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대: 재즈를 이야기하다

오종대: 재즈를 이야기하다

오종대는 록 밴드 활동을 하다가 재즈의 매력에 빠져 열심히 공부한 이후 현재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한국 재즈의 주요 인물이 되었다. 현재 그는 골든 스윙 밴드, 네오 트래디셔널 재즈 트리오, 트리오로그의 멤버로 활동 중에 있다. 마침 홍대 근처에 위치한 작은 클럽 씨클라우드에서 골든 스윙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이 때를 이용해 공연 후 그에게 재즈에 대한 생각, 학교에 대한 생각 그리고 한국 재즈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보통 드럼 연주자들은 뒤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밴드를 이끄는 리더들이 많다. 오종대 역시 그랬다. 오랜 활동이 바탕이 된 그의 생각에는 재즈에 대한 애정, 한국 재즈에 대한 사명감으로 가득했다.

낯선 청춘: 제가 연주자들을 잘 만나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참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오종대: 예. 정말 오랜만이네요.

낯선 청춘: 공연이 꾸준히 계속 있어요?

오종대: 공연을 계속 만들어가려고 하고 있어요. 요즈음에는 공연이 있어서 불려 가는 것보다 연주자가 직접 공연을 만들어 가는 상황이에요. 오늘 골든 스윙밴드 공연도 사실 저희가 기획해서 하게 된 공연이죠.

낯선 청춘: 활동 하신지 몇 년이 되셨죠?

오종대: 공부 마치고 온 이후로는 햇수로 13년된 것 같아요. 2002년부터 활동했으니까.

낯선 청춘: 아. 이제 10년 넘게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덧 슬플 수도 있지만 중견 연주자가 되었단 말이죠.

오종대: 네.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젠 흰 머리도 생기고. (웃음)

낯선 청춘: 어제 제가 오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이전에 하셨던 인터뷰를 봤어요. 보니까 처음에는 드럼을 연주하려던 것이 아니었다더군요. 그룹 활동하다가 드럼 자리가 비어서 연주하게 되었다고요.

오종대: 예. 어렸을 때는 기타도 치고 베이스도 치고 했었죠. (웃음)

낯선 청춘: 그럼 재즈는 또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오종대: 처음에 했던 밴드는 록 밴드였구요. 그 때-1990년대 초반-는 레이저 디스크로 영상을 틀어주는 카페가 있었어요. 거기서 처음 봤던 재즈 스타일의 음악이 카시오페아의 연주를 봤어요. 그걸 보면서 야 이 음악 연주 재미있다 하고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그 때 한창 인기 있었던 GRP 레이블의 퓨전 재즈 음악들을 접하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메인스트림 재즈를 듣게 되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어렸을 때 가요를 되게 좋아했어요. 그 중에서도 ‘어떤 날’……

낯선 청춘: 동아기획!

오종대: 예. 동아기획에서 앨범이 나오면 이름도 안보고 앨범을 샀어요.

낯선 청춘: 저도 그랬어요.

오종대: 요즈음 그 때 음악, 특히 ‘어떤 날’의 음악을 들어보면 대단히 재즈적인 화성 등이 돋보이는 것이 그 때 이미 재즈에 익숙해지지 않았나 싶더군요.

낯선 청춘: 그렇게 취향을 따라서 드럼 연주도 재즈 쪽으로 옮겨가셨고……그런데 다른 악기를 연주하다가 스무 살 넘어서 새로운 악기를 시작하면 아무래도 배우기가 힘들잖아요. 그만두고 싶기도 했었을 것 같은데……그럴 때 드럼이나 재즈의 어떤 매력이 어려움을 버티게 했을까요?

오종대: 어……그게 중간에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제일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음악에 충실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악기를 연주하게 되면서 제가 곡을 쓰고 발표하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연습 자체를 되게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악기를 연주하지 않은 분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악기 연습이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견뎌내야 하는 과정이라기보다 그냥 즐겁고 마음도 편안해지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낯선 청춘: 그러면 곡을 쓰지는 않으세요?

오종대: 곡도 썼었죠. 트리오로그나 네오 트래디셔널 재즈 트리오 앨범을 녹음할 때는 제 자작곡도 넣고 그랬죠. 그런데 사실 요즈음 들어서는 곡을 잘 안 써요. 그 이유는…… 제가 중견 연주자가 되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내 자신을 알자. 그러니까 내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할 때 제일 행복하고, 내가 어떤 취향을 지녔는지를 생각하자는 거죠. 그런 맥락에서 작곡도 제가 쓰는 것보다 제 주위의 다른 사람이 쓴 좋은 곡을 연주하는 것이 더 즐겁고 재미있어요. 음악도 예전에는 제가 매우 다양한 스타일을 다 했었어요. 보통의 재즈부터 록, 팝, 퓨전, 프리 재즈까지 가리지 않고 다했어요.

낯선 청춘: 그게 언제쯤이죠?

오종대: 그게 유학 마치고 와서 2002년부터 2007. 2008년까지 그랬어요. 그러다가 (여러 계기가 있겠지만) 기타 연주자 웨인 크란츠와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그 때 웨인 크란츠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자기는 대단히 극단적인 사람이라서 다른 사람이 연주한 것을 절대 못한대요. 예를 들어 학생시절 존 스코필드에게 레슨을 받으면 자기 기타에서도 존 스코필드 같은 소리가 나고 짐 홀에게 레슨을 받으면 짐 홀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대요. 그래서 한 3년간 기타를 놓고 곡만 썼대요. 하지만 제게 한 이야기는 자기는 이런 성향을 지니긴 했지만 모든 연주자들이 그럴 필요는 없다. 독특하고 유일한 것을 추구하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완성되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 중에 나는 어떤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냐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 말이 제게 큰 격려가 되었어요. 왜냐하면 웨인 크란츠는 대단히 창조적인 연주자인데 재즈 연주자는 그런 부분에 상당한 강박, 갈망 같은 것이 있거든요. 남들이 연주하는 것처럼 연주하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이요. 그리고 저는 드럼 연주를 그루브가 좋아서 시작했고 스윙하는 느낌이 좋아서 재즈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그루브가 하나도 없는 음악을 하면서 즐기지도 못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웨인 크란츠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어떤 연주자인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

낯선 청춘: 그런데 사람들은 진보적이라고 하는 재즈, 긴장을 조금은 더 많이 즐기는 재즈를 창조적이라 하고 스윙하고 스윗(Sweet)한 재즈는 그런 창조적인 맛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잖아요. 어쩌면 선입견일 수도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오종대: 오늘도 연주한 ‘I Love For Sentimental Reason’, ‘Route 66’같은 곡들은 사실 요즈음 연주자들은 잘 연주 안하고 그냥 행사용으로 한다(웃음)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모순되게도 이들 곡들은 사람들이 매우 좋아하지만 연주자들에게는 그 곡들을 연주하려면 대단히 용기가 필요해요. 자신이 없으면 선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아주 잘 알려진 스탠더드 곡을)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려면 창작곡을 연주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해요. 아까 보셨겠지만 골든 스윙 밴드는 모든 편곡을 다 외울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편곡할 때도 사소한 음 하나 미세한 움직임까지 다 신경을 써서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해요. 그러니까 아까 말씀하신 부분으로 돌아가면 제 결론은 균형이 중요하다. 창의적인 것보다 안정된 하모니, 조화로운 앙상블이 결코 재즈라는 음악에서 가볍게 볼 부분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창의적인 것을 추구하다가 그 반대의 측면을 소홀하게 한 것은 아닌가 싶은 거에요.

낯선 청춘: 드럼 연주자들을 보면 리듬 악기를 연주해서 그런지 멜로디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자신의 앨범에서는 멜로디를 강조하기도 하는데요. 종대씨도 아까 솔로 연주하실 때보니까 리드미컬한 동시에 멜로디컬하게 연주를 하던데 혹시 드럼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오종대: 되게 예리한 질문인데요. 맞아요. 있어요. 그런 거죠. 관악기 연주자들이 리드미컬한 아이디어로 솔로를 즐기거나 반대로 음 없는 드럼 연주자들이 멜로디컬한 연주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죠.

낯선 청춘: 또 드럼 연주자들이 밴드를 이끌면서 신인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트 블래키처럼 말이죠. 종대씨도 아직은 젊지만 활동 기간도 10년을 훌쩍 넘겼고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니까 나보다 어리고 경력이 일천한 어린 연주자들과 같이하고 그들을 키우고 영감을 얻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종대: 예. 오늘 무대에 같이 섰던 골든 스윙 밴드 연주자들도 한 명을 빼고는 다 제 학생들이었어요. 제가 가르치고 있는 학교에서 수업 후 같이 합주하던 친구들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후배를 좀 키워야겠다는 마음도 있어요. 그리고 젊은 친구들이 갖고 있는 장점도 있어요. 현재 한국의 분위기 안에서. 함부로 일반화하면 안되지만 저희 세대가 어렸을 때는 재즈 연주자가 한 가지 스타일에 집중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악기마다 다르겠지만 드럼 같은 경우는 재즈 드럼 연주자가 많지 않아서 제가 모든 스타일의 연주를 하지 못하면 전문 연주자로 활동하기 어려웠어요. 스윙부터 라틴, 퓨전, 프리 재즈, 국악과의 크로스오버까지 다 할 줄 알아야 했죠. 그러다 보니까 음악을 듣는 것도 광범위하게 많이 들어야 했어요. 그런 상황을 지나 중견 연주자가 되고 나니까 내가 좋아하는 한 가지에 집중했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런데 저 친구들은 저보다 10년, 20년 어린 친구들인데도 저보다 오히려 더 스윙 음악을 줄줄이 알고 있고 지금도 열심히 음반을 모으고 듣고 있어요. 그게 연주자들이 많아지고 공연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고 힘들어지는 한국 재즈의 환경 속에서 보이는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라 생각해요. 이제는 연주자들이 모든 음악을 다 할 기회도 없고 또 그래서는 아무 승산도 없고, 따라서 진지한 연주자들은 자기 음악에만 집중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요즈음의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하는 것은 제게 있어서 제 아쉬운 점을 채우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낯선 청춘: 그럼 지금까지 리더건 사이드맨이건 몇 장의 앨범을 녹음했나요?

오종대: 글쎄요.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데요.

낯선 청춘: 그러면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앨범이 있을까요?

오종대: 방금 말씀하셨지만 트리오로그의 첫 번째 앨범이 가장 기억에 남죠.

낯선 청춘: 개인으로서도 첫 앨범이었나요?

오종대: 손성재씨와 함께 한 <누보 송>이 첫 번째였죠.

김광현: 그럼 오종대씨 이름으로 녹음한 앨범은 없는 거죠? 한 장 만들고 싶지 않나요?

오종대: 저한테 맞는 역할은 솔로 연주자보다 밴드 멤버로 좋은 음악을 뒤에서 받쳐주는 것인 것 같아요.

낯선 청춘: 요즈음 우리 재즈를 보면 환경은 갈수록 안 좋아지는데 앨범은 매우 많이 나온단 말이죠. 13년간 활동하면서 우리 재즈의 변화? 음악이건 시장이건 아니면 전체 환경이건 느낀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오종대: 이것은 자기 반성적 부분이 있는데요. 제가 재즈 클럽에서 연주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95년이었어요. 그 때는 1세대 연주자분들 이후 처음 대중적으로 재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때였어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관심이 생겼어요. 재즈를 틀지 않는 카페에도 재즈란 말이 붙고 곳곳에 지역마다 재즈 클럽이 생기고 기업들이 행사에 재즈 연주자들을 불렀고……정말 연주자에 비해 재즈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죠. 그런데 그것이 2000년대 중반까지는 어느 정도 지속이 되었다고 생각이 되요. 그 과정 속에서 그 이전 몇 십 년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연주자도 많아지고 그들의 연주력이나 곡 등도 질적으로 엄청나게 발전했죠.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 그 때 얻었던 관심이나 호의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몰랐던 것 같아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 때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지금보다 준비를 더 많이 안 했어요. 너무 많았으니까. 사실 준비할 시간도 없었어요. 무대에서 사람들이 이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어요.

낯선 청춘: 찰리 파커같았군요. (웃음)

오종대: 예. 찰리 파커였어요. 실력은 찰리 파커가 아닌데 마음은 찰리 파커였죠. 그런데 요즈음은 재즈 클럽도 많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재즈를 들으러 많이 안 오거든요. 그것을 저는 느껴요. 사람들 표정이 그래요. 재즈 그러면 반응이 골치 아프고 뭐 하는 건지 모르겠고 자기들끼리 신나는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반성을 하는 거죠. 지난 십 년간 우리가 했던 음악들은 재즈의 가장 최전선에 놓이는 것들이었어요. 연주자 중심의, 연주자들만 즐기는, 알아듣건 말건 자기만을 표현하는 그런 음악이었죠. 사실 그게 연주자의 입장에서는 말할 수 없이 재미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몰랐던 것은 오랜 시간 재즈가 사랑 받은 서양의 경우 선구적인 연주자가 있기 위해서는 그 뒤로 묵묵히 펍(Pub), 결혼식장, 길거리 등에서 사람들을 위해 재즈를 연주한 연주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재즈를 좋아하도록 연주했던 연주자들이 있었기에 도전적인 재즈를 수용하고 지원할 수 있는 층이 만들어졌다는 거죠. 이런 것을 그 때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냥 우리도 뉴욕에서처럼 도전적인 연주를 하면 사람들이 지지하리라 생각했던 거죠. 사실은 그렇지 않았는데. 아까 말씀 하셨던 요즈음 제가 하는 밴드들, 네오 트래디셔널 재즈 트리오나 골든 스윙 밴드는 제 음악적 취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중견 연주자로서 어떤 사명감도 작용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대중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매우 용기가 필요하거든요. 이것도 음악적으로 잘 하면 대단히 멋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어요.

낯선 청춘: 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연주활동을 하려면 매우 힘들 것 같아요. 특정 연주자를 거론할 수 없지만 우리 연주자들 중에는 활동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우니까 학교로 들어가고 그러면서 음악적으로는 도태되는 경우도 있고 또 그런 것이 싫어서 학교 밖으로 나오면 사는 게 힘들고……이렇게 모순적인 관계가 교육과 연주 활동 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종대씨는 그 둘을 잘 하고 있단 말이죠?

오종대: 잘 하는 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노력은 하고 있어요. 아까 저 자신에게 돌아보는 슬럼프가 있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 시기가 바로 전임으로 학교에 들어갔을 때였어요. 어떻게 보면 더 이상 목숨 걸고 연습하고 연주하지 않아도 생활이 해결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것은 상당히 큰 축복이지만 연주자에게는 위기에요. 저도 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이전에 비해서 활동이 확연히 떨어졌어요. 그런데 학생들을 지도할 때 수업에서의 영향력이 연주활동과 같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어요. 강의실에서만 하는 이야기와 열심히 활동하면서 하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다르게 느껴지죠. 그래서 연주 활동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어요. 어쨌건 연주 자체가 좋으니까요.

낯선 청춘: 학교에서 강의하실 때는 어떤 부분을 강조하시나요?

오종대: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는 제가 외국에서 배운 정보들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제 학생 시절을 생각해 보니까 테크닉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생각, 마음가짐을 이야기해준 선생님이 더 기억이 나더라고요. 테크닉적인 측면이나 정보는 요즈음은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자료가 많잖아요. 굳이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그런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실제 전문 연주자의 경험이 바탕이 된 생각, 예술적인 가치관을 접하는 것이 정보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하죠.

낯선 청춘: 재즈를 학교에서 꼭 공부해야 하나 싶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전설적인 연주자들 상당수가 독학으로 성공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이 때 학교교육의 장점은 방금 말씀하신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오종대: 예. 말하자면 내가 매일 공연을 보러 다니고 공연 끝나면 연주자에게 질문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학교가 그런 것들을 편리하게 하는 거죠. 제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 온 관객 중에 한 명이 음악이나 연주에 대해 질문을 한다면 답을 해주겠죠. 하지만 학교에서 제자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죠. 그리고 이런 장점 외에 학교는 학생들끼리 서로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있죠.

낯선 청춘: 한국 재즈의 환경이 나빠진다고는 하지만 재즈를 가르치는 학교, 교육 기관은 참 많아졌단 말이에요. 재즈과가 아니라 실용음악과로 불리긴 하지만요. 그런데 학생들이 졸업하면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겠어요. 학교로 돌아가는 것 외에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국내에 많은가요?

오종대: 이게 사실 복합적으로 연결된 것인데 궁극적으로는 우리 나라에서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첫 번째 실마리라고 생각해요. 재즈를 공부하는 학생이 많은 것은 수요공급이 맞지 않은 일이고. 실제로 학생들 중에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보통 한국 사람 중에 재즈 좋아하는 사람이 1%인데 학생은 50%다 이것은 말이 안되죠. 5%정도만 되어도 많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면 학교에서 재즈 교육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발전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의 재즈 연주자들이 사람들의 재즈에 대한 호감을 20년 전처럼 다시 높여 재즈 마니아가 많아지게 하는 것 말고는 없다고 생각해요.

낯선 청춘: 제가 듣기로는 아드님도 음악에 관심이 있다고 들었어요.

오종대: 이제 중학교 들어가는데 음악에 관심이 있어요. 드럼을 연주하는데 록을 좋아해요.

낯선 청춘: 다행인가? (웃음)

오종대: 다행일 수도 있고 서운할 수도 있고. 제가 여행할 때 제가 재즈를 틀어놓으면 자기는 록을 틀어놓곤 해요. 사실 저도 어릴 적에는 록을 좋아했고요. 지금도 재즈 말고 다른 음악들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록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문제라 생각하지 않아요.

낯선 청춘: 언젠가는 아드님과 같이 연주할 때가 오겠네요.

오종대: 오겠죠?

낯선 청춘: 지금도 연습은 많이 하시나요?

오종대: 예. 낮 시간에는 쉽지 않고요. 밤에 새벽까지 연습을 하죠.

낯선 청춘: 자. 이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만약 종대씨에게 후원금이 생겼어요. 그래서 관객이고 뭐고 신경 쓰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봐 그러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사명감이고 뭐고 필요 없어요.

오종대: 이야기만 들어도 설레는데요? 얼마에요? (웃음) (한참 생각 후) 머리 속에 확 지나가는 것이 뭐냐 하면 음반을 만들어볼까? 좋은 스튜디오에 좋은 사이드맨과? 아냐. 그건 돈이 없어도 충분히 지금 재미있게 할 수 있어. 공연을 할까? 그냥 지나가는 것인데 돈이 살짝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좋은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낯선 청춘: 지금의 학교와는 다른?

오종대: 예. 지금의 학교는 실용음악과잖아요. 또 우리 교육 구조상 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명확해요. 제약 때문에 못하고 있는 것이 많아요. 또 음악 교육에 돈이 많이 들어가요. 학생이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을 받으려면 진짜 부자가 아니면 안 되요. 그렇다고 우리나라 학교 시스템이 그만한 지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돈이 있으면 미국의 몽크 인스티튜트처럼 정말 재능 있고 뛰어난 학생들을 선발해서 이상적 환경에서 자기 실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낯선 청춘: 네. 이제 40대 중반이라 아직 할 일이 많은, 힘이 넘치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다시 13년이 지나 60을 내일모레 바라보는 나이에 종대씨의 모습은 어떨까요? 어떤 음악을 하고 있을까요?

오종대: 음악적으로는 지금과 다른 음악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가 지금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지만 사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은 이거 말고도 많거든요.

낯선 청춘: 하나만 말한다면?

오종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퓨전 음악을 좋아해요. 컨템포러리 재즈도 좋아 하구요. 지금 하고 있는 음악은 가장 기본적인 음악이거든요. 이런걸 하면서 가끔 기회가 생겨서 퓨전 음악을 하면 이전에 이 음악을 깊이 있게 하기 전보다 훨씬 더 재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이 아 내가 지금 이렇게 음악을 해서 쌓이면 나중에는 정말 멋지게 다른 스타일의 음악, 아까 말한 나만의 색이 있는 창조적인 음악을 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꿈이 생겼어요.

낯선 청춘: 그 말씀을 듣고 어줍지 않게 결론을 내리면 학교에서 강의하고 활동을 하면서 생긴 사명감 같은 것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뒤로 조금 물러서게 한 것 같아요. 지금은 때가 아니다 하면서 그 때를 기다리시는 것 같아요.

오종대: 그런 부분도 어느 정도 있죠.

낯선 청춘: 그 사이에 뵐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만 한 15년 뒤에 이런 인터뷰를 다시 한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는 오늘을 추억하면서 70대에는 어떤 음악을 할 까 이야기를 나눠보죠. 감사합니다.

오종대: 감사합니다.

13 COMMENTS

  1. 전 재즈를 ‘어중간하게 감상’하는 입장에서 이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한국 재즈의 현실도 조금 알게 되기도 했고요.
    사실 전 한국 재즈는 Jack Lee..La Ventana 밖에 모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재즈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리스닝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기술발달도 있지만, 해외에서 직접 공연을 접하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최소한 ‘내가 들었던’ 연주만큼은 되야 한다는,
    일부러 의도하지 않지만 이미 귀가 그렇게 좋은 연주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이지 않을까 싶어요.
    내용 중에 “돈이 있으면 미국의 몽크 인스티튜트처럼 정말 재능 있고 뛰어난 학생들을 선발해서 이상적 환경에서 자기 실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라는 말이 한국 재즈 환경의 많은 부분을 함축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장미빛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한국 재즈의 앞날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 자신의 성공을 너머 국내 재즈환경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오종대씨의 생각에 저도 감탄했습니다. 경험을 통해 얻은 자의 생각이었죠. 확실히 저는 연주자가 아니라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구요.

      요즘 우리 재즈는 수준으로 본다면 국가적인 실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그 층이 다양해졌습니다. 양산된다는 느낌도 있지만 어쨌건 그 안에서 출중한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감상자가 적다는 것이 문제인데 미국 또한 재즈가 마이너 중의 마니어 장르가 되고 있다니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튼 재즈 관련 글을 쓰며 발을 걸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걱정이 되는 부분이네요. ㅎ

    • 시야가 넓으셔서 일반 감상자하고는 또 다른 입장이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걱정의 폭이나 깊이도 다르실 것 같고…

      조금 많이(?) 욕심을 부리자면, 한국에도 맨프레드 아이허나 지기 로흐 같은 제작자가 나오면 정말 좋겠습니다.
      참…제가 몰라서 그러는데, 국내의 숨어있는.. 정통한 재즈음반 제작자도 있나요?

    • 스타일은 달라도 제가 아끼는 동생 제작자 둘이 있습니다. 오디오가이의 최정훈씨와 Document Inevitable의 홍지현씨입니다. 둘이 협업도 종종하는데 녹음부터 음악적 선택 모두 참 진중합니다. ㅎ

    • 우와~ 역시 숨은 고수들이 계셨군요! 그 분들 인터뷰해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외국연주자들의 곡만 듣고 있다가 이 인터뷰를 읽고 나니, 관점을 좀 달리하게 되네요.

    • ^^ 만약 재즈 전문가라면 정말 해보고 싶은데, ‘어중간한 감상자’라서 호기심만 있네요.
      알려진 분을 모르는 거 보면..ㅠ 에효..

      음..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만, 단순히 소비자에서 그 공간의 구조를 조금씩 깨우쳐간다고 할까요?… 큰 건 바라지 않고, 감상의 폭이 넓어진 제 자신을 기대하게 됩니다.

    • 저도 잘 모르는 사람을 인터뷰 한적이 있습니다. ㅎ 그땐 그 사람을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천천히 오래 인터뷰를 했습니다. ㅎ

    • ^^ 제가 막.. 해야될 것만 같은 느낌적인..
      아무튼, 낯선청춘님이 올려주신 인터뷰 내용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헤헤..

      참, 요즈음 읽고 있는데, 오홍… 재밌어요!

    • ‘재즈와 살다’입니다.^^

      댓글에 꺽은 괄호를 적으면, 괄호랑 괄호안의 내용을 인식 못하는 것 같아요.
      혹시..수정해주실 수 있을까요?

    • 아.. 괜찮습니다~ 따옴표도 있고, 둥근괄호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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