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많은 음악을 듣다 보면 잊히는 음악이 많다. 아예 들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까맣게. 별 느낌이 없었기에 잊혔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우연히 다시 듣게 되었을 때 다르게 다가오는 음악이 있다. 왜 내가 이 음악을 그냥 흘려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르게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이다. 이렇게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음악이 있다.
연주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이 했던 연주를 잊고 있다가 후에 녹음된 것을 다시 듣고 깜짝 놀라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연주를 했었다고 하면서 깜짝 놀라는 것이다.
기타 연주자 팻 메시니가 그랬다. 그는 세계 곳곳을 돌며 1년 중 수 많은 공연을 한다. 그의 음악처럼 그의 삶은 길 위에 있다. 160회 정도의 공연을 했던 지난 2022년 그는 자유 시간을 이용해 우연히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음악 폴더를 들추었다. 그 폴더에는 평소 찰리 헤이든의 조언을 따라 악상을 악보에 적는 대신 연주로 기록한 파일들이 담겨 있었다. 폴더에 담긴 곡들은 녹음했는지 조차 잊을 정도로 다시 듣지도 다시 연주하지도 않았던 것들이었다.
폴더 속 곡들을 차근차근 들으면서 팻 메시니는 다양한 순간에 영감을 따라 연주한 곡들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어떤 일관된 흐름을 만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폴더에서 9곡을 추려 앨범으로 발매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바로 이번 새 앨범 <Dream Box>이다.
순간에 마음 가는 대로 연주한 곡들이라고 하지만 앨범에 담긴 곡들은 그런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어떻게 한번에 완결된 연주를 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이리 괜찮은 곡과 연주를 잊고 살았는지 놀랄 정도로 완벽하다. 애초 곡을 녹음할 때 기타 연주자는 갑자기 떠오른 영감, 그 순간의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 스케치하듯 연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물은 단순히 연필로 대략의 구도와 윤곽을 그린 수준을 넘어 채색까지 되어 있다. 솔로 연주라 하지만 오버 더빙을 통해 솔로와 반주가 명확히 갖추어진 모습을 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어떤 순간 그는 이 곡들의 메타를 떠올리고 혼자 연주하게 되었을까? 자작곡 외에 “I Fall In Love Too Easily”, “Morning Of The Carnival” 같은 스탠더드 곡들도 연주된 것으로 보아 단순히 새로운 작곡 동기를 기록하기 위한 연주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가끔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갑자기 넘친 감정을 흘려 보내기 위해 종이에 무엇인가를 쓰듯이 특정 순간의 개인적 감정들- 이를테면 집에 대한 그리움, 고독감을 정리하기 위해 연주한 것 같다.
어쩌면 이 앨범보다는 보다 목적성이 강했지만 팻 메시니의 내밀함을 드러냈던 어쿠스틱 기타 솔로 앨범 <One Quiet Night>(2003)이나 <What’s It All About>(2011)의 일렉트릭 버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의 차이만큼이나 앨범의 정서적 질감은 확연히 다르다. 이 앨범은 ECM 레이블에 있던 초기 시절, 여행자적 정서로 감상자들을 매료시켰던, 우리가 제일 많이 좋아하는 기타 연주자의 모습 상기시킨다. “The Waves Are Not The Ocean”이나 “Never Was Love” 같은 곡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곡은 초기 팻 메시니 그룹이나 솔로 앨범 (1979) 시절을 뭉클하게 추억하게 한다. 이 앨범이 “Clouds Can’t Change the Sky”로 끝나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시간 속에서 외양은 변했지만 팻 메시니의 음악적 핵심은 그대로인 것이다.
“Box”는 속이 비어 있는 할로우 바디 기타를 의미하는 연주자들 사이의 은어라고 한다. 이 앨범에서 팻 메시니는 찰리 크리스챤 스타일의 기타 픽업을 반영한 새로운 기타 모델을 연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Box” 앞에 놓인 “Dream”이 중요하다. “꿈의 기타”란 타이틀처럼 그의 연주는 우리 또한 기타 톤만큼이나 영롱한 꿈을 꾸게 하니 말이다.
음악적으로 보면 최근 그의 다양한 프로젝트나 그룹 앨범들에 비해 참신한 맛은 덜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와는 다른 친근함, 익숙함이 이를 지운다. 나는 적어도 10년 사이에 발매된 팻 메시니의 앨범들 중 이 앨범이 제일 마음에 든다. 늘 청춘인 것만 같은 그의 나이도 어느덧 68세. 이 정도면 새로운 길보다 지나온 길을 추억하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내 리뷰가 감상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