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 코리아(Chick Corea) – 무지개 빛 스타일리스트

2018년 10월 30일에 롯데콘서트홀에서 있었던 공연 해설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불가역적이자 직선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살고 있기에 우리의 삶은 그것이 어쨌건 간에 연속적인 모습을 보인다. 즉, 동시에 다른 두 공간에 위치한다거나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없다. 이를 테면 같은 시간에 집과 직장에서 일을 하고 운동을 하며 밥을 먹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칙 코리아의 음악 인생을 살펴보면 그가 시간 밖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그 또한 사람인 만큼 시간의 흐름을 어찌 무시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재즈와 클래식을 아우르고,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사운드를 가로지르며, 전통적인 재즈와 아방가르드 재즈를 오가는 한편 솔로부터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넘나드는 그의 활동은 그가 시간으로부터 매우 자유롭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 선수가 올림픽 육상종목 모두에 출전한 것 같다고 할까? 게다가 그는 그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래서 나는 그가 여러 개의 자아를 지닌 것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이러한 동시다발적인 음악적 삶은 그가 늘 새로운 곳을 향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 보통의 연주자들은 한 시기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기를 시작하는 과정을 선택하곤 한다. 그러나 칙 코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솔로 활동과 그룹 활동을 병행했으며, 재즈와 클래식을 같이 연주하는 한편, 퓨전 재즈와 아방가르드 재즈를 같은 시기에 연주하곤 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진화(進化)라기보다는 분화(分化)에 더 가까웠다.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현재를 구축하는 직선적 발전이 아닌 과거를 현재까지 지속시키면서 음악적 영역을 넓히는 나선형 확산의 길을 거쳤다. 게다가 그 길은 성공의 길이기도 했다. 그래미 상에 60회 이상 후보로 올라 22개의 상을 수상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게다가 그 상은 최우수 앨범, 최우수 그룹 연주, 최우수 솔로, 최우수 작곡 등 음악적 뛰어남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I. 무지개 빛 음악 여정

본명은 아르만도 앤서니 코리아로, 1941년 6월 12일 미국 메사추세츠의 첼시에서 태어난 칙 코리아는 1930년대와 40년대 사이 보스톤 지역에서 딕시랜드 밴드의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했던 아버지에 이끌려 4세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한 역시 아버지의 영향으로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가운데 아트 테이텀, 버드 파웰 등 창의적인 프레이징과 화려한 기교를 겸비한 피아노 연주자들에 매료되었다.

아버지로 인해 재즈를 좋아하게 되었으면서도 클래식 피아노 교육을 받았던 그는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했다가 그만두고 부단한 연습을 거쳐 줄리어드 음대에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하고 6개월만에 그만두었다. 틀에 짜인 학교 교육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느꼈던 것. 결국 그는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는 삶을 선택했다.

1 초기 시절

이런 칙 코리아에게 처음 기회가 열린 분야는 라틴 재즈였다. 그 결과 1962년 타악기 연주자 몽고 산타마리아의 아프로 라틴 그룹의 일원으로 앨범 <Go Mongo!>을 녹음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는 소니 스팃, 데이브 파이크, 허비 맨, 칼 제이더, 스탄 겟츠 등 여러 연주자들의 라틴 재즈 앨범에 참여하면서 자신을 알려나갔다. 하지만 라틴 재즈 피아노 연주자가 그의 목표는 아니었다. 블루 미첼, 휴버트 로우, 도널드 버드 등의 앨범을 통해 하드 밥 스타일의 직선적인 연주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지녔음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화려한 세션 활동은 첫 번째 리더 앨범 녹음으로 이어졌다. 1966년 퀸텟 편성으로 앨범 <Tones For Joan’s Bones>를 녹음하게 된 것. 단 네 곡으로 이루어진 앨범에서 그는 그간의 세션 활동을 종합하기라도 한 듯 당대를 풍미하고 있던 하드 밥을 바탕으로 라틴 재즈의 화려함, 그리고 새로운 재즈의 대안으로 떠올랐던 아방가르드 재즈의 긴장을 적절히 아우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그의 진가는 1968년에 녹음한 첫 번째 트리오 앨범 <Now He Sings, Now He Sobs>를 통해 구체화 되었다. 이 앨범에서 그는 곡의 구조를 팽팽하게 유지하면서도 곡예를 하는 듯한 현란한 솔로를 펼쳤다. 그것은 하드 밥을 넘어선, 이후 포스트 밥이라 불리게 될 새로운 스타일의 모범을 제시했다 할 만큼 앞선 연주였다.

2 마일스 데이비스 그룹

솔로 앨범 활동을 하면서도 칙 코리아는 피트 라 로카, 휴버트 로우, 블루 미첼, 사라 본, 스탄 겟츠 등의 앨범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며 활동 폭을 넓혀갔다. 그런 중 1968년 마일스 데이비스로부터 자신의 밴드에 가입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매번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제시해 재즈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 왔던 이 트럼펫 연주자는 당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던 두 번째 정규 퀸텟에 변화를 주어 새로운 재즈-퓨전 재즈를 만들려 하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칙 코리아를 일렉트릭 피아노 연주자로 영입하려 했다. 이에 칙 코리아는 마일스 데이비스 그룹에 합류해 1970년까지 활동하며 <Filles de Kilimanjaro>를 시작으로 퓨전 재즈 시대의 출발을 알린 <Bitches Brew> 등의 명작들을 녹음했다.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 활동을 하는 중에도 그는 리더 앨범을 녹음하는 한편 웨인 쇼터, 조 패럴, 에릭 클로스, 래리 코리엘 등의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하드 밥, 전기적 질감으로 충만한 퓨전 재즈, 새로운 감각적 충경을 가져다 주는 아방가르드/프리 재즈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명백히 드러냈다.

3 아방가르드 그룹 서클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를 떠난 이후 칙 코리아는 스타일을 가로지르는 자신의 음악적 성향을 더욱 견고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먼저 그는 서클(Circle)이라 불리는 프리 재즈 쿼텟을 결성했다. 이 쿼텟은 그룹 이름에 걸맞게 칙 코리아가 리더이면서도 네 연주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자유롭고 진보적인 연주를 펼쳤다. 한편 1971년에는 다시 트리오 편성으로 돌아와 서클의 음악을 연장한 성격의 앨범 <A.R.C>를 녹음하기도 했다.

서클의 활동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2년 사이에 5장의 앨범을 발표할 만큼 강렬했다. 그러나 서클의 진보적 음악은 폭 넓은 대중적 지지를 받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서클 활동의 종료와 함께 칙 코리아는 팝과 록음악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1972년 새로운 밴드 리턴 투 포에버를 결성했다.

4 리턴 투 포에버

리턴 투 포에버는 퓨전 재즈를 표방했지만 마일스 데이비스가 제시했던 기타가 중심이 된 록의 거친 질감을 반영한 사운드와는 다른 음악을 추구했다. 전반적인 사운드는 부드러웠고 라틴적인 색채를 띄고 있어 한층 산뜻한 느낌을 주었다. 그 가운데 첫 앨범 <Return To Forever>(1973)에 담긴 “What Game Shall We Play Today”, “Cristal Silence”, 두 번째 앨범 <Light As A Feather>(1973)에 담긴 “Spain”은 칙 코리아를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스페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의 “El Concierto De Aranjuez” 중 2악장 “Adagio”를 인트로로 차용한 “Spain”은 라틴 스타일의 퓨전 재즈를 추구하는 그룹의 음악을 이상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룹은 1977년까지 멤버의 변화를 겪으며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알 디 메올라의 기타가 색소폰을 대신하면서부터는 라틴적인 색채는 옅어지고 우주적인 느낌마저 드는 록적인 맛이 강해졌다. 1976년도 앨범 <Romantic Warrior>는 탄탄한 호흡, 서사적인 흐름, 화려한 기교가 어우러진 솔로가 어우러진 음악으로 퓨전 재즈의 명반으로 남아 있다.

5 게리 버튼과의 듀오

리턴 투 포에버로 퓨전 재즈의 중심에 서면서도 칙 코리아는 다른 활동을 병행했다. 그 가운데 비브라폰 연주자 게리 버튼과의 듀오 활동은 리턴 투 포에버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두었다. ECM 레이블의 제작자 맨프레드 아이허의 제안으로 결성된 듀오는 <Cristal Silence>(1973)를 시작으로 <Duet>(1979), <In Concert, Zürich, October 28, 1979>(1980)에 이르는 일련의 앨범들을 통해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알터 에고(Alter Ego)라도 되는 듯 곡의 정서를 공유하고 한 연주자가 두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멜로디라인을 자연스럽게 이어 나가는 절정의 호흡을 보였다.

한편 게리 버튼과의 듀오 활동을 외에도 그는 허비 행콕, 프리드리히 굴다와의 피아노 듀오 활동, 색소폰 연주자 마이클 브레커, 베이스 연주자 데이 고메즈, 스티브 갣으로 구성된 쿼텟 활동, 미로슬라브 비투스, 로이 헤인즈 등 첫 번째 트리오 앨범의 멤버들과의 활동, 스트링 쿼텟이 함께 한 섹스텟과 셉텟 활동, 스티브 쿠잘라와의 듀오 활동 등 어쿠스틱 사운드가 중심이 된 새로운 음악적 모험을 계속했다.   

6 일렉트릭 밴드

그렇게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연주자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던 중 칙 코리아는 1986년 당시 퓨전 재즈 전문 레이블로 부상한 GRP 레이블과 계약하면서 새로운 그룹 “일렉트릭 밴드”를 결성했다. 존 패티투치(일렉트릭 베이스) 데이브 웨클(드럼) 에릭 마리엔탈(색소폰) 등 당시 막 떠오르고 있던 젊은 연주자들이 함께 한 일렉트릭 밴드는 첫 앨범 <Chick Corea Electric Band>를 시작으로 1993년 <Paint The World>에 이르기까지 멤버의 변화 속에서 6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1970년대와는 다른 감수성을 지닌 새로운 퓨전 재즈, 그러니까 1980년대들어 퓨전 재즈가 도시적 질감을 연출하는 과정에서 부드러운 연주음악으로 변질되던 것과 달리 네 연주자가 일사분란한 호흡으로 설정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한편 재즈 본연의 연주적 즐거움을 살린 퓨전 재즈를 선보이며 큰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

한편 일렉트릭 밴드를 하는 중에도 그는 어쿠스틱 사운드를 잊지 않았다. 그래서 일렉트릭 밴드의 멤버 존 패티투치, 데이브 웨클에게 어쿠스틱 악기를 연주하게 해 <Chick Corea Akoustic Band>(1989)같은 트리오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다.

7 다채로운 1990년대와 2000년대 활동

 1990년대 이후 그의 활동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일렉트릭 밴드의 향수를 지닌 앨범 <Timewrap>(1995), 보컬 바비 맥퍼린과 함께 한 앨범 <Play>(1992), 세인트 폴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모차르트의 클래식을 연주한 앨범 <Mozart Sessions>(1996), 왈라스 로니, 조슈아 레드맨, 케니 가렛, 크리스티안 맥브라이드 등 당시 재즈의 기대주로 떠오르던 영 라이언들과 함께 한 앨범 <Remembering Bud Powell>(1997), 자작곡 “Spain”를 협주곡으로 확장해 연주한 앨범 <Corea Concerto>(1999) 등으로 장르와 시대를 넘나드는 음악을 선보였다.

200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각기 다른 연주자로 구성된 5개의 트리오 편성으로 연주한 박스 세트 앨범 <5 Trios>(2007) 등 다양한 트리오 앨범 녹음을 비롯해 반조 연주자 벨라 플랙과 함께 한 앨범 <The Enchantment>(2007), <Two>(2015), 모차르트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재즈 퀸텟과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담은 앨범 <The Continents>(2012), 일본의 피아노 연주자 히로미 우에하라, 이탈리아 피아노 연주자 스테파노 볼라니와의 듀오 앨범, 리턴 투 포에버, 일렉트릭 밴드, 게리 버튼과의 듀오 등 과거의 그룹의 새로운 앨범, 그의 70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축제 같은 공연을 담은 앨범 <The Musician>(2016), 그리고 스티브 갣(드럼)과 함께 한 앨범 <Chinese Butterfly>(2018)에 이르기까지 앨범마다 음악적 방향과 색을 달리하며 계속 신선한 음악을 이어왔다.

이처럼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매우 다채로운 활동을 해왔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과연 그를 스타일리스트, 그러니까 눈을 감고 들어도 단번에 그임을 알아챌 수 있는 그만의 독특함을 지닌 연주자라 부를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긴 리턴 투 포에버나 일렉트릭 밴드에서의 강렬하고 화려한 사운드와 서클에서의 아방가르드 사운드, 모차르트의 클래식 연주를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칙 코리아를 스타일리스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장르와 질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피아노 혹은 건반 연주는 하나의 일관된 색채, 스타일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재즈의 과감한 화성 전개, 라틴 음악의 화려한 리듬감, 클래식의 탄탄한 구성 등을 소화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 전개해왔다. 이것은 특히나 이번에 우리가 직접 만나게 될 솔로 공연을 보면 더욱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II. 개성 강한 솔로 연주 활동

칙 코리아는 1966년 첫 앨범 <Tones For Joan’s Bones>부터 올 해의 <Chinese Butterfly>에 이르기까지 100장이 넘는 앨범을 발표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중에 피아노 솔로 앨범은 몇 장 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워낙 다채로운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1 <Piano Improvisation vol.1 & 2>

칙 코리아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은 1971년에 녹음되었다. 게리 버튼과의 듀오 앨범을 기획했던 ECM 레이블의 맨프레드 아이허의 또 다른 제안에 의해서였다. 1969년 ECM 레이블을 설립한 이후 제작자 맨프레드 아이허는 칙 코리아, 폴 블레이, 키스 자렛 등의 피아노 연주자에게 솔로 앨범 녹음을 제안했다.

이 제안에 제일 먼저 응한 연주자가 바로 칙 코리아였다. 그는 1971년 4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이틀에 걸쳐 즉흥 연주를 녹음했다. 이 녹음은 두 장의 앨범 <Piano Improvisations Vol. 1>과 <Piano Improvisations Vol. 2>로 나뉘어 발매되었다. 앨범에서 칙 코리아는 서정적이면서도 멜로디에만 의지하지 않는, 화성적 섬세함, 여백 사이로 솟아 오르는 역동적 에너지가 어우러진 연주를 펼쳤다. 그리고 그 연주를 통해 재즈, 클래식, 라틴 음악을 아우르는 자신의 음악적 근간을 드러내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정교한 그 연주가 이전 연주들, 특히 서클에서의 연주에 비해 한층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쉬웠다는 것이다. 사실 서클 활동을 하면서 칙 코리아는 새로운 연주를 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연주가 타인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즉, 대중과의 교감, 호흡에 대해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두 장의 즉흥 연주 앨범의 서정성, 편안함은 바로 그 고민의 결과라 할 수 있다.

2 <Delphi I, II, III>

칙 코리아의 두 번째 솔로 연주 녹음은 1978년에 이루어졌다. 당시 그는 리턴 투 포에버 활동을 종료하고 허비 행콕과의 듀오 연주, 게리 버튼과의 듀오 연주를 비롯한 다양한 솔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 중 1978년 10월 이틀에 걸쳐 그는 미국 오레곤주의 쉐리든에 있는 델피안 스쿨에서 솔로 연주를 녹음했다. 델피안 스쿨은 (배우 탐 크루즈도 믿는다는) 사이언톨로지교의 창시자인 론 하워드가 설립한 학교였다. 칙 코리아는 1960년대 후반부터 론 하워드의 책을 읽은 후 사이언톨로지교를 신봉하게 되었다. 음악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틀에 걸친 녹음은 두 장의 앨범 <Delphi 1>(1979), <Delphi II & III>(1980)로 나뉘어 발매되었다. 이들 앨범은 델피안 스쿨을 견학하며 받았던 인상을 연주한 “Delphi”, 그가 영향을 받은 아트 테이텀을 대표하는 스트라이드 주법을 자기 식으로 자유롭게 연주한 “Stride Time”를 비롯해 “New World”, “Ballet”, “Poem” 등의 연작 연주와 몇 곡의 짧은 연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연주는 왼손과 오른 손의 대조적인 움직임으로 역동적인 동시에 서사적 리듬을 느끼게 했다.

3 <From Nothing>

한편 칙 코리아는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 시절부터 일본 레이블에서 별도의 앨범을 녹음하곤 했다. 재즈를 즐기는 것을 넘어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주자들의 앨범을 직접 제작하는 것에도 뛰어난 일본 제작자들이 일찌감치 칙 코리아에게 관심을 보인 덕이었다.

일본에서만 발매된 앨범 중에는 1982년에 녹음된 솔로 앨범 <From Nothing>도 있다. 1996년이 되어서야 세계적으로 공개된 이 앨범에서 그는 “From Nothing”의 연작 8곡과 “Synthesis” 한 곡을 연주했다. 그 가운데 8곡의 “From Nothing”은 사이언톨로지교의 10개 공리 가운데 첫 3개의 공리에 대한 칙 코리아의 사색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이언톨로지교의 첫 3 공리는 정적인 것(Static)에 관련된 것이다. 칙 코리아는 그 정적인 상태를 향하는 과정에서의 긴장, 운동성을 그리려 한 듯 고정된 화성이나 멜로디 없이 시종일관 긴장 속에서 왼손과 오른 손이 만났다가 헤어지는 자유 즉흥 연주를 펼쳤다. 이전의 <Piano Improvisations>, <Delphi>와 궤를 같이하면서도 한층 더 과감해진 연주였다.

4 <Children’s Song>

<From Nothing> 앨범 이후 칙 코리아는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프리드리히 굴다, 니콜라스 이코노모 등과 협연하고 스트링 쿼텟이 가세한 섹스텟 연주 등 비교적 클래식적인 맛이 나는 앨범들을 녹음해갔다. 그런 중 1983년 그는 다시 ECM 레이블에서 새로운 솔로 앨범 <Children’s Song>을 녹음했다. 같은 제목의 연작 20곡으로 이루어진 앨범이었다.

그는 20곡의 “어린이 노래”를 1970년대 초반부터 조금씩 썼다. 그래서 “No.1”은 1972년 게리 버튼과의 첫 듀오 앨범 <Cristal Silence>와 리턴 투 포에버의 1973년도 앨범 <Light as a Feather>에서 연주되었고, “No.5”와 “No.15”는 1978년도 쿼텟 앨범 <Friends>을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No.3”는 리턴 투 포에버의 앨범 <Hymn of the Seventh Galaxy>(1973)에서 “Space Circus Part 1”으로, “No.9”는 앨범 <The Leprechaun>에 서 “Pixiland Rag”으로 먼저 연주되기도 했다.

칙 코리아는 20곡의 “어린이 노래”를 “어린 아이의 영혼이 보여주듯, 단순함을 아름다움으로 보여주기 위해” 썼다. 이를 위해 헝가리 출신의 클래식 작곡가 벨라 바르톡의 <미크로코스모스>를 모범으로 삼았다. 총 153곡으로 이루어진 <미크로코스모스>는 어린이의 피아노 교습을 목적으로 씌어졌으며 그만큼 뒤로 갈수록 연주의 난이도가 높아진다. 칙 코리아의 “어린이 노래” 또한 갈수록 화려하고 복잡해진다.    

5 <Expressions>

일렉트릭 밴드를 해체한 후 칙 코리아는 다시 스튜디오의 피아노 앞에 홀로 앉아 앨범 <Expressions>를 녹음했다. 1994년에 발매된 이 앨범은 이전 그의 솔로 앨범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이전 앨범들이 자작곡 중심의 연주로 채워졌다면 이번 앨범은 “Lush Life”를 시작으로 “Smile”에 이르기까지 널리 알려진 스탠더드 곡을 중심으로 연주한 것. 재즈사를 빛낸 유명 연주자들에 대한 자신의 경의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그는 앨범 전체를 아트 테이텀에게 헌정한다고 했다. 또한 피아노 음악의 전통을 유지시킨 과거와 현재의 피아노 연주자들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했다. 그와 함께 벨라 바르톡, 듀크 엘링턴, 아마드 자말, 버드 파웰, 델로니어스 몽크, 호레이스 실버, 윈튼 켈리, 글렌 굴드, 빌 에반스, 허비 행콕, 맥코이 타이너, 키스 자렛, 이보 포고렐리치 등 클래식과 재즈의 피아노 연주자들을 특별히 언급했다.

실제 그의 솔로 연주는 그에게 영향과 영감을 준 연주자들에 대한 경의를 드러냈다. 버드 파웰의 “Oblivion”을 아트 테이텀 스타일로 연주하여 두 피아노 연주자에 대한 경의와 두 연주자들의 관련성-재즈 피아노 역사에서의-을 드러내는가 하면, “Stella By Starlight”에서는 빌 에반스의 모던한 서정성을 그리는 연주를 펼친 것이 좋은 예이다.

이 외에도 그는 모든 연주에서 언급한 연주자들의 그림자를 희미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양한 흔적들 속에서 칙 코리아의 존재감이 우뚝 솟아난다는 것이다.

6 <Solo Piano: Originals & Standards>

1999년 11월 칙 코리아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스위스, 일본에서 솔로 피아노 공연을 했다. 대형 클래식 콘서트 홀부터 클럽 등 다양한 장소에서 이루어진 그의 솔로 공연은 스탠더드 곡과 재즈 연주자들의 곡을 연주한 초반과 자작곡, 클래식 작곡가 알렉산더 스크리아빈의 전주곡 2곡을 연주한 후반부로 이루어졌다.

공연 일정을 마친 후 그는 녹음된 연주를 세밀하게 듣고 만족스러운 연주만을 골라 두 장의 앨범 <Solo Piano: Originals>와 <Solo Piano: Standards>로 묶었다. 그 가운데 “Armando’s Rhumba”, “Spain”, “Children’s Song #6” 등의 자작곡과 알렉산더 스크리아빈의 곡을 연주한 “Originals” 앨범은 재즈의 즉흥성과 클래식적인 질감을 절묘하게 오가는 연주로 이루어졌다. 특히 알렉산더 스크리아빈의 “Prelude 4, opus 11”과 “Prelude 2, opus 11”에서 기존의 악보 사이로 이질감 없이 솟아오르는 솔로는 그가 원곡을 깊이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연주를 즉흥 연주로 만들어 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스웨덴 공연에서 관객들이 제시한 아이디어나 주제-예를 들면 “코끼리를 쫓는 작은 개”-에 맞추어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한 “April Snow”, “The Chase”, “The Falcon”, “Swedish Landscape”는 주어진 주제에 대한 정확한 공감과 이를 피아노로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칙 코리아의 뛰어남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한편 델로니어스 몽크, 버드 파웰의 곡과 스탠더드 곡을 연주한 “Standards” 앨범은 분위기에 있어서는 1994년의 <Expressions>와 유사했다. 다시 한번 그는 스탠더드 곡들이 여전히 새로운 연주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델로니어스 몽크나, 버드 파웰의 연주가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자신을 통해 새로이 변주되어 새로운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7 <Portraits>

이후 칙 코리아의 새로운 솔로 앨범 발매까지는 14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2012년에 발매된 앨범 <The Continents>에서‘재즈 퀸텟과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녹음 한 후 남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추가로 11곡의 즉흥 솔로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협주곡”에 부가된 연주였다.

2014년에 발매된 앨범 <Portraits>는 스탠더드 곡 중심의 연주와 자작곡과 스크리아빈, 바르톡의 클래식을 연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2000년에 발매된 <Solo Piano> 궤를 같이했다. 하지만 “저의 집 거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로 시작해 자신의 음악을 정리하고 설명하는 칙 코리아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는 것이 이전 솔로 앨범들과 다른 정겨움을 느끼게 했다.

그는 빌 에반스, 델로니어스 몽크, 버드 파웰에 대한 애정과 존경, 스크리아빈과 바르톡의 클래식이 자신에게 준 영향과 영감,‘Children’s Song’ 같은 자작곡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주었다. 이런 설명들은 화려한 기교, 외부와 긴장과 이완을 오가는 음들의 사용, 깔끔하고 명쾌한 터치 등으로 이루어진 그의 연주를 보다 더 친숙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한편 이 앨범에서도 그는 즉흥 솔로 연주를 펼쳤다. 이번에는 관객 한 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무대에 오르게 한 뒤 그 모습을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의 화가처럼 연주로 표현했다. 그렇게 해서 폴란드의 크라쿠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미국 매릴랜드의 이스턴,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 등에서의 공연에서 총 10명의 관객에 대한 초상(Portraits)이 그려졌다.

III. 서울 공연에 대한 기대

그렇다면 이번 서울 공연에서 칙 코리아는 어떤 연주를 펼칠까? 언제나 자유로운 마음으로 상황에 따라 연주를 다르게 해온 만큼 이본 공연을 예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그렇기에 이번 공연이 더욱 기대가 된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공연을 예상해 보면 2000년의 “Piano Solo” 공연이나 2014년의 “Portraits” 공연과 비슷한 애용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해도 연주의 내용은 다를 것이다. 같은 곡이라 해도 늘 다르게 연주해왔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공연에서도 그가 관객들의 제안에 따라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관객과 소통하고 순간의 감흥을 따라 연주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이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상상해보면 내 모습을 보고 솔로 연주를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예쁜 멜로디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내 모습이 음악으로 그려진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하는 연주는 관객들에게도 그의 상상력이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기왕이면 이번 공연의 일부가 언젠가 새로이 발매될 솔로 앨범에 수록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늘 새로운 연주를 하는 것은 재즈 연주자의 숙명이다. 지난 자신이 쌓은 성을 허물고 다시 새로운 성을 만드는 것. 어쩌면 신을 기만했다는 이유로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했던 시지프스의 벌(罰)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주는 즐거움을 생각하면 새로운 연주를 하고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무지개처럼 화려하고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 온 칙 코리아의 삶이 이를 증명한다. 부디 그 삶의 아름다운 빛을 이번 공연에서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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