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곳을 꿈꾸게 하는 세련된 감각의 연주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의 영향을 받는다. 음악, 그 안의 재즈도 마찬가지다. 시간의 흐름 속에 많은 변화와 분화를 거쳐왔고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이 때 공간의 영향은 재즈가 생산되는 지역의 고유한 문화, 정신의 영향을 의미한다. 유럽과 미국의 재즈가 다르고, 유럽 내에서도 북유럽, 동유럽, 남유럽의 재즈가 다른 느낌을 주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은 어떨까? 상대적으로 주변 유럽 국가들에 비해 덜 알려진 영국의 재즈는 덜 알려졌다. 그래도 앞서 언급한 대로라면 그들이 강세인 포크, 록, 블루스 등의 영향이 깃든 재즈가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영국 재즈를 보면 의외로 영국 밖을 넘어선 이국적인 취향을 지닌 연주자나 음악이 득세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트럼펫 연주자이자 앨범 제작자인 매튜 할솔의 음악도 그렇다. 그는 재즈의 기본적인 어법에 충실하면서도 이국적인 요소를 음악에 종종 넣어왔다. 그가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고고 팽귄, 포르티코 쿼텟 등의 앨범을 제작해 유명해진 곤드와나 레이블의 이름이 고생대 대륙의 이름인 것도 그의 이국적인 취향을 엿보게 한다.
이런 이국적 취향은 지난 2020년에 발매된 <Salute To The Sun>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맨체스터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한 지역 연주자들과 함께 한 앨범에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자연적인 느낌이 강한 음악을 선보였다. 이것은 2022년까지 이어졌다. 8월에 EP <The Temple Within>를 발매하더니 다시 12월에 EP <Changing Earth>를 발매한 것. 모두 과 같은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총 네 곡으로 구성된 이번 EP는 언급했던 것처럼 이전 두 앨범의 기조를 따른다. 일종의 3부작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앞의 두 앨범을 꼭 먼저 들을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차이는 있다. 한층 더 평온한 느낌을 준다고 할까? 전반적인 연주의 흐름이 상하의 역동적인 변화보다는 물이 차분히 흐르는 것처럼 수평적인 진행의 느낌이 강하다. 속도감이 있는 “Yogic Flying”조차 긴박하지 않다. 간결한 코드 구성을 바탕으로 긴 호흡의 솔로가 평화로워 몽환적, 명상적인 상태로 감상자를 이끈다. 여기에 매디 허버트의 하프나 맷 클리프의 플루트가 그 정신적 여행을 낯선 자연 속 풍경으로 이끈다.
이국적이고 명상적이라 해서 음악적으로 민속 음악적 요소를 결합했다는 것은 아니다. 매튜 할솔이나 맷 클리프 등이 필치는 솔로는 전통적인 재즈의 어법에 매우 충실하다. 그런데 이들 솔로를 들으면 자연스레 존 콜트레인이나 파로아 샌더스의 아방가르드 재즈 시절 연주가 떠오른다. 모달 재즈를 기반으로 지면 위로 비상하려 했던 연주들 말이다. 따라서 이 앨범의 제목이나 소개에서 이국적 퓨전 재즈나 환경 음악 같은 것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60년대 후반 재즈에 담긴 사색적인 면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재즈를 생각하기 바란다. 그것도 평화롭고 멜로우한 분위기의 재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