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part d’Argile – Henri Texier (Label Bleu 2000)

ht이 앨범은 하나의 이벤트적인 성격을 띈다. 1970년 쟝 루이 베르투첼리에 의해 만들어졌던 영화 <Remparts d’Argile-점토 성벽 정도로 해석된다.->에 대한 즉흥 연주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30년이나 지난 영화에 새삼 음악을 집어 넣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쟝 루이 베르투첼리에 의하면 이 영화의 제작방식 자체가 재즈와도 같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하나의 주제만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즉흥적인 방식으로 흐르게 하며 여기에 음악은 없이 약간의 대화와 소리로만 영화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감독이 앙리 텍시에를 만나게 되었고 앙리 텍시에가 1999년 아미앙 국제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앞에 두고 즉흥 연주를 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스튜디오에서 영화와 함께 연주를 한 것을 녹음한 것이 이 앨범이 된다.

지금까지 앙리 텍시에는 각 앨범마다 편성을 다르게 해왔다. 이 앨범은 피아노가 없는 트리오 형식을 띄고 있다. 이런 피아노가 없는 트리오의 이점은 솔로를 보다 자유롭게 하고 베이스의 역할을 단순 리듬 연주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래서 보다 즉흥적인 면을 강조할 수 있다. 이런 편성은 1995년의 <Carnet de Route>와 1999년 <African Suite>를 통해서 들려주었던 프로젝트 트리오 Romano/Sclavis/Texier의 음악과 비교하게 한다. 음악적인 공간에서도 남과 북으로 차이를 보이지만 모두 아프리카를 무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앨범은 솔로만큼이나 세 연주자가 하나가 되어 연주하는 것이 더 많이 고려된 느낌이 강하다는 데서 차이를 보인다.

일종의 영화 음악을 생각하고 연주한 만큼, 이 앨범은 ‘Prologue’와 ‘Epilogue’를 지닌 서사적인 형식을 띈다. 영화의 줄거리를 몰라 앨범의 흐름이 영화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영화를 떠나더라도 곡들의 배열이 하나의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런 서사성은 각 곡이 지닌 테마부분이 감성적인 측면을 많이 지니고 있음으로 해서 더 강조된다. 그리고 즉흥 솔로는 이 테마의 멜로디와 감성적인 면을 받아서 발전시킴으로 끝까지 서사성을 유지하게 한다. 영화가 말하지 못했던 부분을 말하려고 하는 의도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앙리 텍시에가 해왔던 작업과도 통하는 것이다.

이 앨범에서 느끼게 되는 것은 영화의 무대가 끝없는 사하라 사막의 한 외진 마을을 무대로 하고 있는 것처럼 끝없는 긴장과 정지, 그리고 후덥지근함이다. 단속적으로 진행되는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과 색소폰이나 클라리넷을 통해서 다가오는 사막기후의 건조함이 앨범 전체에 드러난다. 그리고 다양한 리듬은 아프리카 토속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리듬은 진행의 느낌보다는 한 공간에서 반복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분명 음악적으로 토니 라베송은 완급을 조절해가며 아주 다양한 리듬의 변화를 선보이고 있는데 말이다.

이러한 이미지를 세 연주자는 즉흥 연주로서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주 치밀하게 고려된 느낌을 준다. 때로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속적인 표현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슬프다 싶을 정도로 애절한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숨막힐 정도로 몰아 붙이기도 하고 때로는 무엇을 암시하듯 침묵에 빠지기도 한다.

연주의 측면에서 본다면 트리오를 이루는 세 연주자가 힘의 균형을 이루며 연주하고 있다. 사실 각 곡들이 가지고 있는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테마에 돌아가면서 솔로를 하고 다시 간단한 테마의 반복이 전부다. 그런데 막상 각 곡들을 듣노라면 아주 정교하고 거대한 음악을 듣는 느낌이 든다. 바로 세 연주자가 음악 이상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토니 라베송의 드럼은 리듬적인 요소와 소리의 색을 강조하는 요소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앙리 텍시에의 베이스는 천둥처럼 강한 힘과 단순함, 그리고 곳곳에 드러나는 멜로디적인 요소로 정지된 시간을 느끼게 한다. 한편 이 앨범에서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세바스티앙 텍시에의 연주다. 아버지 앙리 텍시에의 후광으로 재즈계에 데뷔하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자기 색을 확립하고 있음을 들려준다. ‘Sacrifice’같은 곡에서 들려주는 소리와 기교를 결합한 연주는 존 콜트레인의 프리시대나 듀이 레드맨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잘 된 연주를 보여준다.

한편 이 앨범을 녹음하고 공동제작하고 있는 피에르 기노의 역할도 무시 못한다. 그는 앙리 텍시에가 아미앙 영화제에서 공연할 때부터 영화의 이미지와 음악간의 조화를 위해 이 작업에 참여해 왔다. 이번 앨범 녹음에서 그는 즉흥을 기조로 하면서도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세 연주자의 공간을 분리하고 영역을 경계를 놓아 단순히 오버하는 연주가 담긴 프리 재즈 앨범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특히 드럼의 공간감을 넓게 유지하면서도 뒤로 멀리 후퇴시키지 않고 다른 두 명의 연주자와 거의 대등한 위치에 놓아서 드럼을 솔로악기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은 올해 발표된 앨범들 중에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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