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미쿠스의 음악 지도에 새로이 배치된 다양한 천둥의 신들
스테판 미쿠스는 음악으로 세계지도를 그리는 사람이다.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현지의 다양한 민속 악기를 수집하고 연주법을 익혀 새로운 음악을 만들곤 한다. 우리 악기 중에서는 징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그리고 싶은 세계 음악 지도는 현실과 다르다. 단순히 독일 출신 음악인이 세계 민속 악기로 연주한 세계 민속 음악 지도가 아닌 가상의 민속 음악 지도이다. 여러 나라의 민속 악기를 같이 연주하는 한편 원래의 어법과 다른 방식으로 연주해 어디선가 들어본 듯 실제로는 그 위치를 정확히 짚기 어려운 음악을 만든 것이다. 그의 음악이 재즈 안에서 소개되는 것은 악기와 연주의 자유로움 때문일 것이다.
이번 앨범도 가상의 지도에 속하는 음악을 담고 있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지리적인 위치가 보다 명확한 편이다. 일본(Raijin), 그루지아(Armazi) 남아메리카(Shango) 인도(Vajrapani) 중국(Leigong) 그리스(Zeus),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지역(Ihskur) 슬라브 문화권(Perun)의 전통적인 천둥 신(神)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음악은 지리적인 것과는 여전히 차이를 보인다. 그 지역의 악기로만 연주하지 않고 여러 문화권의 악기들을 자유로이 조합해 연주했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에서 사용된 악기들은 티베트, 인도, 버마, 보르네오, 시베리아, 일본, 남아메리카, 감비아, 나미비아, 스웨덴, 바바리아 등 기원에 있어서 각 곡들의 주제가 되는 천둥 신들보다 더 분포가 넓다.
또한 여러 악기들 가운데 티베트의 전통 관악기 “둔첸(Dun Chen)”을 중심에 두었다. 이 악기는 티베트 수도원의 의식에 사용되는 악기로 스테판 미쿠스는 네팔 카트만두의 보드나트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비 티베트인으로서는 최초로 연주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 다중 민속 악기 연주자가 악기와 그 전통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 만큼 감상자도 관련 지식을 지녔으면 감상이 보다 수월하고 깊을 것이다. 그러나 모르는 상태에서 새로운 문화를 익히는 차원에서 들어도 상관 없다. (나도 그런 경우다.) 음악 자체가 단순히 관광지의 배경 음악처럼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지식과 상관 없이 다양한 지역, 문화권의 천둥 신을 상상하면서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앨범에 담긴 각 곡들이 단순히 “우르릉~ 쾅쾅” 소리지르고 겁을 주는 신이 아니라 때로는 메마른 땅을 촉촉하게 하는 풍요의 신, 착한 자를 흥하게 하고 악한 자를 벌주는 심판의 신 등 보다 다양하고 입체적인 신의 모습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앨범을 듣는 것은 여러 지역의 토속적 신앙의 색채를 머금은 신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대한 인간의 경외감, 그 힘이 인간에게 좋게 작용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이해하는 것이 된다. 스테판 미쿠스가 가상의 민속 음악 지도를 그리려 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