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d On The Run – Paul McCartney & Wings (Apple 1973)

Band On The Run – Paul McCartney & Wings (Apple 1973)

폴 매카트니와 윙스의 가장 위대한 앨범

폴 매카트니와 윙스의 세 번째 앨범인 <Band On The Run>은 검증된 앨범이다. 1973년 12월에 발매된 이 앨범은 비틀즈 해체 후 폴 매카트니가 발표했던 수십장의 앨범 가운데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가장 성공한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이 앨범은 영국, 미국, 호주 등에서 앨범차트 1위에 올랐다. 심지어는 냉전 중이었던 소련(Soviet Union)에서까지 발매되었다. 그리고 타이틀 곡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것을 비롯하여 앨범의 수록곡 또한 대부분 싱글로 발매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타이틀 곡으로 그룹은 1975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팝 보컬 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앨범은 역설적이게도 윙스가 가장 불안정했던 시기에 제작되었다. 사실 1973년의 윙스는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봄에 발매한 윙스의 두 번째 앨범 <Red Rose Speedway>이 수록곡 ‘My Love’의 인기 속에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와중에 영화‘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8번째 작품인 <Live and Let Die>의 주제곡을 노래했던 것이다. 이러한 활발한 활동은 1972년 5인조가 된 그룹의 탄탄한 입지를 확인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영국에서 앨범을 녹음하는 것에 싫증이 났던 것일까? 폴 매카트니와 린다 매카트니-그녀 역시 윙스의 멤버였다. 늘 그녀를 곁에 두고 싶어했던 폴 매카트니의 생각이었다-는 영국을 떠나 이국적인 장소에서 새로운 앨범을 녹음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세계의 수 많은 스튜디오 리스트 가운데 선택된 것이 나이지리아의 대도시 라고스(Lagos)였다.

그런데 라고스로의 출발을 얼마 남기지 않은 8월, 문제가 발생했다. 리드 기타 연주자 헨리 맥컬러프와 드럼 연주자 데니 사이웰이 갑작스레 그룹을 탈퇴한 것이다. 그러나 린다 맥카트니와 함께 둘이서 앨범을 녹음한 적이 있던 그는 계획을 변경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솔로 앨범 <McCartney>에서 드럼을 직접 연주했던 것을 다시 한번 반복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리드기타는 자신과 데니 레인이 협력하면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나머지 멤버 린다 맥카트니와 데니 레인, 그리고 엔지니어 제프 에머릭만을 대동하고 라고스로 떠났다. 하지만 라고스로 떠나서도 어려움이 많았다. 무엇보다 라고스 현지 스튜디오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강도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밴드는 가장 기본적인 트랙들만 녹음하고 런던으로 돌아와 스트링 섹션, 타악기 연주 등을 추가로 녹음해야 했다.

이처럼 의외의 상황에서 제작되었기에 앨범의 표지 사진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그저 윙스의 멤버들이 앨범 타이틀에 걸맞게 감옥을 탈출하는 무리들의 자세를 잡았구나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저 표지 사진 속 무리(Band)는 윙스 멤버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맨 앞줄에 자리잡은 폴 매카트니, 린다 맥카트니, 데니 레인 외에 6명이 사진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은 마이클 파킨슨(쇼 호스트, 기자), 케니 린치(코미디언, 가수), 제임스 코번(배우), 클레망 프로이드(영국 의회 의원, 프로이드의 손자) 크리스토퍼 리(드라큘라로 알려진 배우), 존 콘테(후에 세계 챔피언이 되는 권투선수)로 당시 영국 내에서 잘 알려진 유명인들이었다. 이렇게 그룹 멤버를 비롯하여 유명인들이 도망자의 모습으로 표지 사진에 등장했기에 앨범 타이틀에 내재된 탈출의 의미는 영국이라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로도 읽힐 수가 있겠다.

실제 앨범에서 가장 인기를 얻은 곡은 타이틀 곡 ‘Band On The Run’이었다. 지난 2007년 푸 파이터스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던 이 곡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각 부분은 답답한 감옥에 갇혀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해 괴로운 한 사람이 탈출을 상상하고 결국 이를 실천하여 자유를 찾는다는 가사 내용에 따라 서사적으로 연결된다. 그 결과 앨범은 감상자들의 일상탈출 정서를 자극하며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Band On The Run’외에 앨범은 비틀즈 시절부터 인정받았던 폴 매카트니 특유의 탁월한 멜로디적 감각과 이것을 완전한‘음악’으로 숨쉬게 하는 섬세한 편곡 솜씨를 확인하게 해준다. 그리고 각각의 곡들은 폴 매카트니의 일상, 개인적인 만남, 경험 등을 소재로 독자적 개성을 느끼게 한다. 특히 ‘Let Me Roll It’은 비틀즈의 해체 이유 중 하나로 알려진 존 레논과의 끝나지 않은 애증 관계를 드러낸다. 존 레논은 1971년도 앨범 <Imagine>에 수록된 ‘How Do You Sleep?’을 통해서 1966년 폴 매카트니가 사망했고 그와 비슷한 사람이 대역의 삶을 살고 있다는 음모론에 동조하는 등 전체적으로 폴 매카트니를 겨냥한 험담을 표현했었다. 이에 대해 폴 매카트니가 ‘Let Me Roll It’을 통해 ‘더 이상 마음 쓰지 말라.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실제 이 곡은 리버브가 잔뜩 들어간 보컬부터 기타 연주 스타일까지 존 레논의 스타일을 반영했다는 느낌을 준다.

한편 ‘나를 위해 건배를, 나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알다시피 나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하니 (Drink To Me, Drink To My Health, You Know I Can’t Drink Any More)’라는 피카소의 마지막 말을 그대로 가사로 사용한 ‘Picasso’s Last Words (Drink To Me)’는 단번에 좋을 멜로디를 지닌 곡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폴 매카트니의 능력을 보여준다. 1973년 4월 그는 자마이카로 휴가를 갔는데 그곳에서 마침 영화 <빠삐용>을 촬영하고 있었던 더스틴 호프만과 스티브 맥퀸을 만났다. 그래서 함께 식사를 하던 중 폴 매카트니가 어떤 소재로도 곡을 쓸 수 있다고 하자 이를 의심한 더스틴 호프만이 타임지에 실린‘피카소의 마지막 날들과 마지막 여행’이라는 기사를 소재로 곡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Picasso’s Last Words (Drink To Me)’를 작사, 작곡했다고 한다. 이 곡은 중간에 ‘Jet’와 ‘Mrs. Vandebilt’의 일부분을 삽입하는 등 편곡에 있어서도 피카소의 큐비즘을 음악적으로 반영하려 한 폴 매카트니의 재치를 엿보게 한다.

이들 곡들 외에 아련한 하모니와 재즈적인 맛을 가미한 연가적 분위기의‘Bluebird’, 스트링 섹션이 가세한 ‘No Words’, 어쿠스틱 기타의 담백한 질감을 배경으로 자연 친화적인 내용을 담은 ‘Mamunia’같은 곡들은 비틀즈 시절의 폴 매카트니를 향수하게 만든다. 그리고 당시 폴 매카트니가 기르고 있던 말을 소재로 만들었다는-초기에는 역시 그가 기르고 있던 라브라도 리트리버를 소재로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인터뷰에서 그것이 아님이 밝혀졌다-‘Jet’나 코미디언 찰리 체스터의 뮤직 홀 쇼의 유명한 캐치프레이즈였던 ‘정글에 떨어져 텐트에서 산다 (Down In The Jungle, Living In A Tent)’를 가사로 사용한 록앤롤 분위기의 곡 ‘Mrs. Vandebilt’, 토니 비스콘티의 장대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마감하는 ‘Nineteen Hundred and Eighty-Five’ 등도 각각의 매력으로 사랑을 받았다.

앨범 <Band On The Run>에 대해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 이후 녹음된 자신의 앨범 가운데서 솔로앨범 <McCartney>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앨범으로 꼽는다. 그것은 아마도 두 앨범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여 만들어 낸 앨범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노력이 제대로 된 평가로 이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지금까지 유효하다. 실제 2003년 잡지‘롤링 스톤’은 이 앨범을 역사상 위대한 500장의 앨범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으며 이 잡지에서 평론가 존 랜도는 이 앨범을 비틀즈 출신의 네 멤버가 만든 앨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앨범이라 평했다.

그러므로 이 앨범은 단순히 폴 매카트니의 대표작을 확인한다는 생각으로 들을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폴 매카트니라는 역사적 무게를 뒤로 하고 오로지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2010년 현재의 관점에서 들어보기 바란다. 그러면 역설적이게도 이 앨범의 작곡, 편곡 그리고 이를 구체화 한 연주가 얼마나 뛰어난지 그리고 그것이 시간을 벗어난 영원성을 획득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PS: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은 1973년 영국에서 발매되었던, 폴 매카트니의 최초 의도가 그대로 담긴 오리지널 판이다. 미국이나 기타 지역에서 발매된 앨범에는 앨범 발매에 즈음하여 싱글로 발매되었던 ‘Helen Wheels’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폴 매카트니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에서만큼은 1993년의‘Paul McCartney Collection’ 시리즈의 하나로 재발매 되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늘 원래의 9곡으로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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