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로이드 (Charles Lloyd, 1938.03.15 ~ )

과거와 현재를 모아 미래로 향하는 음악

색소폰 연주자 찰스 로이드가 새로운 앨범 <Tone Poem>을 발매한다. 이번 앨범은 지난 그의 음악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고 지난 것의 반복도 아니다. 과거를 다시 불러와 변주해 새로운 곳으로 감상자를 이끈다. 그러니까 과거와 현재가 시간성을 잃고 하나의 공간에 모여 새로운 시간을 생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이번 앨범만이 아니었다. 그의 음악 인생 거의 전체가 그랬다. 그는 늘 새로움을 향해 나아갔지만 그것을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이루려 하지 않았다.

1938년 3월 15일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에서 태어난 찰스 로이드가 전문 연주자로서의 활동은 1960년 드럼 연주자 치코 해밀튼의 부름을 받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색소폰 연주자 에릭 돌피가 찰스 밍거스 밴드에 합류하기 위해 그룹을 떠나면서 생긴 빈 자리를 그가 맡게 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치코 해밀튼은 색소폰 외에 그룹의 음악 감독 열할까지 그에게 맡겼다. 이에 거의 전권을 위임 받은 색소폰 연주자는 헝가리 출신의 기타 연주자 가보르 스자보를 비롯해 앨버트 스틴슨(베이스), 조지 보해넌(트롬본) 등과 함께 치코 해밀튼 퀸텟을 전통에서 한발 나아가 느슨하게나마 실내악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방가르드 재즈를 느슨하게 반영한 음악으로 이끌었다.

음악 감독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곡도 많이 썼다. <Drumfusion>, <Passin’ Thru>(이상 1962) <A Different Journey>, <Man from Two Worlds>(이상 1963) 등의 앨범에서는 거의 모든 곡을 작곡했다. 그 중에는 “Voice In The Night”, “Passin’ Thru”, “Forest Flower: Sunrise/Sunset”, “Lonesome Child” 등이 있다. 이들 곡들을 그는 이후 수 없이 연주하고 또 연주하게 된다.

치코 해밀튼 밴드에서의 활동을 인정 받아 그는 1964년 첫 리더 앨범을 녹음할 기회를 얻었다. 출중한 존재의 출현을 선언하는 듯 <Discovery!>라 명명된 앨범에서 그는 부드럽고 가벼운 톤으로 이후에도 지속될 하드 밥과 아방가르드의 중간 지점에 놓인 연주를 펼쳤다.

그 가운데 빛나는 것은 역시 첫 곡 “Forest Flower”였다. 한 해 전 치코 해밀튼 밴드의 앨범 <Man from Two Worlds>에서 연주 했던 것에 비하면 전체 밴드의 어울림은 그리 부드럽지 못했다. 그러나 빨리진 템포에 맞추어 온도를 높인 연주는 이미 완성된, 그래서 지속될 하나의 스타일을 예견하게 했다.
이어진 앨범들에서도 그는 치코 해밀튼 밴드 시절의 곡을 다시 연주 했다. 1965년도 앨범 <Of Course, Of Course>에서는 “One For Joan”, “Voice In The Night” 를, 1968년도 앨범 <Nirvana>에서는 “One For Joan/Freedom Traveler: Prayer/Journey”와 스탠더드 곡 “East Of The Sun (And West Of The Moon)”을 새롭게 연주했다. 마치 치코 해밀튼 밴드의 음악 감독 시절을 정리하려는 것 같았다. 확연히 다르게 연주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반복이라 할 수도 없었다. 이전의 연주를 연장하면서 새로움을 살짝 더한 연주였다.

석 장의 리더 앨범을 녹음할 때까지 그는 자신의 밴드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연주와 별개로 전체 음악의 단단함은 덜했다. 게다가 당시 그와 함께 하고 있었던 가보르 스자보와 앨버트 스틴슨이 마약에 중독되어 함께 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그 때 피아노 연주자 키스 자렛이 나타났다. 이 피아노 연주자는 당시 몸담고 있었던 아트 블래키의 재즈 메신저스에서 나오려 했다. 이에 찰스 로이드는 1966년 세실 맥비(베이스), 잭 드조넷(드럼)이 가세한 새로운 쿼텟을 만들어 앨범 <Dream Weaver>를 녹음했다. 1960년대 중반의 아방가르드 재즈를 받아들여 한층 긴장이 강한 음악을 담은 앨범이었다.

앨범 녹음과 함께 공연도 활발히 진행했다. 그 중 1966년 몬트레이 재즈 페스티벌에서의 연주가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다. 앨범 <Forest Flower>에 담긴 이 공연에서 네 연주자는 이제 막 부상한 젊은 연주자답지 않은 완숙한 연주와 안정적인 호흡 그리고 시대에 부응하면서도 한 발 시간을 앞선 음악을 보여주었다. 특히 “Sunrise”와 “Sunset”으로 제대로 분리된 “Forest Flower”에서의 연주는 1960년대 찰스 로이드의 음악적 정점이라 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한편 키스 자렛 또한 21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완성형의 연주를 펼쳤다. 지금 생각하면 이후 펼쳐질 쿼텟 음악의 단초가 이 때 마련되지 않았나 싶다.)

찰스 로이드의 쿼텟은 1966년부터 약 3년여를 활동하며 7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이 사이 쿼텟의 인기는 대단했다. 특히 재즈가 아닌 록을 더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이들의 음악에 반응했다. 전통적인 재즈에서 벗어나 이국적이고 사이키델릭한 맛까지 나는 음악은 “플라워 파워(Flower Power)”를 외치던, 비트족, 히피로 대표되는 1960년대 청춘의 취향에 맞는 것이었다. 그래서 쿼텟은 록 그룹과 무대에 함께 서기도 했다.

그만큼 전통적인 재즈 애호가와 보수적인 평단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찰스 로이드 또한 자신의 인기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는 자신이 일종의 상품처럼 취급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새 그 또한 약물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그래서 과감히 그는 은둔을 선택했다. 그리고 명상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완벽한 은퇴는 아니었다. 공연은 하지 않았지만 앨범은 간간히 녹음했다. 여러 연주자들을 필요에 따라 불러 녹음한 앨범들은 재즈 외에 포크, 록 등의 색채를 보였다.

사이드맨 활동 또한 했다. 그런데 그 내역이 흥미롭다 비치보이스, 셀레브레이션, 도어즈, 캔드 히트 같은 록이나 블루스 그룹과 함께 했던 것이다. 그 중 비치 보이스와 셀레브레이션의 멤버 마이크 러브는 찰스 로이드의 <Warm Waters>(1971), <Waves>(1972) 같은 앨범에 보컬로 참여하는 한편 1979년도 <Autumn In New York>앨범 을 자신의 데스티니 레이블에서 발매하게 하는 등 찰스 로이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찰스 로이드의 은둔은 70년대 내내 이어졌다. 재즈계에서 어느덧 그는 한 때 큰 인기를 누렸던, 지금은 명상에 빠져 재즈 밖을 겉도는 연주자가 되었다. 이런 그를 다시 재즈의 중심으로 불러들인 것은 프랑스 피아노 연주자 미셀 페트루치아니였다.

프랑스와 스위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미국 진출을 꿈꾸던 피아노 연주자는 텍스 드로허라는 드럼 연주자의 소개로 캘리포니아에서 은둔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찰스 로이드를 만났다. 아직 20을 넘기지 못한 피아노 연주자는 단번에 찰스 로이드에게 새로운 음악적 욕망을 자극했다.

그 결과 찰스 로이드는 미셀 페트루치아니와 함께 새로운 쿼텟을 결성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이 쿼텟은, <Montreux 82>, <A Night In Copenhagen> 두 장의 라이브 앨범을 발표했다. 이 때도 찰스 로이드는 “Forest Flower”, “The Call” 등 과거의 곡들을 다시 연주했다. 이들 곡은 10년 이상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찰스 로이드의 연주를 다시 확인하게 해주었다.

찰스 로이드의 복귀에 대중과 평단은 1980년대의 큰 사건이라 평할 정도로 환영했다. 그러나 새로운 쿼텟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셀 페트루치아니가 독자적인 길을 걷기 위해 그룹을 떠난데다가 마침 찰스 로이드 또한 심각한 건강 문제를 겪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캘리포니아의 빅 서(Big Sur)로 돌아간 그를 부른 것은 ECM 레이블의 수장 맨프레드 아이허였다. 이 제작자는 1989년 찰스 로이드를 중심으로 보보 스텐손(피아노), 팔레 다니엘슨(베이스), 욘 크리스텐센(드럼)이 함께 한 앨범 <Fish Out Of Water>를 제작했다. 명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잔잔한, 유럽의 정서가 어우러진 앨범이었다.

보보 스텐손 트리오와의 활동을 마치고 존 애버크롬비(기타) 데이브 홀랜드(베이스), 빌리 히긴즈(드럼)과 함께 한 <Voice In The Night>은 다시금 그를 정상의 인기로 이끌었다. 이 앨범에서 그는 다시 이전 앨범에 담긴 곡들을 소환했다. 앨범 타이틀 곡을 비롯해 “”Forest Flower”, “Requiem” 등 이전 앨범에 담긴 곡들을 다시 연주한 것인데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음악이 지난 시절을 연장하면서 새로운 현재를 구축함을 보여주었다.

과거를 상기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부분단절, 혹은 부분연속을 통한 전진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브래드 멜다우의 피아노까지 가세한 퀸텟 편성으로 녹음한 앨범 <The Water Is Wide>(2000), <Hyperion With Higgins>(2001), <Lift Every Voice>(2002)에서도 그는 자신의 이전 곡들을 새로이 연주했다. 이를 바탕으로 포크, 월드뮤직, 팝 등 재즈 밖의 곡들을 추가해 레퍼토리를 확장해나갔다. 그런 중에도 홀로 기도하듯, 때로는 독백하듯 경건하고 내적인 평화를 갈구하는 듯한 톤과 연주는 여전한 매력을 발산했다.

오랜 친구였던 드럼 연주자 빌리 히긴즈와의 듀오 앨범 <Which Way Is East>(2001), 타블라 연주자 자키르 후세인, 드럼 연주자 에릭 할란드와 함께 한 <Sangam>(2006), 그리스 보컬 마리아 파란투리와 함께 한 <Athens Concert>등 보다 자유롭고 이국적인 음악을 시도한 앨범에서도 그는 “Little Peace”, “Hymn To The Mother”, “”Dream Weaver”, “Prayer”, “Requiem” 등 이전 앨범에서 연주했던 곡을 다시 연주해 그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음을 생각하게 했다.

피아노 연주자 제리 알렌이 함께 했던 쿼텟 앨범 <Jumping The Creek>(2005)을 거쳐 그는 2007년 피아노 연주자 제이슨 모란과 함께 한 쿼텟도 마찬가지였다. 이 쿼텟은 약 10년간 활동하며 <Rabo De Nube>(2008), <Mirror>(2010), <Passin’ Thru>(2017) 등 석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여기서도 색소폰 연주자는 “Desolation Sound”, “Passin’ Thru”, “The Water is Wide”, “Lift Every Voice and Sing”, “Rabo de Nube”, “Dream Weaver”, “how Can I Tell You” 등을 다시 연주해 새로움 속에서도 익숙함을 느끼게 했다.

찰스 로이드는 25년간 ECM 레이블에서 16장의 앨범을 통해 자신이 하고픈 음악을 마음껏 실현했다. 거의 모든 앨범을 직접 제작하던 맨프레드 아이허도 찰스 로이드의 앨범만큼은 연주자에게 맡겼다. 따라서 2015년 색소폰 연주자가 블루 노트와 계약했다는 소식은 뜻 밖이었다.

그 사이 제이슨 모란 대신 제랄드 클레이튼이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었다지만 이것을 결정적 이유라 할 수 없었다. 새로운 쿼텟에 그리스와 헝가리 연주자가 가세해 녹음한 블루 노트 레이블에서의 첫 앨범 <Wild Man Dance>에 담긴 가상의 민속 음악적 색채 또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2016년에 선보인 앨범 <I Long To See You>는 달랐다. 이 앨범에서 그는 기타 연주자 빌 프리셀이 포함된 그룹 마블스와 함께 아메리카나라 물리는, 포크와 컨트리, 루츠 음악 등이 어우러진 음악을 선보였다. 여기에 노라 존스와 윌리 넬슨의 참여는 의외성을 더욱 강화했다. 이것은 포크,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루신다 윌리엄스가 게스트로 참여한 마블스와의 두 번째 앨범 <Vanished Garden>(2018)으로 이어졌다.

이전에 “Water Is Wide”, Wayfaring Stranger” 같은 곡을 통해 미국적인 분위기를 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미국적인 색채를 강화한 음악은 확실히 예상 밖이었다. 그렇다고 생경함에만 의지할 찰스 로이드가 아니었다. “Of Course, Of Course”, “La Llorona”, “You Are So Beautiful” 등을 다시 연주해 새로움 속에서 과거를 상기하게 했다.

이번에 발매된 앨범 <Tone Poem>은 찰스 로이드와 마블스와의 세 번째 앨범이 된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마블스와 함께 했던 이전 두 장의 앨범과는 또 다른 면을 보인다. 미국적인 색채감을 여전히 추구하지만 그와 함께 피아노나 기타 연주자와의 쿼텟을 통해 표현했던 보다 재즈적인 음악을 결합하려 했다는 인상을 준다. 단절감을 더 줄이려 했다고 할까?

오넷 콜맨의 “Peace”, “Ramblin’”을 연주한 것부터 그렇다. 이 두 곡에서 빌 프리셀의 기타는 미국의 평원을 가로지르지 않는다. 찰스 로이드의 색소폰 또한 오넷 콜맨의 뒤뚱거리는 멜로디를 거의 있는 그대로 반영해 50년대 후반, 60년대 초반의 시간을 현재의 공간으로 불러들인다.

레퍼토리 또한 마블스와 정규 쿼텟의 음악을 융합하려 했다는 인상을 준다. 먼저 앨범 타이틀 곡은 미셀 페트루치아니와 함께 1985년 블루 노트 레이블의 재출발 기념 공연 <One Night with Blue Note>에서 연주했던 곡이다. 이 밖에 “Lady Gabor”, “Prayer”는 그 동안 다양한 쿼텟에 의해 즐겨 연주된 곡들이다. 한편 “Ay Amor”나 “Dismal Swamp”는 최근 몇 년간 쿼텟 공연에서 즐겨 연주한 곡들이다. 이들 곡들의 연주에서는 마블스의 미국적인 색채감이 전에 비해 덜 드러난다.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된 “In My Room”이 가장 포크, 컨트리적일 정도로 이번 앨범에 담긴 연주는 마블스가 아닌 기타가 가세한 새로운 쿼텟의 연주 같다.

마블스와 정규 쿼텟의 융합은 결국 찰스 로이드의 가장 음악적 매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스타일과 상관 없이 하나의 지점으로 모임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그 지점이 정확히 어디냐, 무엇이냐 말할 수는 없다. 사실 그것은 지점보다 지대(地帶)에 더 가깝다. 모네가 그린 수련 그림이 다양한 시간을 하나의 공간에 함축하면서 모호하고 신비로운 인상-그러나 매혹적인-으로 남았듯이 찰스 로이드의 음악 또한 과거를 확인하고 이를 다시 현재와 결합해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어쩌면 그에게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은 새로운 태양도 어제의 그 태양도 아닐 것이다. 어제를 담고 현재를 담아 내일로 향하는, 늘 미묘한 차이를 생성하는 태양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음악은 늘 익숙하며 새로울 것이다. 늘 현재로 돌아올 것이다. 니체가 말한 영겁회귀(永劫回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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