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밴드로 표현한 인류 발전에 대한 낙관적인 시선
아직도 끝나지 않았지만 코로나 19 펜데믹은 단순한 감염병 차원을 넘어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세계에 끼쳤다. 음악 쪽에서도 그 영향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여러 앨범들이 발매되었다. 베이스 연주자 김영후가 빅 밴드를 결성해 만든 이번 앨범도 그 중 하나다.
김영후는 이 앨범을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인해 세계가 직면한 위기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인류의 노력을 보고 그 원동력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그 의문에 대해 스스로 내린 답은 인간의 선한 의지와 그 순환이었다. 선한 의지란 아마도 인류가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마음을 합쳐 보다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현재에 이르렀고 다시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긍정적인 역사관, 세계관이라 하겠다.
이 선한 의지의 순환을 김영후는 인간의 지적 능력, 협동, 개척 정신, 탐구 정신, 새로움에 대한 열린 자세 등으로 나누어 각각의 곡을 썼다. 그런데 그 곡들이 자못 표현적이다. 명확한 주제만큼 동선 또한 확실해 듣는 순간 제목을 그대로 이해하게 된다. 조곡의 첫 곡인 “Cognitive Revolution” 에서는 관악기들의 개별적 움직임의 복잡한 교차에서 복잡한 뇌신경망을, “Network Song”에서는 섹션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인류의 연결을, “Uncharted Territory”에서는 긴장 어린 분위기와 자유로운 악기들의 솔로가 미지의 영토에 대한 용기 있는 탐험을, “New Discoveries”에서는 앞선 곡의 혼돈을 차분히 정리하는 듯한 분위기에서 새로운 발견이 주는 성취를, 그리고 “Florescence”에서는 솔로 연주와 전체 앙상블의 조화에서 앞의 과정이 가져다 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시간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감상자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곡을 듣고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한편 이 앨범에 담긴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김영후의 세계관은 “범인류적 유산”과 별도로 연주된 “Dancing on the Floor”까지 포함시킬 때 완성되지 않나 싶다. 2016년 퀸텟 편성의 앨범 에서 선보였던 곡을 새로이 빅 밴드 편성으로 편곡해 연주한 이 곡은 밴드 전체의 하나됨과 솔로 연주의 이어짐 모두에서 축제적인 분위기를 띈다. 그래서 시간과 역사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낙관적 전망 속에 즐기는 사람들,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국 모든 것은 좋은 쪽으로 흘러 가리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흥겨운 몸짓을 떠올린다.
주어진 주제를 향해 나아갈 길을 리더가 명확히 제시한 만큼 빅 밴드 멤버들의 연주는 모호함이 없다. 펼쳐질 때와 모일 때, 들어가야할 때와 드러나야 할 때의 호흡이 무척이나 농밀하다. 작곡가, 리더의 존재감과는 별도로 그 자체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게다가 세련미와 현대적인 질감이 매력적이다. 감히 말한다면 한국 재즈의 유산이 얻은 성과라 할 수 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