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감정에 충실한 연주, 그것이 주는 감동
허대욱은 2006년에 발매된 첫 앨범 <To The West>부터 뜨거운 열정으로 거침 없이 질주하면서도 그 안에 매혹적인 시정을 담아낸 연주로 한국 재즈의 개성 강한 스타일리스트로 주목 받았다. 이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 그는 두 번째 앨범 <Le Moment Disperse>(2007)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재즈를 공부하고 정착하여 <Trigram>(2010), <Interval Of Parallel>(2012), <Sherpa>(2019) 등의 앨범으로 꾸준히 그의 건재를 보여주었다.
앨범의 수로만 본다면 그는 과작(寡作)의 연주자이다. 게다가 7년만에 선보였던 앨범 <Sherpa>는 국내에 제대로 공개 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에 발매된 앨범은 4년이 아닌 11년만의 새 앨범처럼 느껴지는 감상자가 많을 것이다. 또한 피아노 솔로 앨범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Trigram> 이후 13년만이기에 더 반가울 것이다.
트리오가 되었건 솔로가 되었건 이전 앨범들에서 피아노 연주자는 작곡가로서의 이상적 구조와 연주자로서 자유를 획득하려는 두 가지 두 개의 지향점을 드러내고 그 사이를 긴장 속에 오갔다. 그에 비한다면 이번 앨범은 매우 감성적이다. 여기에는 연주된 곡들이 피아노 연주자 이전에 인간 허대욱으로서 지낸 삶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촌을 “딴뚠”이라 부르는 귀여운 조카에 대한 사랑을 담아낸 “Ttanttun Song”이나 그가 자주 가던 파리의 한 카페 클레베를 표현한 “Old Vibes” 같은 곡들이나 사랑, 이별, 회상을 주제로 한 곡들이 그렇다.
자신의 삶에서 나온 곡들인 만큼 다른 어느 때보다 그는 명확하게 감정을 표현했다. 행복한 기억을 담은 곡에서는 매우 행복하게 슬픈 경험을 바탕으로 한 듯한 곡에서는 우수를 담뿍 담아 연주했다. 그래서 행복한 “Ttanttun Song”에 이어 곧바로 슬픈 “사랑 사랑 이별 이별”이 나올 때는 너무나도 선명한 감정 변화에 조울증에 걸린 것 같은 느낌마저 된다.
개인의 경험, 감성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정서에 연주를 종속시키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의 연주는 멜로디와 화성 모두를 아우르며 입체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인상적인다만 이번 앨범에서는 감정을 보다 자유롭게 표출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Intermezzo”가 대표적이다. 앨범에서 가장 정서적 흡입력이 강한 곡이 아닐까 싶은데 이 곡에서 허대욱은 차근차근 우울한 감성을 멜로디나 이를 감사는 코드 진행에서 나아가 화려하고 자유로운 솔로 연주를 통해 분출했다. 그래서 감상자를 황홀하게 한다.
한편 이전 솔로 앨범 <Trigram>에서 연주했던 “Blow, Flow, Glow”나 트리오 앨범 에서 나윤선과의 협연으로 선보였던 “Soul To Soul” 등 이전에 선보인 곡들의 새로운 연주는 보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서정을 표현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4년이건, 11년이건, 13년이건 간에 오랜만에 발매된 이번 앨범은 그 기다림만큼이나 무척 만족스럽다. 부디 그가 국내에서 보다 활발한 연주와 앨범 활동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