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man Next Door – Rita Marcotulli (Label Bleu 1998)

The Woman Next Door – Rita Marcotulli (Label Bleu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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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 연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우리의 의식 속에 쌓여 우리의 감성, 감정, 감정, 사고를 살찌우는 추억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상은 라벨 블레에서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하는 리타 마르코툴리의 전언이다. 그녀의 말대로 순간에 일어나는 즉흥 연주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인간의 과거 경험과 관련이 있다면 이 앨범에서 음악을 위해 그녀가 의지하는 과거는 프랑스의 영화 감독 프랑소와 트뤼포의 영화들이다. 아마도 그녀의 어린 시절을 채웠을 것같은 트뤼포의 영화 이미지가 이 앨범의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트뤼포를 주제로 했다고 해서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들을 편곡하는 것으로 앨범을 채우고 있지는 않다. 몇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의 곡으로 트뤼포의 영화가 아니라 그녀가 트뤼포의 영화에서 받았던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트뤼포는 하나의 소재일 뿐 주제가 아닐 수 있겠다. 영화를 화두로 잡았다 보니 각 곡들도 한편의 드라마처럼 다양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고 또 그것이 적절하게 추상과 구상을 잘 섞여져 있음을 발견한다. ‘상당한 침묵과 상당한 정확성’이라는 트뤼포의 영화 <미국식 밤>의 시작에 나오는 대사를 그대로 차용해 시작해서 <도피 중의 사랑>에서 남 주인공이 이상적인 사랑 고백을 하는 장면으로 끝을 나는 앨범의 구성이 일단 영화를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각 곡마다 아주 다양한 연주자들이 곡의 이미지에 맞게 등장해 연주를 펼치고 있다는 것도 리타 마르코툴리가 단지 곡 단위가 아닌 앨범차원에서 각 곡들을 생각했음을 입증한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연주이다보니 각 곡들이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트뤼포의 <화씨 451-종이가 타기 시작하는 온도를 나타낸다. 그리고 종이는 기억의 상징이다.->에 대한 그녀의 답변이라 할 수 있는 ‘Masse Di Memoria(기억 뭉치)’같은 곡에서 사용된 다양한 언어의 나레이션이나 ‘Antoine Doinel’에서 언어의 리듬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모르스 부호등 시각적인 표현방법을 적소에 도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드럼 연주자 알도 로마노에게 ‘Les Enfants S’ennuient Le Dimanche(애들은 일요일이 지겨워)’같은 곡에서 노래를 시킨 것이 그런 예이다. 이것은 자신의 건반을 중심으로 음악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작곡자의 입장에서 생각한 결과로 본다. 그래서 아주 다양한 곡들이 앨범에 등장한다.

각 곡마다 사용돤 악기나 편곡이 무척 다양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리타 마르코툴리의 편곡은 재즈적인 것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것은 도처에 편재하는 그녀의 건반 연주에서 잘 느껴지는데 그녀가 펼치는 분산화음 연주나 단순한 멜로디는 재즈적인 면보다는 뉴 에이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럼에도 이 앨범이 재즈적인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앨범에 내재된 창조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초빙된 연주자들의 연주에 의해서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상당 부분은 참여한 연주자에게 맞기고 있다. 그래서 리타 마르코툴리의 건반은 편재하는 만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정하는 배경역할을 할 뿐이다. 그 위로 초빙된 엔리코 라바, 스테파노 디 바티스타 등이 즉흥 솔로를 펼쳐 나간다.

트뤼포를 다루고 있기에 어쩌면 트뤼포의 영화에 대한 사전 이해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냥 트뤼포를 전제로 하지 않고 감상을 하더라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비록 그녀가 표현하려 했던 트뤼포의 영화에 관한 추억을 구체적으로 감지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생기겠지만 그녀의 음악이 지닌 서정성과 시각성은 곧바로 느낄 수 있다. 오히려 친절하게도 각 곡마다 스스로 음악과 영화를 말하는 그녀의 설명이 자유로운 상상을 막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재즈의 개념이 영역 확장만큼이나 다양하게 변하고 있는 지금 앨범이라는 것이 단지 한 순간의 세션을 담는 차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앨범 차원에서 모든 것이 고려되고 있음을 보곤 한다. 이제 앨범의 주인은 연주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에서 작곡, 편곡을 하고 앨범 전체에 일관된 색을 주는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것은 클래식에서의 작곡가나 지휘자의 개념에 해당되는 것으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연주에서 한 차원 발전한 개념이라고 본다. 그래서 단지 연주하는 것을 기록하는 보조수단으로서의 앨범이 아니라 각 곡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그 앨범 자체가 하나의 종합적인 창조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의 예가 이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앨범은 전체를 한꺼번에 감상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나아가 다른 앨범들, 심지어 리타 마르코툴리의 이전 앨범들과도 비교하지 않고 하나의 독자적인 것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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