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한국 재즈 앨범 15선(2021 Korean Jazz Best Albums)

2021년에 발매된 한국 재즈 앨범 중 인상적이었던 앨범들을 정리해 15장을 소개한다. 코로나 19의 영향인지 이전에 비해 한국 재즈 앨범은 발매 수도 줄었고 다양성 또한 줄었다. 특히 유학 후 졸업 작품을 첫 앨범으로 발표하는 완전한 신예의 앨범이 확 줄은 것 같다. 대신 앨범 발매를 해본 경험이 있는 연주자들의 후속 작들이 많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앨범을 발매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던 것일까? 물론 그 전에 연주자로서 자신의 현재를 기록하고 증명하고픈 음악적 열정이 어려운 시도를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새로운 연주자가 등장하는 것은 늘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위태로운 한국 재즈 시장을 생각하면 힘들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키는 연주자들이 많은 것도 고마운 일이다. 부디 계속 영감 가득한 활동을 바란다.

그럼에도 나의 선정은 다른 어느 해보다 취향을 따랐다. 가만히 있어도, 잠시 딴 일을 하느라 신경을 쓰지 못해도 갑자기 음악으로 이끌고 가슴이나 머리 속 어딘가를 콕 찔렀던 앨범을 골랐다. 그러니 해외편처럼 모든 앨범을 추천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20장을 선정할까 생각도 했다. 제외하기 아쉬운 앨범이 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 발매 수에 비해 20장은 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내 앨범은 없어? 라 서운해 하시는 우리 연주자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15
이부영 – Love Like A Song (Roman Works)

지금까지 나는 이부영의 노래를 그리 즐겨 듣지 않았다. 음악적 훌륭함을 인정한다. 다만 그녀의 목소리가 지닌 무거운 맛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다들 예쁘다는데 내 눈에는 이상하게 얼굴 한 구석 작은 점만 보이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하지만 사랑을 주제로 한 이 앨범은 마음에 들었다. 사랑을 그녀는 힘을 빼고 매우 편안하게 노래했다. 화장을 조금 옅게 했다 할까? 그녀의 목소리에 담겼던 무거움이 장점으로 느껴졌다. 사랑의 열정과 시간의 엇갈림 등을 표현하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최적이었다. 피아노 연주자 송영주, 기타 연주자 박윤우, 색소폰과 클라리넷 연주자 여현우가 만들어 낸 단아한 사운드도 매력적이었다.

14
서수진 – Roots To Branches (소리의 나이테)

서수진의 앨범을 들을 때마다 나는 참 많이 놀란다. 자신의 음악을 시간 속에 발전시켜나가는 능력 때문이다. 이번 피아노 없는 쿼텟 편성의 앨범도 그랬다. 2018년도 앨범 <Strange Liberation>을 연장한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이전보다 한층 더 조밀한 멤버들의 어울림으로 연주의 밀도를 더욱 높였다. 그러면서도 상승과 분출을 주저하지 않는, 완전히 자유로운 솔로를 보장했다. 상반된 두 요소를 균형 있게 운용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룹의 여정을 세우고 조급하지 않으며 한발씩 나아갈 대 가능한 것이다. 이는 그녀의 다음이 또 기대된다는 것이다.

13
준킴 X 이한얼 – 위로 (탈)

위로는 공감에서 나온다. 단지 책에 나온 명언을 들려준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의 경우 대상을 배려한다고 대중적인 말랑함을 추구하면 안된다. 누구에게 통하는 음악은 특정한 누군가에게는 통하지 않을 수 있으니. 해서 기타 연주자 준킴과 피아노 연주자 이한얼은 위로를 주제로 서정 가득한 연주를 펼쳤다. 그렇다고 마냥 부드럽지는 않았다. 무슨 말이야? 하는 느낌을 주는, 긴장을 많이 머금은 연주가 주를 이루었다. 그래도 연주자 자신에게서 출발한 연주였기에 어렵지 않았다. 그 말을 이해하려 하는 순간 감상자는 위로 받을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12
남유선 – Things We Lost & Found (남유선)

새로움은 꼭 변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부러 다름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색소폰 연주자 남유선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현재에서 다시 보는 것, 여유가 있다면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로움의 최선임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연주와 녹음, 패키지까지 여러 모로 세심하게 만들어진 이 앨범의 음악은 키보드가 새로이 가세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이전 앨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바로 그 때 이전 앨범 이후 그녀가 겪은 삶의 이야기가 솟아오르며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낸다. 겪고 보고 느낀 것들 것 차분히 쌓아 두어 자연 발효시킨 빵 같은 음악이랄까? 게다가 그 빵 맛이 참 좋았다.

11
진수영 – Paraphrase (포크라노스)

피아노 연주자 진수영의 음악은 밤과 물로 가득하다. 비를 맞은 피아노로 연주하듯 그의 터치는 습하며 그 음악은 어둡다. 비 내리는 밤 어두운 골목길이나 연 꽃 피어 있는 연못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고 공포스럽지는 않다. 그저 고독할 뿐이다. 혼잣말로 밤의 외로움을 견뎌보지만 이 매혹적인 밤을 혼자만 즐기는 것이 안타깝고 슬플 뿐이다. 이 습한 밤은 진수영이 솔로 연주를 계속하는 한 이어질 것이다. 그림 같은 앨범.

10
김오키 – 편견에 대하여 (봉식통신판매)

색소폰 연주자 김오키의 음악은 늘 도발적이다. 과감하다. 그러면서도 힙합, 일렉트로니카 등을 아울러 대중적인 음악을 만드는 영리함도 있다. 이 앨범에서 그는 “편견 때문에 사랑할 수 없고 편견 때문에 많은 것이 죽는다”는 주제로 뜨겁고 자유로운 트리오 연주를 펼쳤다. 물론 편견에서의 해방하면 자유로운 연주가 떠오르니 이 도한 편견을 강화하는 연주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김오키의 솔로 연주를 듣다 보면 아무리 자유로워도 그만의 조(調)가 감지되기도 한다. 누구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깨려는 노력이다. 그는 감상자에게까지 가운데 손가락을 들 정도로 노력에 노력 중이다. 그 시도는 지금까지 매력적이다.

9
골든스윙밴드 – Golden Rules

지금까지 골든 스윙밴드는 스윙 시대의 낭만을 향한 강한 애정을 드러내왔다. 복고적인 사운드가 지금도 매력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갈수록 보컬 김민희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앨범은 표지부터 그룹 이전에 보컬 앨범임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되돌린 듯한 연주와 노래가 주는 매력은 부인할 수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 하나를 까닥거리며 듣기 좋은 음악.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이성을 유혹해도 괜찮았던, 미사여구 없이 ‘사랑한다’는 단순한 고백이 통하던 시대를 그리게 했다. 이 곳이 아닌 저곳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닌 그 곳으로 안내하는 연주와 노래였다.

8
계수정 – 안 과 밖 (플립드코인뮤직)

피아노 연주자 계수정의 음악은 늘 파격적이었다. 그만큼 감상에 높은 집중력과 힘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앨범은 달랐다. 그녀는 여전히 자유롭지만 그래도 규범 안에서 움직이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게다가 서정적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삶에 큰 변화-우울한-가 있나 걱정하기까지 했다. 나는 가끔 피아노 앞에 앉아 뚱땅거리는 손으로 막연히 코드를 짚어 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너무 익숙한 코드의 진행이 새롭게 들릴 때가 있다. 그녀 또한 그런 순간을 맞이했던 것 같다.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고 뛰쳐나가기 전의 자신을 보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7
김호철 – Invisible Things (케이저)

2021년 내가 좋아한 우리 재즈 앨범 가운데 가장 평범하고 규범적인 연주를 담은 앨범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뻔한 연주라는 것이 아니다. 편성과 연주 스타일이 안정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베이스 연주자 김호철을 중심으로 한 트리오의 어울림, 긴장과 서정을 잘 버무려 만든 음악 모두 평범 이상이었다. 특히 서정미를 멜로디에만 의존하지 않은 것, 그만큼 수평적인 흐름을 넘어 수직적인 운동에도 공을 들여 입체성을 획득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6
정은혜 – Nolda (ESP)

지난 해 피아노 연주자 정은혜의 앨범 <치다>를 매우 인상 깊게 들었던 나로서는 그녀의 이번 혼자 놀기 앨범이 다소 의외로 다가왔다. 조금은 더 국악적 요소가 가미된 무엇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순간적 감흥에 의존하면서도 그 안에 시간의 흐름과 미술적 여백을 담아낸 연주는 이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그녀가 그리는 그림에 내 상상의 붓을 더하며 즐겼다. 물론 이런 연주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압도적인 아우라가 느껴져 위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연주자와 연결되는 순간 재미는 상상 이상이 된다.

5
신박 서클 – 유사과학 (플랑크톤뮤직)

신박 서클이란 그룹 명은 연주자의 이름을 조합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이 이름은 그룹의 음악을 지칭하는 것이 되었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룹의 음악은 신박했다. 재즈와 국악의 만남, 크로스오버 같은 말이 필요 없이 그냥 신박 서클로서 유쾌하고 재미난 음악이었다. 게다가 유사 과학이란 앨범의 주제도 참신했다. 음악이 직접적으로 여러 유사 과학과 연관되었다는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들을수록 과학적인 양 하면서 실은 비과학적인 믿음에 대한 때로는 냉소적이고 때로는 우호적인 연주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 또한 유사과학적인 느낌일까?

4
정수민 – Lament (봉식통신판매)

베이스 연주자 정수민는 음악은 감상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나아가 음악가는 감상자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의 음악이 소외된 우리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앨범 에서도 그는 기타와의 따스한 듀오 연주를 중심으로 현대와 현재에 대한 불안, 상실감, 회의 등의 비관적 감정으로 가득한 우리 삶에 대한 공감과 애도, 나아가 위로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주제에 연주를 희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음악적 즐거움 또한 유지했다. 그것이 오히려 음악을 가벼운 위로가 아닌 진심 어린 통감(痛感]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3
이지혜 – Daring Mind (Motema)

2017년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한 앨범 부터 나는 그녀가 작곡과 오케스트레이션에 뛰어난 능력이 있음을 감지했다. 그래서 두 번째 앨범 (2018)에서 노래에 집중한 것에 완성도와 상관 없이 당혹해 했다. 그리고 다시 작곡과 편곡에만 집중한 이번 앨범을 무척 반갑게 들었다. 낯선 뉴욕에서 용기로 버텼던 자신의 삶을 투영한 이번 앨범은 그 주제처럼 과감한 사운드가 매력이었다. 사소한 것에서도 자부심과 상심을 오가는 예민하고 긴장 어린 타지에서의 삶처럼 그녀의 음악은 통일된 사운드는 물론 각 악기의 섬세한 움직임에서도 짜릿한 쾌감을 주었다.

2
이규재 오아시스 – Dynamic Revolution (이규재)

낡은 소재라도 새로운 상상력이 더해지면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다. 플루트 연주자 이규재의 이번 앨범이 그랬다. 그는 이전까지 해오던 라틴 색채가 가미된 부드러운 음악에서 벗어나 전기적 질감이 가미된 70년대 퓨전 재즈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였다. 그런데 그것이 과거의 반복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현대적이고 미래적이었다. 이 앨범을 들으며 나는 우주 여행을 상상했다. 눈 깜빡할 사이 다른 곳에 도착하는 디지털적인 여행이 아니라 여정 모두가 보이는 아날로그적 여행을. 나도 모르게, 내 예상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 때가 있다. 그저 지금에 집중했는데 우연히 그 때가 모든 것이 완벽했던 것이다. 이규재에게는 이번 앨범을 만들 때가 완벽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1
이지연 재즈 오케스트라 – 푸른 꽃 (소리의 나이테)

빅 밴드 앨범을 2021년 최고의 해외 앨범으로 선정한 것처럼 국내 재즈 앨범 또한 빅 밴드 앨범을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했다. 이미 나는 이지연의 지난 앨범 (2017)을 그 해의 최고작으로 선정한 적이 있다. 이번 앨범은 엄밀히 따지면 2017년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무시 못할 음악적 쾌감을 주었다. 실내악적인 느낌마저 주는 각 파트의 정밀한 움직임 속에서 그녀 자신의 피아노를 비롯한 여러 악기의 솔로를 확장한 부분이 무엇보다 좋았다. 거를 부수는 것 말고 확장하는 것도 새로움을 향한 하나의 대안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밤의 여정이라는 앨범의 주제를 곡과 연주 모두가 너무나도 매혹적으로 표현해 듣는 내내 꿈을 꾸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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