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아름다움: 김율의 서양중세미학사강의 – 김율 (한길사 2017)

모든 독서는 그 책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 해도 이를 읽는 독자의 목표 의식에 의존한다. 즉, 독자가 읽고 싶어 해야 읽힌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중세의 아름다움”은 내게는 의외였다. 도무지 내가 왜 이 책을 구입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오래 전에 구입한 것도 아닌데 내 구매 리스트에 어떤 계기로 포함되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추천 서평을 읽고 즉흥적으로 넣지 않았나 싶은데 알 길이 없다. 나의 기억력이 이렇다.

평소 나는 세계사 중에 중세에 관심이 많긴 했다. 그렇다고 중세를 주제로 한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 몰라서 관심이 많았다. 중세의 그 어둡고 음습함 분위기, 기독교 신앙의 빛 뒤로 감추어진 암흑을 알고 싶었다. 그런 무의식이 이 책을 읽게 했나 보다. 게다가 그것이 미학을 주제로 하고 있으니.

사실 중세에는 미학이란 용어가 없었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이 만든 용어이다. (그는 “Ästhetica”란 말을 만들었고 일본이 이를 미학으로 옮겼다.) 그렇다고 미에 대한 관심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철학이나 신학의 일부로 언급되었다.

저자는 게르만족의 이동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서 시작해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지리상의 발견으로 끝나는 5세기부터 15세기 사이의 천년으로 정리되는 역사적 중세와 미학적 중세는 다르다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즉, 역사적 중세가 시작되기 전에 기독교가 등장하면서 미학적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중세의 미학은 기독교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즉, 신의 존재를 설명, 혹은 증명하는 과정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위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 토마스 아퀴나스, 요한네스 둔스 스코투스 등 중세 미학을 대표한다는 네 명의 학자들의 미학을 설명한다. 그래서 아우쿠스티누스는 신은 완전히 아름다운 하나이고 그 아름다운 일체를 향해 부분-그 부분은 그 자체로 추할 수 있지만 완벽한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하기에 아름다운-이 모인다고 했고, 위 디오니시우스는 신은 선한 존재이고 따라서 선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 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보임으로써 즐겁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며 성부, 성자, 성령의 3위 일체와 연관시켜 완벽성, 비례성, 선명성을 통해 아름다움이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했고, 스코투스는 진과 선 사이의 관계에서 미가 만들어진다고 하는 한편 그와 함께 감각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던 색채를 조화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으로 부각시켰다고 한다.

결국 각 철학자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완벽하고 선한 신의 존재이고 그 신의 존재를 원영으로 하는 세상은 선함, 진리, 조화 등을 통해 신적인 아름다움을 향하는 것이 중세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이었다고 거칠게 정리할 수 있겠다.

철학사, 미학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각 철학자들의 차이를 잘 이해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전에 중세가 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켰다는 것에 놀랐다. 말하자면 신적인 것일수록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뜻인데 이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적 자유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물론 근대 미학부터 중세의 나 밖의 존재를 향하는 아름다움이 아닌 차이를 수반한 주체적 아름다움이 부각되었기에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도 중세의 아름다움 개념으로 본다면 예술적 창작 욕구는 내 안의 꿈틀거리는 무엇이 아니라 신앙심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인데 그것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기에 암흑 저편으로 인정 받지 못한 마녀 같은 작품들이 있지 않았을까?

한편 신과 관련해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이 펼쳐졌기 때문인지 중세의 철학자들은 매우 긍정적인 사고를 했던 것 같다. 추함이란 개념보다 덜 아름다운 것, 그럼에도 전체에는 꼭 필요한 것으로 설명한 아우구스티누스 외에도 다른 철학자들도 신은 절대 필요 없는 것을 존재하게 두지 않았다는 믿음 속에 모든 것을 아름다움을 이루는 일부로 바라보았다. 이것이 내겐 흥미로웠다.

책의 전반적 서술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해하기 편하다. 다만 “My Little Library”라는 시리즈 자체의 양적인 제약 때문이었을까? 네 명의 철학자의 미학만 소개된 것은 아쉽다. 이들이 핵심적 역할을 했을 지라도 전체적인 조망을 가능하게 하는 설명이 조금 더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작가도 이를 의식했는지 맺음말 성격의 글을 중세미학의 다채로움이란 제목으로 쓰기는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책 소개에는 저자가 “중세의 걸출한 철학자이자 미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중세의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을 분석하며 중세미학의 고유한 특징을 찾는다”고 했는데 예술작품 분석은 없다. 분석이 아니라 소개만이라도 조금 풍부하게 있었다면 보다 이해가 쉬웠을 것이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미지가 그런 역할을 했을까? 그 이미지는 책의 분위기를 무겁지 않게 하는 역할을 했을 뿐 실질적인 주제 이해에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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