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blo & Concord Jazz 4

주트 심스와 스콧 해밀턴

저니 맨 파블로에 안착하다

퓨전 재즈가 인기를 얻으면서 위축된 전통적인 재즈-당시의 상황과는 모순된 표현인 메인스트림이라 불리던 재즈에 속하는 연주자들에게 파블로 레이블은 새로운 희망 같았다. 그 희망을 찾아 많은 연주자들이 파블로 레이블에 하나 둘 모였다. 그 가운데 색소폰 연주자 주트 심스는 꺼져가던 불꽃의 연장이 아닌 음악 인생 중 가장 안정적이고 화려한 불꽃을 파블로 레이블에서 태울 수 있었다.

1925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잉글우드 시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후반에 베니 굿맨 밴드 활동으로 주목받았고 우디 허먼의 세컨드 허드(Second Herd) 밴드 활동으로 인기 연주자의 반열에 올랐다. 스탄 겟츠, 허비 스튜어드, 서지 샬로프 등의 색소폰 연주자들과 신선한 어울림을 보여준 “Four Brothers”가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이 색소폰 연주자는 조직에 묶이는 것을 싫어했다. 혼자 솔로 연주자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위치에 오르자 그는 평생 여행자 같은 삶을 살았다. 스탄 켄튼 밴드에 머물던 1953년 펜실베니아 고속도로에서 밴드가 탄 버스가 고장 나자 그 길로 밴드를 아예 떠나 솔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를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였다.

여행자답게 그는 프레스티지, 메트로놈, 보그, 던, 스토리빌, 아르고, ABC-파라마운트, 리버사이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퍼시픽 재즈, 베들레헴, 콜픽스, 임펄스, 소네트 등 실로 다양한 레이블을 옮기며 앨범을 녹음했다. 그런 그의 여행은 1975년 파블로 레이블에 합류하면서 멈추었다. 그는 파블로 레이블에서 1985년 만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0년간 약 20여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비교적 오랜 시간 함께 하며 음악적으로 공동의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정규 그룹도 결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는 자신이 중심에서 모든 조명을 받으려고만 하지 않았다. 리더 앨범을 녹음할 때마다 그는 동료 연주자들을 불렀고 그들이 조명 받을 수 있도록 자리를 양보하곤 했다. 파블로 레이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75년에 녹음된 첫 앨범 <Count & Zoot>는 그 타이틀이 말하듯 카운트 베이시가 함께 했다. 이후 색소폰 연주자의 앨범에는 알 콘, 오스카 피터슨, 레이 브라운, 아트 페퍼, 지미 로울스, 해리 스윗 에디슨 등의 연주자들이 그 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For Lady Day (1991)

파블로 레이블에서 녹음한 주트 심스의 앨범들은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뛰어났다. 매번 비슷한 스타일의 연주였기에 식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레스터 영과 벤 웹스터 사이에서 찾아낸 부드러움과 호방함을 겸비한 색소폰 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뿐이라 말하는 듯 가벼운 스윙감이 그 뻔함을 안정적인 즐거움으로 바꾸었다. 만약 그가 마지막 10년간 녹음했던 앨범들이 20,30년 전에 발매되었다면 보다 높은 인기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여러 앨범들 가운데 우선적으로 피아노 연주자 피아노 연주자 지미 로울스와 함께 그룹을 이루어 녹음했던 앨범들을 우선 추천한다. 베이스와 드럼 연주자가 종종 다르긴 했지만 그래도 느슨한 정규 밴드처럼 수년에 걸쳐 다양한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주트 심스의 마지막 불꽃을 확인하기 가장 좋을 것이다.

주트 심스-지미 로울스 협연 앨범 중 다시 한 장을 고른다면 1978년에 녹음 되어 색소폰 연주자 사후인 1991년에 발매된 앨범 <For Lady Day>를 어렵게 택하겠다. 지미 로울스 외에 베이스 연주자 조지 므라즈, 드럼 연주자 재키 윌리엄스와 쿼텟을 이룬 이 앨범은 앨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빌리 할리데이에 대한 헌정의 마음을 담은 앨범이다.

주트 심스가 왜 빌리 할리데이를 주제로 한 앨범을 녹음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듬 해 빌리 할리데이의 사망 20주기를 맞추어 발매하기 위해 녹음한 것일까? 아니면 노먼 그랜츠가 클레프 레이블을 운영하면서 빌리 할리데이의 앨범을 제작했던 추억이 이 앨범을 기획하게 한 것일 수도 있다. 또 그 시절 지미 로울스가 빌리 할리데이와 함께 했었다는 것도 작용했을 수 있다.

이유야 어쨌건 이 앨범에서 주트 심스 쿼텟은 빌리 할리데이가 즐겨 노래했던 11곡을 연주했다. 그런데 빌리 할리데이 하면 떠오르는 강렬했던 후반기의 거칠고 슬픈 분위기가 아닌 부드럽고 달콤한 분위기로 연주했다. 그래서 “Easy Living”은 편안한 삶에의 갈망이 아니라 편안한 삶 자체를, “Body and Soul”은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열정적 사랑이 아니라 모과 마음 모두 달콤한 사랑을 느끼게 했다. 이 모든 안락함은 무심한 듯 느긋한 지미 로울스와 그 트리오 연주 위로 흐르는 화려하면서도(Zoot!) 지나침이 없는 색소폰에서 나왔다.

아무리 큰 아픔, 불행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옅어져 결국 좋은 기억만 남듯이 주트 심스의 연주는 빌리 할리데이의 힘든 삶을 다시 들추는 대신 그녀의 명복을 비는 마음이 더 강했다. 나아가 그것은 중심에서 멀어져, 어느덧 중장년 대상의 음악이 되어가고 있던 메인스트림 재즈의 좋았던 시절에 대한 애정 어린 추억이기도 했다.

주트 심스의 후계자 스콧 해밀턴

주트 심스가 파블로 레이블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시작할 무렵 콩코드 재즈 레이블에는 스콧 해밀턴이라는 20대 초반의 젊은 색소폰 연주자가 등장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1954년 미국 로드 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 시에서 태어난 이 색소폰 연주자는 여러 모로 주트 심스와 닮은 면이 많았다. 그 또한 베니 굿맨, 우디 허먼 밴드 등을 거치며 성장했다. 본인은 자니 호지스를 먼저 꼽기는 하지만 주트 심스처럼 벤 웹스터의 그림자가 많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트 심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실제 경쾌한 스윙감, 부드럽고 여유로운 톤, 낭만적인 솔로 등 스콧 해밀턴의 연주를 설명하는 요소들은 주트 심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들이다.

두 사람은 함께 연주도 많이 했다. 파블로나 콩코드 재즈가 아닌 제미니 레이블에서 발매된 앨범 가 좋은 예이다. 주트 심스가 세상을 떠나기 약 4개월 전, 스웨덴의 볼랭예에서의 공연을 담은 이 앨범은 19세의 나이 차가 나는 두 신구 연주자의 따뜻한 관계의 증표이자 일종의 대물림, 세대 교체의 증거이기도 했다.

스콧 해밀턴은 1998년 주트 심스를 기리는 앨범 <Red Door: Remember Zoot Sims>(1998)을 녹음하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 그는 기타 연주자 버키 피자렐리와 함께 듀오 연주를 펼쳤다. 주트 심스와 버키 피자렐리의 1980년에 뉴욕 공연을 담은 앨범 <Elegiac>(Storyville 1986)을 떠올리게 했다.

스콧 해밀턴은 콩코드 재즈 레이블에서 앨범 활동을 시작했다. 1977년 만 23세의 나이로 녹음한 앨범 <Scott Hamilton Is a Good Wind Who Is Blowing Us No Ill>을 시작으로 2008년도 앨범 까지 수십 장의 리더 앨범을 녹음하는 한편 로즈마리 클루니, 레이 브라운, 허브 엘리스, 진 해리스, 카린 앨리슨 등 콩코드 재즈의 여러 연주자와 보컬 앨범에 사이드맨으로 참여했다. 말하자면 콩코드 재즈가 키운 인물이라 하겠다.

약 30년간 콩코드 재즈 소속의 수 많은 앨범을 녹음한 그는 200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으로 이주한 후부터는 한 레이블에 정착하지 않고 여러 레이블을 가로지르며 지금까지 앨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주트 심스가 저니 맨 활동을 하다가 파블로에 정착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여정을 걷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규 밴드 활동 대신 앨범마다 다양한 만남을 즐기는 것은 주트 심스를 떠올린다.

Tenorshoes(1980)

스콧 해밀턴의 앨범들은 비밥, 하드 밥 시대의 핵심을 부드러운 감성으로 소화한 연주를 담고 있다. 그래서 연주한 곡들의 차이를 제외하면 세련된 동어 반복의 느낌을 주곤 한다. 그러면서도 질리거나 지루함을 대신 기분 좋은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특정 앨범을 최고로 꼽기 어렵다. 그럼에도 한 장을 고른다면 그의 초기 앨범 중 1980년도 앨범 <Tenorshoes>로 하고 싶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스콧 해밀턴의 음악적 매력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피아노 연주자 데이브 맥케나, 베이스 연주자 필 플래나간, 드럼 연주자 제프 해밀턴과 쿼텟을 이룬 이 앨범에서 그는 발라드 중심으로 연주를 펼쳤다. 그의 발라드 연주는 게으르다 싶을 정도의 느긋함과 순박하다 싶을 정도의 긍정적인 분위기로 가득했다. 발가락, 발등, 발 볼, 발뒤꿈치 어느 하나 불편함 없이 부드럽게 감싸는 질 좋은 가죽 구두 같다.

“How High The Moon”, ”Our Delight”, “O.K”처럼 속도를 높여 뜨겁게 연주한 곡도 있다. 그러나 일부러 색소폰의 부드러운 질감에 거친 주름을 내는 순간에서도차 그의 연주는 낭만적이었다.

이 모든 연주는 1950,60년대 재즈의 추억이 무척 낭만적이었음을 상기시키는 한편 그것이 1980년 당시에도 현재적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매력은 그로부터 43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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