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y In Satin – Billie Holiday (Columbia 1958)

Lady In Satin – Billie Holiday (Columbia 1958)

REVIEW OV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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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사를 빛낸 명반 가운데는 객관적인 음악적 평가를 내릴 수 없을 정도로 그 자체의 아우라로 감상자를 사로잡는 앨범들이 있다. 빌리 할리데이의 1958년도 녹음 <Lady In Satin>도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나는 이 앨범에 관한 객관적 음악적 평가를 내리는 리뷰를 읽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이 앨범을 셀 수 없이 많이 들었음에도 글을 쓰는 지금 객관적으로 이런저런 평가를 내리는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빌리 할리데이의 삶이 너무나도 비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음악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존재하겠지만 나는 한 사람의 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래서 그의 삶의 이력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 연주자 혹은 보컬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감상자가 음악을 듣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주자 혹은 보컬 역시 굳이 자신의 삶을 음악에 투영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말년에 조카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과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괴로웠지만 언제나 삶에 대한 낙관적 정서가 가득한 노래를 불렀던 엘라 핏제랄드, 늘 마약을 끼고 살며 마약을 위해 노래하고 연주했지만 늘 달콤하고 감미로운 삶을 느끼게 해주었던 쳇 베이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빌리 할리데이는 달랐다. 그녀의 의지에 상관없이 그녀의 비극적 삶은 늘 음악에 투영되어 드러났다.

그렇다면 그녀의 삶이 얼마나 비극적이었는지 살짝 언급해볼까? 1915년 4월 7일생인 그녀는 10살의 나이에 백인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오히려 인종차별로 가득한 당시의 분위기로 인해 감화원에 수감되어야 했다. 그리고 감화원에서 나온 뒤 다시 다른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어 가난 속에서 14살의 나이로 매춘부가 되었다. 그 뒤 매춘부 생활을 청산하고 가수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지만 세상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그녀와 결혼한 남편들은 바람을 피우거나 그녀의 수입을 착취했다. 게다가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평생 그녀를 힘들게 했다. 심지어 공연을 위해 클럽에 입장할 때도 그녀는 늘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출입을 해야 했다. 이런 고된 삶을 잊기 위해서였을까?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마약에 중독되어 이로 인해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특히 마약은 그녀가 1959년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 그녀의 삶은 불행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극적 삶이 만들어낸 목소리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Lady In Satin>을 들으며 건조하디 건조해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빌리 할리데이의 목소리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쉽게 빌리 할리데이의 목소리가 원래 그런 것이려니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다. 빌리 할리데이는 처음부터 그렇게 갈라지고 건조한 목소리로 노래하지 않았다.

실제 빌리 할리데이의 초기 녹음을 들어보면 예상과 다른 풋풋한 목소리에 놀라게 된다. 게다가 목소리를 악기처럼 이용하며 리듬을 타는 것을 듣게 되면 할 말을 잃게 된다. 비록 그만큼 젊었기 때문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밝고 선명하다. 특히 <Lady In Satin>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미래에 대한 희망? 지금도 충분히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아직 내 앞에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식의 기대가 담겨 있다. 그러나 <Lady In Satin>에서는 그런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삶이 뭐 그렇지, 별 것 있겠어? 하는 식의 체념과 달관의 정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실제 1958년의 빌리 할리데이는 삶의 마지막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면 빌리 할리데이의 목소리는 신이 내린 목소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와 함께 3대 디바로 평가 받는 사라 본이나 엘라 핏제랄드 또한 시간이 흘러 조금씩 목소리의 변화가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질감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이런 경우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빌리 할리데이는 그렇지 않았다. 삶이 힘들어질 때마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칠게 변했다. 특히 삶의 고통을 잊기 위해 시작했을 마약은 그녀의 밝았던 목소리를 어둡게 했다. 게다가 1958년 2월 <Lady In Satin>을 녹음할 당시 그녀의 목소리는 최악의 상태였다. 심지어 앨범의 편곡과 반주를 맡은 레이 엘리스조차 그녀의 목소리 상태가 너무나 좋지 않아서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2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에 걸쳐 그녀는 매일 밤 진을 마시며 자신의 그 힘든 목소리로 녹음을 강행했고 레이 엘리스를 비롯한 참여한 오케스트라 멤버들마저 감탄할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렇게 마약에 찌들어 목소리가 갈라진다면 가수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빌리 할리데이는 오히려 목소리가 그렇게 나빠졌음에도 <Lady In Satin>이라는 명반을 녹음할 수 있었다. 어전 일일까? 그것은 바로 힘든 삶만큼 거칠어진 목소리에 자신의 정서를 다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그런 목소리로 자신의 삶을 숨기고 삶의 낭만,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려 했다면 지금의 호평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제 육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져 삶에 대해 그다지 큰 기대가 남아 있지 않은 그녀는 삶이 그녀에게 부여한 느낌을 그대로 노래에 담아 노래했다. 그래서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결국 빌리 할리데이의 목소리는 신이 내린 목소리가 아니라 삶이 내린 목소리인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무대 밖에서 그녀를 차별했던 사람들이 이 앨범에 담긴 그녀의 노래를 좋아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왠지 씁쓸해진다. 말하자면 그녀의 삶을 차별했던 그 사람들이야 말로 이 앨범의 진정한 제작자가 아닌가? 누군가를 괴롭혀서 만들어진 결과물을 즐긴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물론 이 앨범이 녹음될 무렵 그녀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았기는 하지만.

사랑에 대한 갈망을 담아낸 선곡

빌리 할리데이는 <Lady In Satin>에서 노래할 곡을 직접 선곡했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선택한 노래들은 모두 그녀의 고단한 삶을 반영한 듯한 내용을 지녔다. 특히 행복하지 못한 사랑의 측면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I’m A Fool To Want You”, “You’ve Changed”, “You Don’t Know What Love Is”, “The End Of A Love Affair”, “Glad To Be Unhappy”, “I Get Along Without You Very Well”같은 곡들이 그 대표적이다. Dl 노래들을 들으면 굳이 빌리 할리데이의 노곤한 삶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노래에 담긴 슬프디 슬픈 정서만으로도 사랑을 갈구하는, 그러나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그래도 이를 받아들이고 사랑을 기다리는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을 연상하게 된다. 실제 레이 엘리스는 “I’m A Fool To Want You”노래하고 나서 다시 녹음을 들을 때 빌리 할리데이의 눈가에서 눈물을 보았다고 회상했다. 어쩌면 빌리 할리데이는 누군가 진정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자신의 삶이 이렇게 흘러오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던 것인 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쉽고도 슬픈 사랑의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따라서 이 앨범은 실연 혹은 사랑의 슬픈 이별을 당한 사람들을 위한 노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리 슬픈 그녀의 노래들이 사랑의 노래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이 차 한잔을 같이 하며 “노래 좋지? 너와 함께 들으니 더 낭만적이야.”라는 식의 이야기를 나눈다니! 참으로 기막힌 아이러니다.

레이 엘리스와 그 오케스트라

1958년 이 앨범이 LP로 처음 발매되었을 때 라이너 노트를 쓴 어빙 타운센트는 자신의 글에서 “레이디-빌리 할리데이는 레이디 데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다-의 음반을 처음 듣는 감상자들 가운데 일부는 이렇게 묻곤 한다. ‘이것이 재즈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예스’가 되어야만 한다.”라고 적었다. 그러니까 이 앨범의 사운드를 두고 재즈냐 아니냐라는 논란이 있었다는 것인데 아마도 이런 논란의 원인은 빌리 할리데이가 고용한 레이 엘리스와 그 오케스트라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레이 엘리스는 순수하게 재즈의 영역에서 활동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실제 빌리 할리데이와의 만남 이후에도 그는 재즈에 머무르지 않고 영화음악, 광고음악, TV 시리즈 음악을 작곡하고 팝 가수들의 앨범을 제작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이 앨범을 녹음할 무렵 그는 이제 막 앨범 활동을 시작한 신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첫 앨범이었던 <Ellis In Wonderland>에서 그가 보여준 편곡과 오케스트라의 지휘 능력이 빌리 할리데이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과 함께 녹음할 인물로 직접 그를 지목했다고 한다. 그 결과 쓰디 쓴 빌리 할리데이의 목소리에 레이 엘리스가 지휘하는 부드러운 스트링 오케스트라가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사운드가 만들어졌다. 앨범 타이틀이 “공단 옷을 입은 숙녀”인 것도 이처럼 레이디 데이가 공단(Satin)처럼 부드러운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배경으로 노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앨범에 등장하는 스트링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는 과거 찰리 파커나 빌 에반스 등이 클래식적인 사운드를 배경으로 재즈 연주를 시도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실제 빌리 할리데이가 이런 의도로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기용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팝적인 느낌을 더 강화하기 위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빌리 할리데이가 레이 엘리스를 선택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런 대중적 사운드, 팝적인 사운드라지만 J.J 존슨(트롬본), 멜 데이비스(트럼펫), 어비 그린(트롬본), 조지 오크너(바이올린) 등에 할애된 짧지만 인상적인 솔로는 사운드에 재즈적 느낌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굳이 어빙 타운젠트가 빌리 할리데이가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재즈라는 식의 변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된다.

한편 결과론적이지만 보다 재즈적인 느낌이 강한 피아노 트리오나 퀄텟 편성을 배경으로 빌리 할리데이가 이 앨범을 녹음했다고 하면 이 앨범은 그렇게 오래 기억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분명 그 앨범은 너무나도 쓰디 쓴맛을 낼 것이고 그래서 감상자를 불편하게 만들었을 확률이 높다. 즉, 레이 엘리스의 부드러운 오케스트라가 빌리 할리데이의 상처 받은 목소리를 부드럽게 감싸며 그 정서를 낭만적으로 중화시켰기에 명반이 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슬픔에 관한 너무나 사실적인 다큐멘터리는 감상자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는 있지만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 못하지 않던가? (어쩌면 연인들이 이 앨범을 들으며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어떤 앨범이 좋을까?

앨범 <Lady In Satin>은 CD만 해도 여러 버전으로 발매되었다. 나만 해도 1989년판과 1997년판을 함께 갖고 있다. 그 가운데 국내에 라이선스 앨범으로도 제작된 1997년판을 추천한다. 이 앨범은 오리지널 선곡 12곡 외에 “I’m A Fool To Want You”의 얼터너티브 테이크 두 트랙, 그리고 “The End Of A Love Affair”의 녹음 과정 등을 추가했다. 특히 “The End Of A Love Affair”의 녹음 과정을 다룬 트랙은 내지에 수록된 필 샤프의 해설과 함께 감상하면 상당히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4 COMMENTS

  1. 중학교때 친구한테 Billie Holiday 테잎을.. 생일선물로 받았습니다.
    전 그때 윤상에 심취해있었는데,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녀의 삶과는 다르게, 목소리는 정말… 영원히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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