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코닉 주니어(Harry Connick Jr. 1967.09.11 ~ )

상승과 하강이 또렷한 이야기는 늘 감동을 준다. 특히 숱한 어려움을 딛고 결국 인생의 승리를 거두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아무리 많이 보고 들어도 짜릿하다. 주먹을 꼭 쥐고 새로운 삶의 의욕을 품게 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바라는 삶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그런 극적인 삶보다는 큰 굴곡 없이 흐르는 부드럽고 온화한 삶을 원한다. 끝에 편안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유로 며칠을 걸어야 하는 길을 나서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니까 마음으로는 극적인 성공담에 열광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성공의 길을 걸어온 사람을 향한다.

해리 코닉 주니어야 말로 그런 인생을 살아온 사람의 표본이 아닐까 싶다. 음악적으로 앨범마다 약간의 부침이 있기는 했지만 그는 일찍이 대중적 성공을 거둔 이후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음악적인 깊이, 실력 또한 변함이 없다.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그리 큰 고생을 하지도 않았다.

일찍이 재능을 빛내다

그는 1967년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변호사였다. 로스쿨 학생이었다. 이후 그의 아버지는 1973년 오를린즈 파리시의 지방검사로 선출되어 30년간 근무했으며 그의 어머니 또한 뉴 올리언즈 최초의 여성 판사 중 한 명으로 일하다가 후에 루이지애나 주의 대법관이 되었다.

한편 흥미롭게도 이 부부는 로스쿨 학생 시절 음반 가게를 운영해 여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학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그만큼 음악을 좋아했다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어린 해리 코닉 주니어는 법이 아닌 음악에 먼저 빠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음악적 재능은 보통의 어린 아이 이상이었다. 5살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할 정도였다. 게다가 그가 연주한 장소는 그의 아버지가 지방 검사 후보로 나서 선거운동을 하던 현장이었다. (참고로 미국은 지방 검사를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여기서 그는 미국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를 연주했다. 여기서 나아가 그는 9살이 되면서 음악인 조합의 회원이 되었고 1년 뒤 지역 연주자들과 함께 딕시랜드 재즈를 연주한 섹스텟 앨범 <Dixieland Plus>를 녹음할 정도로 전문 연주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음악 공부를 계속했다. 보통의 연주자들처럼 그 또한 음악 수업은 클래식으로 시작했다. 9살 때 뉴올리언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할 정도로 실력 또한 출중했다. 하지만 10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곧바로 재즈로 방향을 틀었다. 그의 첫 스승은 뉴올리언즈의 리듬 앤 블루스 피아노 연주자로 유명한 제임스 부커였다. 아버지의 친구이기도 했던 이 피아노 연주자는 지역 클럽 공연에 어린 해리 코닉 주니어를 데리고 다니며 함께 연주하는 등 경험 중심으로 가르쳤다. 1982년 뉴올리언즈 재즈 앤 헤리티지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서 함께 연주한 것은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한편 뉴올리언즈 창작예술 센터((NOCCA)에서 윈튼 마샬리스, 브랜포드 마샬리스 등 아들들을 유명 재즈 연주자로 키워낸 엘리스 마샬리스에게서도 가르침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뉴올리언즈에서 대학을 한 학기 다니다가 뉴욕맨하튼 음악학교에 입학했다. 이 때에도 그는 공부만 하지 않았다. 밤이면 지역의 술집과 클럽 등에서 연주했다.

성공적인 솔로 활동의 시작

아버지의 친구가 유명 음악인이고 스승 또한 유명 음악인이긴 했지만 해리 코닉 주니어의 어린 시절은 수 많은 음악 학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꼬마였을 때부터 드러냈던 비범한 음악적 재능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공부하며 밤마다 클럽과 술집 등을 돌며 연주한지 1년 후 그는 콜럼비아 레코드사의 눈에 띄었다. 신인 연주자라면 1차 목표로 꿈꾸었을 법한 대형 음반사와의 계약을 이룬 것이다. 이 말은 곧 음악적, 대중적으로 성공할 기회를 잡았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해리 코닉 주니어의 본격적인 행보는 동년배의 연주자들과는 조금 달랐다. 1980년대 재즈는 신전통주의라 해서 1970년대까지 프리재즈, 퓨전 재즈 등으로 인해 재즈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근원에서 너무 멀리 나아갔다는 판단에 재즈의 전통적 가치를 되살리자는 흐름이 대세였다. 그렇다고 복고적인 것은 아니었다. 요즈음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면 뉴트로한 흐름이었다. 신전통주의자들은 전통의 근원을 주로 1950년대의 하드 밥 스타일에 두었다. 그 이전까지 올라가도 빅 밴드 중심의 스윙 재즈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해리 코닉 주니어는 이와 다른 방향을 취했다. 거창한 욕심을 부리는 대신 뉴올리언즈에서 듣고 배우고 연주했던 바로 그 재즈를 선택했다. 그 결과 1987년에 발매된 첫 앨범 <Harry Connick Jr.>과 이듬해 발매된 두 번째 앨범 <20>은 모두 스윙 시대보다 오래된 뉴올리언즈 스타일의 재즈를 담고 있다. 이들 앨범에서 그는 피아노 연주자로서 밴드를 이끄는 모습에 주력했다. 그러면서 <20>에서 조심스레 보컬로서의 가능성을 엿보이기도 했다.

성공 가도를 달리다

이 두 장의 앨범으로 뉴올리언즈 출신의 잘생긴 연주자는 세간의 주목을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록 그룹 블러드 스윗 앤 티어즈의 드럼 연주자 바비 콜롬비가 있었다. 그는 마침 영화 음악을 담당한 인물을 찾고 있던 영화 감독 롭 라이너에게 해리 코닉 주니어를 추천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그의 앨범을 들은 감독은 과감하게 경력이 짧은 젊은 연주자에게 영화 음악을 일임했다. 그 영화가 바로 <When Harry Met Sally>였다.

맥 라이언과 빌리 크리스탈이 주연한 이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운드트랙 앨범도 마찬가지였다. 해리 코닉 주니어는 스윙감 넘치는 빅 밴드와 트리오 편성을 오가며 “It Had To Be You”, “Love Is Here To Stay” 등의 스탠더드 곡을 연주하고 노래했다. 영화의 낭만적인 분위기에 걸맞은 연주와 노래였다.

사운드트랙 앨범의 성공으로 이제 해리 코닉 주니어는 세계적인 인기 연주자겸 보컬이 되었다. 이것은 색소폰 연주자 브랜포드 마샬리스, 기타 연주자 러셀 말론 등과 함께 한 1990년도 앨범 <We’re In Love>로 이어졌다. 이후 그는 노래와 연주를 오가고 편성을 달리하면서 앨범을 만들어나갔다. 트리오 편성의 앨범 <Lofty’s Roach Souffle>, 빅 밴드 편성을 기반으로 노래에 집중했던 <Blue Light, Red Light>, <Come By Me>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She>, <Star Turtle>, <To See You> 등의 앨범에는 자작곡을 연주하고 노래해 레퍼토리의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뉴 올리언즈 재즈의 영역을 넘어 팝, 록 등 다른 장르의 음악도 적절히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뉴올리언즈 재즈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시도

그의 나이가 30을 넘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보컬에 집중되는 듯한 대중의 관심을 의식한 듯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면모를 강조했다. 그래서 첫 번째 쿼텟 앨범이자 13년만의 첫 연주 앨범인 <Other Hours: Connick on Piano, Volume 1>(2003)을 시작으로 <Occasion: Connick on Piano, Volume 2>(2005), <Chanson du Vieux Carré: Connick on Piano, Volume 3>(2007), <Music from The Happy Elf: Connick on Piano, Volume 4>(2011)까지 연주가 중심이 된 앨범을 발표했다. 이들 앨범에서 그는 뉴올리언즈 재즈를 바탕으로 한 화사하고 편안한 스타일의 연주로 자신의 음악적 근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특히 <Chanson du Vieux Carré: Connick on Piano, Volume 3>는 같은 해 발매한 보컬 앨범  <Oh My Nola>(2007)와 함께 2005년 뉴올리언즈를 초토화시킨 태풍 카트리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음악인들을 돕기 위한 마음을 담았다. (실제 그는 브랜포드 마살리스와 함께 태풍으로 살 집을 읽은 음악인을 위한 뮤지션 빌리지를 설립하는 등 실질적으로 뉴올리언즈의 음악 유산을 보존하고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

2010년대 해리 코닉 주니어의 음악은 보다 팝적인 면을 드러냈다. 90년대에도 이런 성향을 드러내긴 했지만 이번에는 보다 적극적이었다. 이것은 2009년 앨범 <Your Song>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서 그는 비틀즈, 버트 바카락, 엘튼 존, 돈 맥클린, 빌리 조엘 등의 곡을 스트링 오케스트라가 주도하는 평이한 사운드를 배경으로 노래했다. 완전한 스탠더드 팝 성향의 앨범이었다. 이후 뉴올리언즈의 마르디 그라 축제의 기차 행진에서 이름을 가져온 앨범 <Smokey Mary>(2013)도 축제의 흥겨운 분위기를 뉴올리언즈 재즈 외에 펑키 사운드로 표현했다. 나아가 역시 2013년에 발매된 <Every Man Should Know>에서는 뉴 올리언즈 재즈만큼이나 팝, 컨트리, R&B의 색채가 강했다. 팝적인 성향은 2015년에 선보인 <That Would Be Me>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 앨범에서 그는 뉴올리언즈를 잊지 않았지만 한층 강렬한 록과 팝의 질감을 음악에 담아냈다.

그가 발표한 앨범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안정적인 성공을 거듭했다. 여기에는 그의 음악과 노래에 담긴 프랑크 시나트라의 그림자가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알려진 대로 프랑크 시나트라는 남성 재즈 보컬 하면 떠오르는 크루너 보컬의 전형을 보여준 인물이다. 게다가 수려한 외모로 연기에서도 출중한 결과를 남겼다. 많은 사람들은 해리 코닉 주니어에게서 프랑크 시나트라를 느꼈다. 무엇보다 푸근한 남성적 매력과 아련한 추억에 빠지게 하는 중후함을 지닌 중저음의 목소리가 그랬다. 특히 <Only You>나 앞서 언급하지 않았던 <When My Heart Finds Christmas>(1993), <What a Night! A Christmas Album>(2008) 등의 크리스마스 앨범이 큰 인기를 얻었던 것은 그 안에 남성 재즈 보컬의 이상적인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해리 코닉 주니어는 외모도 뛰어났다. 그래서 음악 활동과 별개로 1990년도 영화 <Memphis Belle>을 시작으로 <Independence Day>(1996), <New In Town>(2009), < Dolphin Tale 2>(2014)에 이르는 수십 편의 영화와 <Will and Grace>같은 TV 연속극, <On a Clear Day You Can See Forever>(2011) 같은 뮤지컬에 출연해 호평을 받았다.

새로운 앨범 <True Love>

이처럼 해리 코닉 주니어의 음악적 삶은 매우 평탄했다. 감히 말하자면 그는 창작의 고통은 느꼈겠지만 음악적으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을 것 같다. 즐겁게 음악을 공부했고 오랜 기다림 없이 곧바로 세계적인 연주자겸 보컬로 도약했다. 이후는 발표하는 앨범들 모두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에는 어두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슬픈 발라드조차 로맨틱 영화처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낭만을 담고 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사랑하게 만들었고 또 그렇기에 그의 음악은 더욱 낭만적이 되었다.

또한 그의 지속적인 성공은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매번 새로운 음악적 시도와 변화를 거듭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고향 뉴올리언즈 재즈를 잊지 않은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지속성, 성실함은 이번에 레이블을 콜럼비아에서 버브로 옮겨 발매한 앨범 <True Love: A Celebration Of Cole Porter>에서도 유효하다. 앨범 타이틀이 의미하듯 이번 앨범에서 해리 코닉 주니어는 콜 포터의 스탠더드 곡들을 연주하고 노래했다. 그동안 여러 스탠더드 곡을 노래했지만 이렇게 한 작곡가의 곡을 주제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은 콜 포터의 곡을 단순히 재즈 레퍼토리의 차원이 아니라 작곡가의 곡을 보다 깊이 있게 바라보았음을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콜 포터는 여러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사를 썼고 화성과 선율을 당대의 법칙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썼다. 이를 통해 영화나 쇼의 상황에 맞는 곡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앨범에서 해리 코닉 주니어는 빅 밴드를 배경으로 노래와 피아노 연주를 펼쳤다. 그래서 “Anything Goes”에서는 화려한 빅 밴드 사운드가 절로 몸을 흔들게 하는가 하면 “I Love Paris”에서는 스윙 시대 이전을 상기시키는 복고적 질감으로 파리에 머물며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곡을 썼던 콜 포터를 그리게 한다.

한편 그가 선택한 곡 중 앨범 타이틀 곡을 비롯해 “Mind If I Make Love to You”, “You’re Sensational” 등 1956년도 영화 <High Society>에 수록된 곡들이 포함되어 있어 흥미롭다. 영화에서 이들 곡은 빙 크로스비, 프랑크 시나트라가 노래했다. 다른 편곡을 배경으로 노래했지만 해리 코닉 주니어의 노래는 이 선배 크루너 보컬들을 상기시킨다.

또한 “Begin The Beguine”은 유쾌한 피아노 솔로 후 빅 밴드와의 합주로 마감하는 구성으로 사람들이 흥겨이 노래하는 뮤지컬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해리 코닉 주니어는 앨범에서 콜 포터의 음악적 자아를 시적이면서도 감정 표현에는 솔직한 인물로 표현했다. 그리고 해리 코닉 주니어 자신이 콜 포터의 곡을 음악적으로 정서적으로 사랑함을 그 또한 솔직하게 드러냈다.

이것은 감상자들에게 편안하면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가 또 다른 환대를 얻을 것이다. 특히 <That Would Be Me>에서의 팝 사운드에 다소 당황했던 감상자들에게는 그렇지 바로 이거야! 라는 반응을 이끌어 낼 것이다. 어쩌면 이번 앨범은 2020년대에 펼쳐질 해리 코닉 주니어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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