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 페트루치아니 (Michel Petrucciani 1962.12.28 ~ 1999. 1. 6)

신체적 결함을 음악으로 승화했던 작은 거인

어떤 일이건 어려움을 딛고 커다란 결실을 맺은 사람을 보면 저절로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재즈사를 빛낸 명인들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들은 적어도 재즈사에서만큼은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들이었다. 프랑스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미셀 페트루치아니의 경우가 바로 어려움 끝이 성공을 이루어낸 경우에 해당한다.

그에게 있어 어려움은 경제적인 여건이나 사회적인 여건이 아니었다. 바로 신체적 조건이 그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정상적인 몸이 아니었다. 골형성부전증을 안고 태어난 것이다. 유전적인 질병인 이 병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골절이 될 정도로 뼈의 발육이 완전하지 못한 병을 말한다. 심지어 태어나기 전부터 골절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뼈의 발육이 잘 안 되는 만큼 키도 잘 자라지 못하며 기형적인 팔다리를 지닐 확률이 많다. 미셀 페트루치아니만 해도 9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키로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았다. 이렇게 연약하고 불편한 몸을 지닌 그가 재즈 피아노 연주자로 좋은 연주, 훌륭한 음악을 남긴 것이다.

뼈와 관련된 질병으로 발육이 좋지 않았던 만큼 그는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나 형이 그를 늘 옮겨야 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양 팔에 보조기구를 차고 움직여야 했다. 따라서 당연히 다른 사람들처럼 운동을 즐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빠졌던 것은 음악이었다. 특히 그는 듀크 엘링턴의 음악을 매우 좋아했다. 그런데 빅 밴드의 리더로서가 아니라 피아노 연주자로서 듀크 엘링턴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사실 전체 밴드를 조율하고 각 연주자의 개성을 적절히 활용하는 능력에 가려서 그렇지 듀크 엘링턴은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였다. 그래도 미셀 페트루치아니가 그의 음악을 들으며 피아노 연주자의 꿈을 키웠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아무튼 그가 듀크 엘링턴을 좋아했다는 것은 ‘Caravan’이나 ‘Take The A Train’같은 듀크 엘링턴의 대표곡을 즐겨 연주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1993년에는 듀크 엘링턴을 주제로 한 앨범 <Promenade With Duke>을 녹음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유럽 연주자들이 그랬듯 그 또한 처음에는 클래식 피아노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피아노를 연주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무엇보다 키가 너무나도 작기 때문에 피아노 페달을 밟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직접 키에 맞는 보조장치를 고안하여 사용해야 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능력은 무척 뛰어났다. 그래서 13세에 콘서트를 하기도 했으며 드럼 연주자 알도 로마노 등과 함께 트리오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역량이 제대로 인정 받기 시작한 것은 1982년 20세의 나이로 미국에 건너가면서부터였다. 듀크 엘링턴의 나라에서 그는 색소폰 연주자 찰스 로이드를 만났다. 찰스 로이드는 이미 1960년대 중반에 신예였던 키스 자렛을 발굴했던 경험이 있었다. 어쩌면 그는 키스 자렛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미셀 페트루치아니를 만나면서 다시 한번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찰스 로이드와 미셀 페트루치아니의 만남은 1985년 2월 뉴욕의 타운 홀 공연을 통해 빛을 발했다. 이 공연에서 찰스 로이드는 직접 미셀 페트루치아니를 안고 무대에 등장해 피아노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이 작은 연주자는 출중한 실력으로 관객을 감동시켰다. 이 날의 공연은 영화감독 존 찰스 좁슨에 의해 촬영되어 <One Night With Blue Note>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일부분이 사용되기도 했다.

찰스 로이드의 도움으로 미국에 안착한 후 미셀 페트루치아니는 웨인 쇼터, 짐 홀, 게리 피콕, 로이 헤인즈, 조 로바노, 스탠리 클락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자들과 함께 블루 노트 레이블에서 앨범을 녹음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리고 1994년 드레퓌스 레이블에서 앨범 <Marvelous>를 녹음하며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렇기에 보통 미셀 페트루치아니의 음악은 블루 노트 레이블 시절과 드레퓌스 레이블 시절로 나뉘어 이야기되곤 한다. 여기엔 사람마다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앨범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드레퓌스 레이블에서 녹음한 앨범들이 미셀 페트루치아니의 음악적 면모를 더 잘 반영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것은 드레퓌스 레이블 시절이 상대적으로 후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리더로서의 역량 솔로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역량이 잘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미셀 페트루치아니의 음악이 지닌 매력은 무엇보다 특유의 낙관적인 정서에 있다. 그의 연주는 낭만적일지언정 결코 우울하지 않다. 늘 정겨움과 유쾌함으로 가득 차 있다. 만약 당신이 미셀 페트루치아니의 연주를 좋아한다면 화려한 기교보다는 밝고 따스한 정서 때문일 확률이 크다. 게다가 그 긍정적인 정서가 신체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온 것이기에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다. 정말 그의 연주를 듣다 보면 선천적으로 기형을 안고 태어난 것을 불평하는 대신 이를 받아들이고 오히려 재즈 피아노 연주자로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의 현재에 만족해야 나올 수 있는 연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또한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1995년 프랑스 메조 TV가 제작한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늘 죽음을 생각하고 그 죽음이 빨리 찾아올까 걱정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다큐멘터리는 한 건물 옥상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미셀 페트루치아니가 ‘나는 이별을 말하는 것이 제일 싫다’고 말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래서 나는 그가 죽음의 불안을 잊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하여 그토록 건강한 음악을 연주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실이 주는 불안을 누구보다도 몸으로 겪었기에 그렇게 사람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연주를 펼칠 수 있었으리라.

그의 예상대로 죽음은 너무나도 빨리 그를 찾아왔다. 36번째 생일을 맞이한 지 9일이 지난 1999년 1월 6일 그는 세상을 떠났다. 골형성부전증에 걸린 사람이 쉽게 걸릴 수 있는 병의 하나인 폐감염이 원인이었다.

대표 앨범

Power Of Three (Blue Note 1986)

미셀 페트루치아니의 미국 활동은 상당부분 거장들과의 협연에 집중되어 있다. 선배 연주자들과의 연주를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견고히 하려 했다고나 할까? 그 가운데 1986년 웨인 쇼터(색소폰), 짐 홀(기타)와 트리오를 이루어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서 가졌던 공연을 담고 있는 이 앨범은 그 활동의 정점이었다. 이 앨범에서 그는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비범한 음악적 상상력과 연주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Both Worlds (Dreyfus 1998)

이 앨범의 타이틀은 자신을 포함한 유럽 연주자 3명과 미국 연주자 3명이 만나 함께 한 것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미국과 유럽의 정서를 아우르는 미셀 페트루치아니만의 음악이 얼마나 개성적이고 매력적인지를 드러낸다. 특히 미셀 페트루치아니의 대표곡으로 자리잡게 될 ‘Brazilian Like’를 비롯하여 ‘Chloe Meets Gershwin’, ‘On Top of the Roof’ 등의 곡은 밝고 유쾌한 그의 음악을 잘 대변한다.

Solo Live (Dreyfus 1998)

1997년 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솔로 공연을 담고 있지만 발매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이루어졌다. 그의 공식적인 마지막 앨범인 셈. 공연 당시에는 다가올 죽음을 알지 못했겠지만 마치 마지막 공연이라도 되는 듯 그의 연주는 다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이고 또 그만큼 매력적이다. 연주된 곡들 또한 그의 음악을 대표한다고 할만하다. 특히 10여분간 유쾌하고 강렬한 연주로 관객을 사로잡는 ‘Caravan’은 그의 삶의 명연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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