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에도 불구하고 젊은 감수성으로 새로움의 영역을 탐구하고 있는 기타 연주자 짐 홀, 그리고 이탈리아의 빌 에반스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빌 에반스의 피아니즘을 계승한 시적이고 정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엔리코 피에라눈지가 만났다. 한편 짐 홀이 과거 빌 에반스와 함께 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많은 감상자들은 빌 에반스와 짐 홀의 앨범 <Undercurrent>(Blue Note 1963)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실제 호흡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 앨범은 <Undercurrent>에 필적할 만 하다. 그저 서로 좋은 덕담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닌 농도 깊은 미학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그렇다고 멜로디에 천착하는 연주에 머물지 않고 더 확장된 연주를 들려준다. 그 확장된 연주는 거의 게임에 가깝다. 체스 판 위에 앉아 있는 두 연주자의 표지 사진처럼 이번 앨범에서 두 연주자는 단순하게 보이지만 상당히 계산된 코드들의 진행과 중간에 부여된 침묵을 기반으로 대화, 경쟁, 대립 등 두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드러낸다. 이것은 단지 대가적 기질만으로는 만들기 힘든 관계다. 서로가 얼마나 상대를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부분인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두 연주자는 비록 이번이 첫 대화이기는 하지만 오랜 세월 서로를 지켜본 듯하다. 그래서 누구 하나 리더라 할 수도 없는 동등한 관계에서 꿈과 현실을 오가고, 시적인 단아함과 수학적 정교함을 오가는 연주가 가능했던 것이다. 가히 듀오의 미학이라 할 수 있는 앨범이다.

Duologues – Jim Hall & Enrico Pieranunzi (Cam Jazz 2005)
3.5 |

Duologues – Jim Hall & Enrico Pieranunzi (Cam Jazz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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