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osphere – 송영주 (Blue Room 2022)

송영주식 미감이 돋보인 아름다운 음악

매 앨범마다 기대하게 만드는 연주자가 있다. 한 연주자의 새 앨범을 듣기 전부터 기대한다는 것은 그를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신뢰는 단순히 연주력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교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호응을 얻지 못하는 연주자와 그 앨범이 얼마나 많던가? 신뢰는 그보다 더 종합적인 차원에서 발생한다. 앨범마다 연주자만의 것이라 할 수 있는 매력을 유지하는 한편 새로운 요소를 적절히 선보일 때 발생한다. 이것이 앨범마다 반복될 때 감상자는 새 앨범을 이전처럼 만족을 얻으리라는 확신 속에 감상을 시작한다.

송영주도 감상자를 기대하게 만드는 연주자이다. 그녀는 2005년 첫 앨범 <Turning Point>를 시작으로 솔로, 트리오, 콤보 밴드 편성을 오가며 9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CCM을 연주한 시리즈 앨범, 크리스마스 앨범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다.) 이들 앨범을 통해 그녀는 서정미 넘치는 작곡, 여기에 서사적 생동감을 부여하는 솔로 연주로 꾸준히 감상자를 사로잡았다. 게다가 앨범의 성취도는 갈수록 높았다. 여기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녀가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보다 깊이를 지니게 되었으며 그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효율적으로 앨범에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2018년 솔로 라이브 앨범 <Late Fall>이후 4년만이자 새로운 자작곡을 연주한 것으로는 2014년 앨범 <Between>이후 8년만인 이번 10번째 앨범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의 새 앨범인 만큼 그 여백의 시간 사이에 새롭게 쌓이고 정제된 그녀의 내적 이야기가 다시 한번 “아! 이게 송영주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 깊이는 무엇보다 서정성을 통해 드러난다. 앨범에서 송영주의 오른 손은 마치 보컬 같다. 결이 고운 멜로디를 끊임 없이 생산한다. “Dancing Alone”이나 “Flower Fall”, “A Wish For Peace” 같은 느린 템포의 곡은 가사를 따로 만들어 2019년 앨범 <Tribute>에서 함께 했던 서니 킴 같은 보컬에게 노래하게 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테마가 참 아름답다.

그렇다고 그녀가 멜로디를 곱게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 있어 멜로디는 고민 끝에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 일종의 감각 같다. 그녀의 솔로 연주는 단순히 테마의 전개, 연결이 아니다. 종국에는 다시 테마로 돌아와 동일성을 유지하지만 다시 돌아오기까지 그녀는 테마가 그어 놓은 길을 기꺼이 벗어나곤 한다. 그럼에도 흐름의 일관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아름답고 노래하듯 유려하다. 나아가 그림처럼 제시된 곡을 영화 같은 서사를 지닌 곡으로 만든다.

한편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비센테 아처(베이스), 마커스 길모어(드럼)와 트리오를 이루고 여기에 필요에 따라 존 엘리스(색소폰)을 합류시켰다. 그 중 쿼텟 연주에서는 아무래도 한발 뒤로 물러서야 했는데 그 와중에도 그녀의 서정성은 돋보인다. 그녀의 코드 진행은 그 자체로 멜로디 같다. 앨범 타이틀 곡이 대표적이다. 키스 자렛의 <Sun Bear Concerts>에 담긴 유명한 도쿄 콘서트 앙코르 연주만큼이나 깊은 비감으로 감상자를 깊은 슬픔으로 이끄는 이 곡은 분명 테마 멜로디가 있지만 피아노의 왼손이 코드를 이어가며 만들어 낸 분위기(Atmosphere!)가 핵심이다. 멜로디는 그 속에서 부차적으로 자연스럽게 솟아오른 것이다.

“It Never Stops”나 “Circularity”에서 감각적으로 색소폰 사이를 오가는 연주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의 연주는 동료의 솔로를 촉진하고, 곡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것을 넘어 곡에 내재된 또 다른 가능성을 살짝 드러내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입체적인 사운드는 합주의 정교함을 넘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송영주의 미감(美感)이라고 할까?

연주와 합주를 넘어 음악이 주는 이번 앨범의 만족감은 감상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지난 몇 년간 축적된 송영주의 감성이 음악을 통해 발현된 결과이기도 하다. 송영주는 이번 앨범을 “A New Beginning”으로 시작했다. 그만큼 자신의 삶의 한 시기를 정리하고 담아냈다는 뜻이리라. 마지막 곡이 “Solitude”인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녀는 새로운 음악을 위해 다시 고독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앨범을 다 듣고 나면 그녀의 다음이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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