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 – Till Brönner (Universal 2008)

Rio – Till Brönner (Universal 2008)

신비로운 정서를 지닌 틸 브뢰너식의 보사노바 앨범

보사노바는 브라질에서 태어난 리듬이자 그 리듬을 근간으로 하는 음악이다. 하지만 현재 보사노바는 브라질의 이미지를 잃지는 않았지만 브라질을 넘어 세계인의 리듬, 세계인의 음악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우리 가요만 해도 어렵지 않게 보사노바 곡들이 발견되곤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보사노바를 브라질의 전통 리듬으로 생각하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말로 “새로운 흐름”, “새로운 물결”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보사노바는 1958년 브라질의 여성 보컬 엘리자베스 카르도소가 자신의 앨범 <Cancao do Amor Demais>에서 노래한“Chega De Saudade”를 통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곡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비니시우스 드 모라에스가 각각 멜로디와 가사를 쓰고 여기에 호앙 질베르토가 삼바를 기반으로 쿨 재즈적인 색채를 넣어 만든 새로운 리듬-보사노바!-을 사용함으로써 만들어졌다. 당시 젊은 감상자들은 긴장과 이완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새로운 리듬과 그 음악적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보사노바는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2008년으로 보사노바는 탄생 50주년을 맞았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많은 앨범들이 제작되었다. 독일 출신으로 쳇 베이커적인 감성으로 노래하고 연주를 해온 트럼펫 연주자 틸 브뢰너의 이번 새 앨범 또한 보사노바의 탄생 5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앨범이다. 틸 브뢰너는 클래식 트럼펫을 전공하면서 찰리 파커의 비밥 재즈를 들었을 때만큼이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보사노바를 처음 들었을 때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역시 보사노바를 즐겨 듣고 연주해왔으며 올 해 이 앨범을 녹음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보사노바를 연주하고 노래한다는 것은 의외로 편하고 쉬운 일 같으면서도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왜냐고? 그것은 보사노바 자체의 아우라 때문이다. 보사노바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자의 의지와 상관 없는 자체의 생명력을 보사노바는 지녔다. 그래서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지닌 연주자나 보컬이라도 자신의 음악적 개성을 보사노바를 기반으로 드러내기가 매우 힘들다. 보사노바 앞에서는 모든 연주자가 평등해진다고나 할까? 실제 나는 연주자의 부족한 실력이 보사노바를 통해 그럴싸하게 포장된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리고 반대로 보사노바의 치명적 마력으로 인해 연주자의 뛰어난 실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경우도 많이 보아왔다.

그렇다면 틸 브뢰너의 경우는 어떨까? 꼭 라이너 노트를 위한 글이기에 주례사처럼 하는 말이 아니라 틸 브뢰너의 이번 앨범은 보사노바의 마력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앨범이라 말하고 싶다. 그것은 틸 브뢰너가 보사노바의 세계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에 보사노바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앨범을 제작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실제 보사노바의 대명사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곡들을 중심으로 치코 부아르끄, 호앙 도나토 등 상대적으로 조빔에 비해 덜 조명을 받은 브라질 작곡가의 곡들까지 선곡하고 기타 연주자 마르코 페레이라, 타악기 연주자 마르코스 수자노 등의 1급 브라질 연주자들을 기용하고 밀튼 나시멘토, 세르지오 멘데스, 루시아나 수자, 마네사 다 마타 같은 브라질 보컬을 게스트로 부른 것을 보면 틸 브뢰너가 보사노바의 기본을 상당히 존중했음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이 정도의 제작 환경에 만족했다면 앨범은 보사노바의 편안하고 달콤한 자연적 분위기를 재현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틸 브뢰너만의 개성을 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틸 브뢰너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것은 바로 보사노바의 매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팝 혹은 스무드 재즈적인 특성을 사운드에 불어넣는 것이었다. 브라질 보컬들 외에 최근 새로이 떠오르고 있는 신예 재즈 보컬 멜로디 가르도, 남성 재즈 보컬의 기수 커트 엘링과 함께 유리 스믹스 출신의 애니 레녹스, 에이미 만 같은 팝 보컬을 게스트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이들 다양한 보컬들은 앨범에서 브라질 출신의 연주자가 만들어놓은 순수한 보사노바의 공간에 보다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정서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틸 브뢰너의 2006년 <Oceana>를 제작했으며 지난 해 그래미상 수상작인 허비 행콕의 <River: The Joni Letters>를 제작하기도 했던 명 제작자 래리 클라인의 방향 설정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브라질 보컬들이 참여한 곡과 다른 보컬들이 참여한 곡들이 어떤 질감의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앨범의 매력은 보사노바 특유의 자연미와 틸 브뢰너의 도시적 감각의 공존이 아니라 결합에 있다. 그래서 민감한 감상자들은 이 앨범을 들으면서 기본 보사노바 곡들을 들을 때 느끼곤 했던 평온, 나른함, 행복의 정서 뒤로 살짝 가라앉은 듯한 정적, 고독, 슬픔 혹은 우울의 정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막연히 이 앨범이 기존 보사노바 앨범과는 어딘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해도 상관 없다. 그 역시 다소 부조리하다 싶을 정도로 복합적인 이 앨범의 정서 때문이니 말이다. 이를 위해 밀튼 나시멘토와 애니 레녹스의 보컬이 몽환적으로 어우러지는 “Mystérios”, 강약, 긴장과 풀어짐을 절묘하게 표현하는 기타가 인상적인 “O Que Sera?”, 맑음과 흐림을 동시에 간직한 멜로디 가르도의 보컬이 돋보이는 “High Note”, 평온과 축제적 흥분이 함께 느껴지는 “A Rã” 등의 곡을 들어보기 바란다. 과연 이들 곡들의 정서를 하나로 명쾌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한편 기본 보사노바의 마력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성공한 앨범인 만큼 이번 앨범에서도 우리는 틸 브뢰너의 매력을 다시 한번 만끽할 수 있다.  먼저“So Danço Samba”, “Café Com Pão” 같은 곡을 통해서는 틸 브뢰너의 나긋이 속삭이는 듯한 여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여전히 쳇 베이커의 영향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보사노바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지 스탄 겟츠와 함께 <Getz/Gilberto>앨범을 녹음할 당시의 호앙 질베르토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틸 브뢰너의 매력은 트럼펫에 있지 않나 싶다. 특히 안개처럼 포근하고 부드럽게 다가오는 듯한 그의 스모키(Smokey)한 질감의 트럼펫 사운드야 말로 이번 앨범의 복합적인 정서를 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하겠다.

꼭 보사노바 탄생 50주년을 생각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많은 보사노바 앨범들이 발매되었다. 하지만 꾸준히 감상되고 인구에 회자되는 앨범은 그 안에서 불과 몇 장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틸 브뢰너의 이번 앨범을 보사노바의 명반 자리이라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대신 꾸준히 곁에 두고 들을 수 있는 앨범으로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왜냐하면 앨범의 복합적인 정서가 앨범을 오랜 시간 신선하게 느끼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로 명쾌하게 정의되지 않는 정서를 지닌 앨범은 질리는 법이 없다. 감상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뿐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 앨범을 설명하기 위해“신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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