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 이상 (E.Sang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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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주자가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을 두고 함께 하는 정규 밴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마일스 데이비스는 시기마다 자신의 밴드를 만드는데 공을 들였다. 그런데 정규 밴드가 완성되려면 수 많은 만남이 있어야 한다. 여러 연주자들이 교차하고 서로의 소리를 나누는 과정이 있어야 적절한 조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최근 여러 한국 연주자들이 왕성한 실험 정신과 용기로 서로 만나 색다른 음악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현상을 넘어 하나의 장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기대까지 하게 된다. 오정수 혹은 진오(기타), 비안(건반), 김창현(베이스), 김홍기(드럼)으로 이루어진 그룹 이상의 음악이 그러하다. 이번 앨범에서 네 연주자는 재즈 중에서 쉽게 듣기 어려운 진보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긴장 속에서 불현듯 사건이 발생하는 듯한 ‘The Beginning’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10곡의 연주들은 감상자가 기대하는 자연스러운 음들의 조합을 들려주지 않는다. 재즈사 초기에 블루 노트의 사용이 일반 감상자에게 주었을 당혹감이 이랬을까? 색다른 음들의 연결을 들려준다.

그런데 그 낯섦이 연주자들이 되는대로 연주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면 이 정상을 뒤트는 듯한 사운드가 실은 정교한 편곡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풀어진 듯한 개별 연주들이 록, 펑크, 스카 등의 다채로운 리듬을 중심으로 뭉쳤다가 다시 풀어지기를 반복하는 ‘Liberalism’, 용암처럼 네 연주자가 분출하듯 자기 소리를 내는 상황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는 ‘Quartet’같은 곡이 쉬운 예이다. 이들 곡은 네 연주자의 자유정신이 하나의 지향점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한편 네 연주자들의 어울림이 낯선 음들의 사용 차원을 넘어 악기의 질감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기타와 건반, 베이스와 드럼이 짝을 이루어 각각 악기의 질감으로 대화를 나누는 ‘Dawn’, ‘Black Out’같은 곡이 그렇다. 또한 같은 곡이지만 기타와 건반 중 무엇을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질감의 차이를 실험한 듯한 ‘Decolonization Part 1 & 2’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결국 이 네 명의 연주자의 만남은 우발적이고 낯선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각각의 소리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아름다움을 위해서였다. 이상적(理想的)인 이상(異常)을 그렸다고나 할까? 나는 이 이상(異常)한 사운드가 올 해 한국 재즈의 특별한 기억으로 남으리라 예상한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그룹이 Zero에 이은 1,2,3,4……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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