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 Hope – 푸디토리움 (Stomp Music 2023)

푸디토리움이 전하는 잔잔한 희망

김정범의 솔로 프로젝트 푸디토리움의 음악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흔히 팝 재즈를 언급하곤 하는데 이 말은 곧 지금의 장르 구분으로는 정의하기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식으로 정의하고 싶다. 정서와 풍경의 음악이라고 말이다. 푸디토리움은 김정범 자신이건 타인이건 누군가가 겪은 사건과 살았던 시간, 보았던 풍경을 전사 혹은 인화 하려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김정범은 사건과 풍경을 음악으로 바꾸는 필터가 된다. 이번에 발매한 세 번째 정규 앨범 외에 “멋진 하루”를 비롯해 <아주 특별한 손님>, <나이트 크루징>, <어느날>, <허삼관>, <러브 토크>, <577 프로젝트> 등 영화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많이 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영화에 담긴 이야기, 풍경에 따라 푸디토리움의 음악은 재즈, 뉴에이지, 월드 뮤직, 팝, 일렉트로니카 등을 가로질렀다.

3번째 정규 앨범으로 발매한 이번 앨범도 그렇다. 이번 앨범에서 김정범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와 함께 쿼텟을 이루었다. 푸디토리움은 이런 편성으로 2013년 라이브 앨범 을 선보인 적이 있다. 공연 현장에서 DJ의 전자적 손길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어쿠스틱 중심의 서정적 질감은 이번 스튜디오 앨범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푸디토리움의 음악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감상자라면 이번 앨범이 10년전 라이브 앨범을 연장, 확장한 것으로, 클래식한 맛이 강할 것이라 기대할 것이다.

맞다. 피아노 쿼텟의 우아하고 정갈한 연주는 분명 클래식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푸디토리움에게 장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질감은 클래식적이지만 음악은 꼭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푸디토리움은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감상자가 다시 한번 정서적 여행을 떠나기를 요구한다. 앨범 타이틀이 “희망”인 것처럼 아직 이루지 못한 삶의 바람,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좋았던 날들에 대한 기억으로 이끌려 한다. 그렇다고 음악 자체가 희망이고 추억이 되려 하지는 않았다. 그 극적인 여정의 배경에 머무는 것에 만족하려 한 듯 매우 소박한 자세를 유지했다. 가벼이 볼을 스치는 봄바람처럼 두려워 말고 한번 여행을 떠나보라고 편안한 격려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각 곡들은 미니멀한 느낌이 강하다. 급작스러운 변화를 보이지도 않는다.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는 듯 하면서 서서히 변해 멜로디를 만들고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들려 한다. “초록 달을 품은 눈동자” 같은 곡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 곡에서 피아노와 현악기들의 어울림은 변하지 않는듯 하면서 변하는 시간의 흐름을 닮았다. 부드럽게 울렁이는 합주 위로 흐르는 솔로 연주는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솟아오른 것 같다. 멜로디가 먼저 있고 리듬, 화성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과정으로 곡이 씌었을 것 같다. 이 밖에 “지켜줄게”, “낡고 긴 금속 빛 터널”, “와주어서 고마워”의 정서적 울림도 같은 과정을 거친 것 같다.

한편 “눈꽃”과 “나의 마음이 당신에게”는 김정범의 피아노 솔로로 연주되었다. 이 솔로 곡에서 김정범은 약간의 장치로 왼손과 오른손 연주의 질감을 다르게 하는 등 신선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이야기와 풍경을 잘 전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스스로 돋보이려 한 장치는 아니다.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소박한 감사, 아름다운 겨울 풍경의 정서적 묘사가 우선 드러난다.

이번 앨범은 편성과 그로 인한 질감의 변화 외에는 이전 푸디토리움의 음악과 아주 큰 차이를 보인다 할 수 없다. 그러나 푸디토리움의 음악을 좋아하는 감상자들은 이런 새로운 반복을 원하지 않았을까? 오래된 앨범에서 우연히 발견한 옛 사진처럼 말이다.

댓글

푸디토리움이 전하는 잔잔한 희망 김정범의 솔로 프로젝트 푸디토리움의 음악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흔히 팝 재즈를 언급하곤 하는데 이 말은 곧 지금의 장르 구분으로는 정의하기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식으로 정의하고 싶다. 정서와 풍경의 음악이라고 말이다. 푸디토리움은 김정범 자신이건 타인이건 누군가가 겪은 사건과 살았던...Episode : Hope - 푸디토리움 (Stomp Music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