 음악적 깊이를 가늠하게 했다.
20. Charles Lloyd – 8 Kindred Spirits (Live From The Lobero) (Blue Note)
색소폰 연주자 찰스 로이드의 이번 앨범은 2017년도 앨범 <Passin’ Thru>을 중심으로 한 라이브 연주였기에 그 이후 그의 음악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새로운 느낌이 덜했다. 연주 또한 이전에도 많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래도 연주는 감동적이었다. 그래도 “La Llorona”가 아니었다면 올 해의 앨범 목록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 곡과 그 연주가 주는 힘이 대단했다.
21. Piotr Schmidt Quartet – Dark Forecast (SJ Records)
폴란드에는 뛰어난 연주자들이 많다. 그런데 이들은 폴란드 재즈의 기반을 다진 크리즈토프 코메다나 토마추 스탕코의 영향을 한번은 밝혀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트럼펫 연주자 표트르 슈미트의 이번 앨범도 그렇다. 이미 토마추 스탕코에 대한 헌정 앨범을 발표한 적이 있는 그는 이번 앨범에서도 스탕코와 코메다의 그림자를 그려냈다. 어두운 공간에 피어나는 담배 연기 같은 음울한 분위기와 그 안에 담긴 긴장 어린 서정이 그랬다. 나 또한 앨범을 들으며 토마추 스탕코를 그리워했다. 그것이 폴란드 재즈라는 생각도 했고.
22. JD Allen – Toys/Die Dreaming (Savant)
20,30대 시절의 JD 앨런에 나는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40대 중반 이후의 그의 음악에는 관심이 많다. 그 사이 비약을 이룬 것일까? 사실 톤이나 연주 스타일을 보면 그는 과거에 많은 발을 딛고 있다. 그러나 동료와 만들어 낸 전체 음악, 사운드는 그와는 정 반대의 느낌을 준다. 두 곡을 타이틀 곡으로 내세운 이번 앨범에서도 그의 연주는 호방한 비밥 스타일을 연상시키지만 베이스-드럼과 이룬 트리오 연주는 매우 진보적이다. 거침 없는 자유로 찰나의 희열을 향해 과감히 돌진한다. 물론 이런 스타일 또한 과거에 기대고 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색소폰 연주자의 현 아우라는 이를 낡다고 느끼게 하지 않는다.
23. Jimmy Heath – Love Letter (Verve)
색소폰 연주자 지미 히스는 2020년 1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에 발매되었기에 이 앨범은 유작 앨범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죽음을 계기로 기획된 앨범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완성된, 연주자의 의지가 반영된 마지막 앨범이다. 그런데 발라드 앨범이라는 점이 내겐 특별했다. 연주가 아름다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덤덤하고 때로는 애절한 연주가 스스로 자신의 장례식을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만족이건 후회건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지난 시절에 대한 아련함이 깃드는 것 같다. 그것이 이 앨범에도 담겨 있다.
24. Dino Saluzzi – Albores (ECM)
번도네온 연주자 디노 살루지의 솔로 앨범이다. 1982년 ECM에서의 첫 솔로 앨범 <Kultrum>에서는 오버더빙으로 다른 악기를 연주했기에 이번 앨범이 진정한 첫 솔로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래서 다소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그러나 그 반대였다. 화려하게 변화를 거듭하지 않지만 모든 곡이 저마다의 이야기로 극적인 재미를 주었다. 그 이야기는 지난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였다. 왼손과 오른손의 음역대를 보다 더 명확히 구분한 연주는 매우 현대적이었다. 반도네온의 매력을 담뿍 살린 연주였다.
25. Kurt Rosenwinkel Trio – Angels Around (Heartcore)
기타 연주자 커트 로젠윈클은 포스트 밥과 퓨전 재즈를 아우르는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만의 무엇이 세분화, 특화되는 만큼 전통과 대중으로부터 멀어진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 그에 대해 걸었던 재즈의 미래를 책임질 연주자라는 기대는 다소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앨범은 모처럼 지난 시대의 곡들을 연주했다는 점에서 관심 받을 만 했다. 물론 그가 연주한 곡들이 델로니어스 몽크, 조 헨더슨, 폴 체임버스, 찰스 밍거스 등 스탠더드 곡이라 부르기엔 어려울 곡들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낯선 느낌을 줄 수도 있었다. 실제 그의 연주와 톤은 평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의 곡을 연주하면서 전통적인 면을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이 색달랐다. 역설적으로 그의 연주가 지닌 남다름이 자작곡의 연주에서보다 더 잘 느껴졌다는 것 또한 좋았다.
26. Aaron Parks – Little Big II Dreams of a Mechanical Man (Ropeadope)
어느새 일렉트릭,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대한 내 호감이 많이 줄었다. 아니 그 전자, 전기적 질감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그런 음악 대부분이 지닌 경직성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애런 파크의 앨범은 인상적으로 들었다. E.S.T를 언급하게 되는, 상승에 대한 강박을 내재한 우주적 질감의 사운드 속에서 이 피아노 연주자는 팻 메시니적이라 할 수 있을 유랑자적 정서를 적절히 배합해 색다른 이야기를 풀어냈다. 우주적 상승이 폭발, 소멸이 아닌 낯선 곳으로의 이동 욕구를 의미하는 이야기였다. .
27. Jazz at Lincoln Center Orchestra – The Music of Wayne Shorter (Blue Engine)
2020년 윈튼 마샬리스의 링컨 센터 재즈 오케스트라는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각기 다른 주제를 지닌 앨범들은 그만큼 색다른 빛을 냈다. 그 가운데 웨인 쇼터를 주제로 한 이 앨범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오케스트라는 웨인 쇼터의 냉랭한 푸른 빛 사운드를 앨범 커버처럼 주황색의 화려하고 따스한 빛의 사운드로 대체했다. 소 편성 중심이었던 웨인 쇼터를 빅 밴드 편성으로 연주한 이유를 생각하게 해주는 연주였다.
28. Cecilie Strange – Blue (April)
“Blue”란 단어는 참 신비롭다. 그 섬세하고 복합적인 의미는 재즈와 잘 어울린다. 덴마크 출신의 여성 색소폰 연주자의 쿼텟 앨범 또한 “Blue”의 정서를 멋지게 살렸다. 그녀의 담백, 건조한 색소폰은 우울함과 아늑함 사이의 어느 지점을 그리게 했다. 혼자서 다 하겠다는 과욕이 없는, 쿼텟의 어울림 또한 좋았다. 그래서 고독하지만 달콤하고 따뜻했다.
29. Dave Douglas – Dizzy Atmosphere (Greenleaf)
트럼펫 연주자 데이브 더글라스가 디지 길레스피를 주제로 앨범을 녹음했다. 이전까지 그는 매리 루 윌리엄스, 웨인 쇼터, 부커 리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드러낸 바가 있다. 하지만 그 애정은 남들처럼 찬양의 송가를 연주하거나 연주자 생전의 스타일을 반영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였다. 자신 외에 트럼펫을 하나 더 추가하고 기타까지 더해진 섹스텟 편성으로 녹음한 이 앨범에서 디지 길레스피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표면적인 헌정이 아닌 디지 길레스피의 곡과 연주를 파고들어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 이를 극대화 했기 때문이다. 디지 길레스피처럼 대가인, 그래서 건드릴 부분이 많은 연주자를 주제로 할 때 적합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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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Hans Ulrik – The Meeting (AMM)
앨범 선정 시 개인적 취향이 우선이지만 그래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느낌을 주기 위해 절로 레이블, 아티스트, 악기, 편성 등 다양한 고려를 하곤 한다. 색소폰 연주자 한스 울릭의 이 앨범의 경우 존 스코필드가 스티브 스왈로우를 주제로 했던 앨범 <Swallow Tales>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여기서 내 취향이 작동했다. 이 쿼텟의 연주에서 정서적으로 더 많은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앨범 타이틀처럼 만남 자체에도 충실했지만 그 만남이 조화에 머무르지 않고 느긋함, 전통적 친밀함, 내밀함 등의 정서적 매력을 발산한 것에 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