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존 버거 (김현우 역, 열화당 2008)

G- 존 버거 (김현우 역, 열화당 2008)

.

오랜 만의 독후감이다. 그간 책을 읽긴 했지만 다른 글 거리로 인해 그 느낌을 정리하지 못했다. 2018년에는 조금 더 부지런해 보련다.

<G>는 지난 해 세상을 떠난 비평가이자 소설가, 그리고 화가였던 존 버거의 소설이다. 작가의 에세이집 <글로 쓴 사진>을 읽은 후 작가에게 관심이 생겨 일찌감치 사두었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글쎄. 이 소설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추상적인 언어인 음악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는 것은 곧잘 하면서도 이런 책을 만나면 다소 정리에 어려움을 느낀다.

일단 소설은 G라는 바람둥이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의 출생 배경부터 시작해 바다에 던져져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30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서술이 그리 친절하지는 않다. 소설가인 화자가 직접 등장해 서술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아예 서사에서 벗어나 작가의 단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출생, 유년시절, 청춘 시절로 크게 나뉜 이야기의 전개는 시간의 흐름으로 정리되면서도 서사적 연관성은 그리 강하지 않다.

이런 전개를 작가도 느꼈는지 작품 속에서 이런 글을 썼다.

내가 인식하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는 내 머릿속에서 복잡한 동시적 패턴으로 기록된다. 다른 작가들이 차례차례 이어진 장(章)을 보는 곳에서 나는 평원을 보는 셈이다. 따라서 나로서는 사건들의 위치를 정하고 정의를 내리기 위해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시간 속에서 인과관계에 따라서가 아니라 공간 속에서 포괄적으로 좌표를 찾는 방법. 나는 기하학자의 정신으로 글을 쓴다.

그렇기에 소설가는 치밀한 전개로 완벽한 가상의 현실을 창조해야 한다고 믿는 독자는 이 책에 어리둥절해 할 지도 모른다. 나 또한 사사를 뚫고 나오는 작가의 개입, 단상의 나열을 읽으며 혹시 그가 소설의 창작과정을 정리 없이 그대로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명확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중심으로 G와 주변 인물들의 얼개가 촘촘해 진 것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소설에서 드러나는 주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쉽게 파악된다. 주인공 G는 부르주아 가문 출신으로 자신의 이모를 시작으로 여러 여자를 유혹하고 버린다. 그 욕망은 매우 본능적이다. 유희도 아니다. 한 여인-그녀가 신분이 낮건, 다른 사람의 아내이건 상관 없다-에 매혹되어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의 순수성이 깨지기 전-그 순간은 안타깝게도 여인이 그에게 완벽히 빠졌을 때이다-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난다. 하긴 바람둥이의 논리가 이런 것이 아니던가? 실제 그는 자신을 돈 후안으로 소개하곤 한다. (스페인 이름 돈 후안은 이탈리아어로 돈 조반니인데 G는 조반니를 의미한다.) 이런 그의 여성편력은 1차대전의 발발, 특히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 헝가리와의 삼국 동맹을 깨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 편에서 전쟁에 참가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전쟁에 따라 국가가 바뀌었던, 게르만족, 슬라브족, 이탈리아인이 공존했던 항구도시 트리에스테에서.

1차대전과 G의 죽음은 그대로 부르주아의 종말, 벨 에포크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G를 통해 대하소설을 쓰려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역사의 흐름 뒤의 이면 같은 것을 그리려 했다고 본다. 작가는 이를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 주인공의 죽음으로 소설을 끝냈지만 모든 것을 열린 상태로 마쳤다. 그의 죽음과 역사와의 관계, 사랑 이야기 등 모든 것의 연결은 독자에게 숙제로 남겼다.

이에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리 말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G』는 손으로 그린 지도들을 묶은 책처럼 보인다. 산이나 계곡, 강어귀를 표시한 지도가 아니라, 역사의 전환점들을 그린 지도, 그리고 인간의 몸, 여성성과 남성성을 표시한 지도 말이다……어쩌면 이 책은 욕망의 대상이 되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 무엇 속으로 떠나는 여행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모호한 설명이다. 지도에는 의미가 없다. 수 많은 길들은 그 자체로 있을 뿐이다. 여행자의 여정 선택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그래서 작가가 무엇인가 명확한 메시지를 남겨주기를 바란 사람이라면 도대체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나도 그렇기에 이리 횡설수설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나는 소설의 큰 서사 말고 여인이 사회적 시선에 맞춘 자아를 버리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자아에 눈을 뜨는 과정에 더 많은 흥미가 갔다. 소설 속에서 당사자 아니면 사랑의 감정은 서술이 어렵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그럼에도 심리적인 묘사 혹은 설명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

이런 소설은 재즈 같다. 작가의 말처럼 공간적인 진행은 즉흥 연주처럼 보인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몰랐던 부분을 발견할 것 같다. 후에 다시 읽어보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