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참 무심하게도 빠르다. 피아노 연주자 칙 코리아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피아노 연주자는 2021년 2월 9일 갑작스레 발견된 희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이후 많은 부고 기사 및 그의 음악을 조망하는 특집 기사가 나왔다.
이를 계기로 칙 코리아의 음악 인생을 살펴보면, 그가 트리오를 중심으로 이력을 쌓았던 다른 피아노 연주자들과 다른 삶을 살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기이하게도 리턴 투 포에버나 일렉트릭 밴드 등 퓨전 재즈 밴드는 비교적 오랜 시간 유지했지만 트리오는 꾸준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가 워낙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었던 것에 기인한다. 그는 전통적인 재즈, 클래식, 월드 뮤직, 퓨전 재즈 등을 아울렀으며 이를 위해 수 많은 연주자와 다채로운 편성으로 연주했다. 트리오 연주는 따라서 일부분일 수 밖에 없었다.
대신 그의 모든 트리오 앨범들은 훌륭했다. 그의 첫 번째 트리오 앨범은 1968년에 발매된 <Now He Sings, Now He Sobs>였다. 미로슬라브 비투스(베이스), 로이 헤인즈(드럼)과 함께 한 이 앨범은 기존 하드 밥을 넘어 새로운 재즈를 개척하려 했던 당시의 흐름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이 앨범에서 칙 코리아는 곡의 구조를 팽팽하게 유지하면서도 곡예를 하는 듯 자유롭고 현란한 솔로를 펼쳤다. 포스트 밥의 원형이라 할만한 연주였다.

첫 번째 트리오 앨범은 평단과 대중 모두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칙 코리아는 이 트리오를 지속하지 않았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1970년까지 마일스 데이비스 그룹에서 그는 퓨전 재즈의 탄생에 일조했다. 이후 1970년 앤서니 브랙스턴(색소폰), 데이브 홀랜드(베이스, 배리 앨철(드럼)로 구성된, 프리 재즈, 아방가르드 재즈를 지향하는 그룹 서클을 결성했다. 그리고 서클의 베이스, 드럼 연주자와 함께 트리오 앨범 <The Song Of Singing>(1970)과 <A.R.C>(1971)를 녹음했다. 이 트리오는 서클에서처럼 매우 자유롭고 긴장 가득한 연주를 펼쳤다. 피아노 혼자가 아닌 트리오 멤버 모두가 리더였기에 가능한 연주였다.

1970년대 칙 코리아는 퓨전 재즈의 열풍을 이끄는 리더로 리턴 투 포에버를 이끄는 한편 게리 버튼과의 듀오 활동에 매진했다. 그 결과 새로운 트리오 앨범은 10년 이상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1982년, 미로슬라브 비투스, 로이 헤인즈와 다시 만나 발표한 앨범 <Trio Music>은 세 연주자의 자유로운 즉흥 연주와 델로니어스 몽크의 곡을 포스트 밥 스타일로 해석한 연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10여년의 공백을 무색하게 했다. 이 트리오는 이 앨범을 계기로 공연을 이어갔다. 그 중 1984년 스위스 공연을 담은 <Trio Music Live in Europe>(1986), 1982년 미국 공연을 담은 <The Trio Live From Country Club>(1996)이 발매되었다. 이들 앨범에 담긴 트리오 연주는 스튜디오 앨범의 델로니어스 몽크의 곡을 연주했을 때처럼 아방가르드 재즈보다는 전통적이면서 한층 현대적인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미로슬라브 비투스, 로이 헤인즈와 트리오 활동을 하면서도 그는 여러 연주자와 만나는 다채로운 활동을 병행했다. 그런 중 1986년 일렉트릭 밴드를 결성하면서 활동의 중심을 이 퓨전 재즈 밴드에 맞추었다. 이 밴드에서 그는 존 패티투치(일렉트릭 베이스) 데이브 웨클(드럼) 에릭 마리엔탈(색소폰) 등 당시 막 떠오르던 신예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했다. 이 밴드의 인기는 리턴 투 포에버에 버금갈 정도로 높았다.
그런 인기 속에 과거 그룹 서클에서 트리오를 분리했던 것처럼 본 패티투치와 데이브 웨클만을 따로 불러 트리오 연주를 펼쳤다. 어쿠스틱 밴드라 명명된 이 트리오는 <Summer Night: Live>(1987), <Chick Corea Akoustic Band>(1989), <Alive>(1991) 그리고 지난 해 뒤늦게 유작으로 발매된 <Live>를 남겼다. (데이브 웨클 대신 비니 콜라이우타가 드럼을 연주한 <Live From Blue Note Tokyo>(1996)도 어쿠스틱 밴드의 이름으로 발매되긴 했다.) 이 한 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두 장의 라이브 앨범에서 트리오는 신예와 베테랑의 조합이라는 것을 잊게 할 정도로 완벽한 삼각형을 이루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당대 최고라 할만한 연주였다.

어쿠스틱 밴드 후 칙 코리아는 다시 10년 이상 새로운 트리오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2007년 이런 기다림을 해소해주겠다는 듯 5개의 다른 트리오 편성의 연주를 모아 놓은 박스 세트 앨범 <Five Trios>를 발매했다. 존 패티투치, 에디 고메스, 크리스티안 맥브라이드, 아드리앙 페로(이상 베이스), 안토니오 산체스, 잭 드조넷, 제프 랄라드, 에어토 모레이라, 리치 바쉐이(이상 드럼)와 함께 한 다섯 개의 트리오 연주는 인터플레이와 솔로 모두에서 숨막히는 밀도로 일회성의 연주임을 잊게 해주었다.
그 다음 트리오 앨범이 나오기까지는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012년 에디 고메즈(베이스), 폴 모션(드럼)과 함께 앨범 <Further Explorations>을 발표한 것. 멤버 구성에서 예측할 수 있듯이 빌 에반스를 주제로 한 이 앨범에서 칙 코리아는 어느 때보다 자신의 깊은 감성을 드러냈다.

또 다른 트리오 앨범이 나오기까지는 다시 8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앨범으로 발매되지 않았을 뿐 그 사이 칙 코리아는 트리오 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2010년부터 크리스티안 맥브라이드(베이스), 브라이언 블레이드(드럼)과 함께 공연을 하곤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2013년에 발매된 앨범 <Trilogy>였다. 스페인, 스위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일본 등에서의 공연을 정리한 이 앨범에 담긴 트리오의 연주는 완벽했다. 키스 자렛 트리오의 이상적인 어울림에 견줄 정도로 직관적인 솔로, 서로의 마음을 읽는 듯한 인터플레이가 숨막힐 정도로 탄탄했다. 이후 미국, 이탈리아, 스위스, 캐나다, 일본 등에서 가졌던 공연에서 최상의 연주를 정리해 발표한 앨범 <Trilogy 2>(2019)도 마찬가지였다. 각 공연 모두를 듣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트리오의 연주는 극강이었다.

간략히 칙 코리아의 트리오 앨범을 정리해보았다. 그는 (박스 세트, 유작 포함) 15장의 트리오 앨범을 남겼다. 60년이 넘는 활동 기간을 생각하면 확실히 적은 수다. 그래서 그의 사망이 더욱 아쉽다. 지난 해 유작으로 발매된 어쿠스틱 밴드의 앨범처럼 다른 트리오 앨범이 또 발매되면 그 아쉬움이 좀 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