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ody Else But Me : A Portrait of Stan Getz – 데이브 젤리 (류희성 역, 안나푸르나 2019)

Nobody Else But Me : A Portrait of Stan Getz – 데이브 젤리 (류희성 역, 안나푸르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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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전기를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방대한 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예술가를 주제로 할 경우에는 조금 더 복잡한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사람 자체와 작품 자체 혹은 예술가로서의 면모 중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할 지 잘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작품이 그의 삶에서 나왔다는 식의 미학의 여러 경향 중 하나만을 대변하게 되거나 반대로 전기를 통해 독자가 알고 싶은 한 예술가의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색소폰 연주자 스탄 겟츠를 다룬 이 책은 두 경우 작품 자체에 중심을 둔 전기이다. 아무래도 저자 데이브 젤리가 영국 필자이기에, 스탄 겟츠를 만난 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색소폰 연주자의 삶을 이야기하기에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저자는 스탄 겟츠가 레스터 영의 영향을 받았고 천재적 능력으로 자신만의 톤을 만들어 유명 연주자의 삶을 살았다는 것과 그가 마약에 중독되어 괴로운 삶을 살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다. 널리 알려진 사실의 근거랄까? 아무튼 스탄 겟츠의 삶이 음악과 어떤 관련을 맺었는지에 대해서는 친절하지 않다. 약간의 에피소드만을 짧게 소개할 뿐 거의 모든 내용은 스탠 겟츠의 디스코그라피를 따라간다. 그래서 때로는 저자가 스탄 겟츠의 모든 앨범을 듣고 이를 시대 순으로 그 리뷰를 정리한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도한 디스코그라피를 따라가는 서술이 지면상의 이유인지 자료 문제인지 후기로 갈수록 분량이 줄어든다. 초기 스탄 겟츠의 세션 활동은 자세히 기록된 반면 70년대 이후부터는 앨범 단위가 아니라 거의 시대를 개괄하듯 서술되었다. 그것이 아쉽다.

하지만 누가 내게 스탄 겟츠에 대한 책을 써보라 한다면 나 또한 저자와 같은 방향으로 글을 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적어도 저자가 최선을 다했음을 이해한다. 다만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스탄 겟츠의 전기이기에 내용이 아쉽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스탄 겟츠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면 아주 좋은 안내서 역할을 하겠지만 인간 스탄 겟츠에 대해서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그리 만족을 주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이 책의 번역에 대해서는 조금 할 이야기가 있다. 내가 월간 <재즈 피플>에 글을 쓰고 있기에 나와 역자는 무관한 사이가 아니다. 같이 해외 인터뷰를 진행한 적도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이야기하기가 조금 거북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야기 한다면 조금 더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문장을 더 다듬었으면 하는 부분이 꽤 많이 있다. 번역하면서 역자 자신도 살짝 혼란스러움을 느꼈을 법한 문장이 특히 많다. 번역이 아닌 해석에 치우친 느낌이랄까?

예를 들어 어떤 곡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킬 때 “문제의 곡”이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를 “의문의 곡”으로 해석한 것은 의미는 통하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국어의 선택에 있어 다소 모호한 부분이 많다. 색소폰을 이야기할 때 나팔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도 그렇다. 나팔은 보통 트럼펫을 이야기할 때 사용한다. 색소폰은 그냥 “혼”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특히 음악 용어를 번역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느낀 것 같다. 예로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아티큘레이션”과 “프레이즈”를 구분해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려 노력하다가 후반에는 그냥 아티큘레이션을 그대로 옮겼다.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일관성이 덜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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