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salida – Danilo Perez (Mack Avenue 2022)

기후와 이민 문제에 대한 다닐로 페레즈의 너무나 이상적인 답변

중앙 아메리카에 위치한 파나마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다닐로 페레즈의 음악을 간단히 설명하라 하면 아마도 라틴 재즈가 아닐까 싶다. 12장의 정규 앨범을 통해 그는 파나마를 중심으로 한 라틴 지역의 민속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를 재즈의 언어로 표현한 음악을 성공적으로 선보여왔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앨범은 여러모로 의외로 비추어질 수 있다. 이전과는 다른 질감의 음악, 그러니까 라틴 색채가 핵심에 자리잡았던 음악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아노 연주자보다 작곡가 밴드 리더로서의 다닐로 페레즈가 더 많이 보인다. 따라서 연주자 정보 없이 듣는다면 쉽게 다닐로 페레즈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이 앨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8년 그가 자신이 공부했던 미국 버클리 음대의 지원으로 설립한 버클리 글로벌 재즈 협회를 살펴야 한다. 이 협회는 공연을 통해 인간애를 나누고 문화적으로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연주자들을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앨범에서 다닐로 페레즈와 함께 한 글로벌 메신저스의 멤버들이 바로 버클리 글로벌 재즈 협회의 졸업생들이다.

그런데 세계에 긍정적 영향을 주겠다는 의도에 걸맞게 참여한 연주자들이 미국과 파나마는 물론 팔레스타인, 그리스, 요르단, 칠레, 쿠바 등 다양한 지역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게다가 그들 중 몇은 모국의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그들의 언어로 노래한다. 말 그대로 글로벌한 편성이다.

그렇다면 음악은 어떨까? 사실 세계 평화를 위한 친선대사들의 모임 같은 느낌의 편성으로 음악을 만들기란 그리 쉽지 않다. 작곡가 연주자 모두 자신의 음악 외에 함께 하는 동료들의 고유한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균형이나 일관된 질감의 유지 등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다닐로 페레즈와 글로벌 메신저스는 이를 해냈다. 앨범에 담긴 8곡은 충분히 그리스적이고 중동적이고 라틴적이면서도 또한 그 어느 것도 아닌, 말 그대로 범세계적(Global)한 모습을 보인다. 다닐로 페레즈 이전에도 이러한 시도가 없지는 않았지만.

또한 보편적인 음악 언어-유럽 클래식이 정립해 우리까지 사용하고 있는-에만 익숙한 평범한 감상자들도 큰 어려움 없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돈되고 어우러져 있다. 이 조화로운 어울림에서 어떤 감상자는 음악의 위대함을 넘어 “우리는 하나” 같은 세계 평화적인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떠올릴 지도 모른다.
실제 작곡가 다닐로 페레즈는 이 앨범에서 각각 4곡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조곡을 통해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를 담으려 했다. 그 중 첫 조곡 “유리벽”은 지구 온난화를 위시한 기후 변화 문제를, “국경”은 난민, 이민자 등의 문제를 환기한다. 그에 걸맞게 서구 문화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색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 정교한 리듬과 낯선 질감은 원시적 자연과 이국적 공간을 그리게 한다.

그런데 이들 주제는 쉽게 답을 낼 수도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다닐로 페레즈는 문제 제기를 넘어 스스로 세계인들의 상호 이해와 배려라고 답을 제시한 것 같다. 연주자들처럼 화합하면 그 음악 같은 긍정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너무나 막연한 것은 아닌지. 지난할 과정을 건너 뛴 이상적 상태를 너무나도 쉽게 이야기한 것은 아닐까? 물론 음악은 변화의 동인이 될 수는 있어도 주체가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나친 이상주의는 공허한 느낌을 준다. 도달하기 힘든 곳에 대한 동경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음악에 이상적 상태가 아닌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보다 구체적인 서사를 넣었다면 작곡가의 의도가 더 잘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다. 오랜 어려움 끝에 가족과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사로 한 “국경 조곡” 중 “Adrift”, “Al-Musafir Blues”처럼 말이다.

이 앨범의 타이틀은 “국화”를 의미한다. 이 꽃은 서정주 시인이 표현했던 것처럼 시간에 걸친 성숙을 의미한다. 다닐로 페레즈가 “국화”로 앨범 타이틀을 정한 것도 이러한 의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막연한 희망보다는 그 길로 나아가는 행동을 감상자에게 독려했다면 이 아름다운 음악이 더 의미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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