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deaux Concert – Keith Jarrett (ECM 2022)

와인 빛 서정으로 가득한 즉흥 솔로 콘서트

2016년 7월 키스 자렛은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솔로 콘서트를 했다. 다소 여유가 부족한 일정이었다. 그 가운데 7월 3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콘서트와 7월 16일 독일 뮌헨 콘서트는 각각 2020년과 2019년에 앨범으로 공개되었다. 두 공연 사이에 놓인 2주 동안에도 키스 자렛은 공연을 이어갔다. 프랑스 보르도, 오스트리아 비엔나, 이탈리아 로마에서 공연을 이어갔는데 그 가운데 7월 6일 그러니까 부다페스트 공연 3일 후에 가졌던 보르도 공연이 이번에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보르도는 키스 자렛에게 추억의 도시였다. 청춘 시절 프랑스에서 베이스 연주자 거스 네메스, 드럼 연주자 알도 로마노와 트리오를 이루어 활동할 때 보르도에서 공연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스탠더드 트리오를 이끌고 공연하기도 했다.) 2016년 7월 당시의 보르도는 그렇게 안락하지 않았다. 묵었던 호텔 방이나 음식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텔 옆에는 강이 있었다. 키스 자렛은 강가로 난 길을 산책하며 마음을 쉴 수 있었다.

그 산책 때문이었을까? 잠깐이었겠지만 걷는 동안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의 아름다움을 느꼈던 것일까? 어쩌면 공연이 “재즈와 와인 페스티벌” 프로그램의 하나로 열렸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아무튼 보르도 콘서트는 연주하는 그 순간에 전 존재를 투영해 만들어 낸 뛰어난 즉흥 연주 외에 서정미로 가득하다. 이미 공개된 부다페스트와 뮌헨 공연에서도 곳곳에서 서정미를 드러냈지만 보르도 공연은 서정의 농도가 더 깊다.

공연은 부다페스트와 뮌헨 공연처럼 왼손과 오른 손이 분리된 자아처럼 자유로이 흩어지는 불협의 연주로 시작된다. 그래서 이미 공개된 두 앨범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두 손은 가로막고 있던 벽을 부순 듯 탐색의 과정을 마치고 조화의 순간을 맞는다. 그리고 “Part III”부터 서정미를 발산한다. 그런데 앞의 두 연주가 너무나도 강렬했기 때문일까? 그 자체로도 서정적이지만 앞의 연주와의 강한 대조로 인해 더욱 서정미가 진하게 느껴진다.

“Part III” 이후에는 서정적 연주의 연속이다. 중간중간 블루스에 충실한 흥겨운 “Part VIII“, 중세의 춤곡을 연상시키는 “Part X”, 첫 두 연주처럼 긴장으로 채워진 “Part IV“, “Part V” 같은 연주가 있지만 결국엔 키스 자렛의 서정에 부드럽게 흡수되어 풀어진다. 특히 연못에 물방울이 떨어져 생긴 동그라미처럼 단순한 동기가 서서히 변화하는 “Part VII”이나 감히 남쪽의 뜨거운 태양을 머금은 포도로 만든 와인 같다고 말하고 싶은 “Part XI”는 바로 그 순간에 나타난 것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서정적이다.

아쉬움도 있다. 부족하다거나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앙코르 곡을 실을 여유도 없이 13개로 나뉜 연주는 음악적인 측면, 정서적인 측면 모두에서 훌륭하다. 아쉬운 점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부분이 모여 만든 전체가 매혹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몇몇 연주에서는 멈추지 않고 조금 더 연주를 발전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특히 “Part XI”같은 연주는 테마라 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과거 쾰른 콘서트처럼 조금 더 확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든다. 또한 “Part XII”처럼 갑자기 멈추었다는 느낌이 강한 연주도 조금 더 힘을 내어 연주를 이어갔다면 좋았겠다는 갈증을 불러일으킨다.

깊은 서정으로 인해 이 앨범은 적어도 최근 10년 사이에 발매된 솔로 콘서트 앨범 가운데 가장 듣기 편하지 않나 싶다. 굳이 앞선 앨범들과 비교한다면 제목 있는 곡들로 채워졌던-그럼에도 간단한 사전 스케치나, 완전 즉흥 연주로 이루어진- <Facing You>(1971), <Dark Intervals>(1988)에 가까운 앨범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제는 이마저도 배부른 자의 불평에 지나지 않는다. 2018년 5월 그는 두 번에 걸친 뇌졸중 증상으로 왼손은 마비되고 오른 손은 힘을 잃었다. 현재는 재활하면서 오른 손으로 피아노 연습을 한다지만 그 스스로 끝났다고 했던 연주자로서의 삶을 다시 이어가기에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가능하다고 해도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새로이 발매되는 앨범이 있다는 것만으로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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