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4일에 열린 64회 그래미 어워드는 최근 너무 보수적이고 편향적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씻어버릴 만큼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 중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존 바티스트의 앨범 <We Are>가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것은 그 정점이었다. 이 결과는 2008년 허비 행콕이 조니 미첼 헌정 앨범인 <River: The Joni Letters>로 60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이후 14년만의 흑인 아티스트의 수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번 시상식에서 존 바티스트는 11개의 상에 후보로 올라 “올해의 앨범”상 외에 앨범 수록 곡 “Freedom”으로 “베스트 뮤직 비디오상”을, 또 다른 수록 곡 “Cry”로 “베스트 아메리칸 루츠 퍼포먼스상”과 “베스트 아메리칸 루츠 송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소울(Soul)>의 사운드트랙으로 “베스트 스코어 사운드트랙 포 비주얼 미디어” 상을 수상했다.
글쎄. 다른 것은 몰라도 <We Are>가 “올해의 앨범”에 선정되리라는 것을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 앨범이 보통의 팝 앨범들처럼 대단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빌보드 앨범차트 86위, 빌보드 R&B, 힙합 앨범차트 47위, 빌보드 컨템포러리 재즈 앨범 차트 9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앨범이 2021년을 빛낸 앨범으로 선정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 상업적인 면과 상관 없는 음악적 우수함 때문일 것이다. 실제 이 앨범은 일반 대중의 시야 밖에 위치한 우수한 앨범이 많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리고 팝 음악의 주변 장르인 재즈를 중심으로 한 아티스트의 음악이었기에 주목을 덜 받았을 뿐이지 다른 팝 앨범들만큼의 노출을 받았다면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들 수 있는 매력을 지녔다.
특히 존 바티스트의 주력 장르라 할 수 있는 재즈 외에 R&B, 소울, 힙합 등 여러 인기 팝 장르를 매혹적으로 버무린 것은 이 앨범을 한번 들으면 쉽게 놓지 못하게 한다. 앨범의 첫 곡 “I Need You”를 들어보자. 존 바티스트가 노래와 피아노 연주 외에 알토 색소폰까지 연주한 이 곡은 많은 사람들을 춤추게 했던 1930년대의 스윙 댄스에 지금의 힙합이 공존한다. 12마디 블루스 형식을 지닌 복고적인 재즈 같으면서도 재즈와 상관 없는 보통의 팝 음악 애호가들까지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한다.
“Tell The Truth”는 어떠한가? 잭슨 5, 빌 위더스, 마빈 게이 등과 함께 했던 노장으로 존 바티스트와도 여러 공연을 함께 하기도 했던 드럼 연주자 제임스 갯슨이 참여한 이 곡은 날 것 같은 드럼 연주, 작렬하는 브라스 섹션, 잔뜩 힘을 준 존 바티스트의 보컬 등에서 60,70년대를 풍미했던 소울, 펑크의 제왕 제임스 브라운과 그 음악에 맞추어 몰아(沒我)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열정적으로 엉덩이를 흔들던 시대의 청중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의 우리 또한 몸을 절로 움직이게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흥겨움은 60년대 소울 재즈에서 영감을 얻은 90년대의 애시드 재즈와 힙합을 활용한 듯 한 “Freedom”에서도 이어진다.
이 외에 존 바티스트 혼자 기타, 베이스, 드럼, 8비트 신스를 연주해 완성한 원맨밴드 곡 “Whachutalkinbout”에서는 힙합, 록, 80년대 신스 팝 등이 마치 각각 개별 악기처럼 모여 소리를 내는 것 같다. 그리고 “Cry”에서는 블루스, 서든 록이, “Show Me The Way”에서는 70,80년대 AOR 혹은 펑크(Funk) 그룹의 사운드가 지금의 감수성과 만났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이번 앨범에는 매우 다양한 음악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 단순한 장르의 결합을 넘어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으로 나아가는 융합(融合)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재즈 피아노 연주자로 시작한 존 바티스트가 이번 앨범에서 여러 음악 스타일을 가로지르게 된 것은 단지 자신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폭넓음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이 앨범은 여러 스타일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그저 그런 앨범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존 바티스트는 이번 앨범에서 현재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담으려 했다. 이 앨범은 2019년 9월 당시 음악 감독이자 밴드 마스터로 참여하고 있던 TV 프로그램 “스티븐 콜베어 레이트 쇼(The Late Show with Stephen Colbert)”를 준비하던 중 대기실에서 영감을 얻어 그 자리에서 6일에 걸쳐 데모 음원을 만들어 앨범의 방향을 설정하고 2020년 중반까지 제작에 공을 들인 끝에 완성되었다. 그런데 이 무렵 미국은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얼어 있었고 그 와중에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것에 대한 항의 운동 “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도 소중하다)”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그에게 흑인 인권 나아가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하게 했고 그것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음악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그는 정치적인 발언을 직접적으로 담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중심에 자신의 자전적인 면을 부각시켰다. 그로 인해 앨범은 존 바티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서사를 지니게 되었다.
앨범 타이틀 곡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앨범의 시작부터 함께 한 싱어송라이터 오텀 로우와 함께 만든 이 곡을 위해 그는 자신은 물론 그의 가족이 다녔던 뉴올리언스의 흑인 학교인 세인트 어거스틴 고교의 마칭 밴드와 가스펠 합창단 그리고 자신의 다섯 살과 열한 살의 두 조카 등을 참여시켰다. 그 결과 “우리는 귀한 존재, 선택 받은 존재”라는 노래는 추상적인 인권 노래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흑인의 인권 노래가 되었다.
존 바티스트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3부작 형태로 그려냈다는 “Boy Hood”, “Movement 11’”, “Adulthood”는 과거와 현재를 자신을 중심으로 서사적으로 아우르려는 그의 의도를 보다 명확히 드러낸다. 그 가운데 어린시절을 추억하는듯 아련한 가사와 멜로디를 지닌 “BOY HOOD”에서는 같은 루이지애나 출신으로 뉴올리언스 재즈의 세례를 함께 받은 트롬본 쇼티와 PJ 모턴을 불러 함께 했다. 그리고 가족과 사회적 관계를 주제로 한 “Adulthood”에서는 역시 뉴올리언스에서 만들어져 재즈, 힙합, 펑크를 아우르는 활동을 하고 있는 Hot 8 Brass Band의 화사한 연주로 삶에 대한 감사와 긍정의 분위기를 강조했다. 소년기와 성년기 사이에 놓인 “Movement 11’”는 두 곡을 연결하는 곡으로 17세에 입학했던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 시절을 반영해 재즈와 클래식이 어우러진 존 바티스트의 피아노 연주로 이루어졌다.
한편 “Freedom”의 전주에 해당하는 곡으로, “자유란 남녀와 상관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생각하고 실행하거나 실행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라는 리듬앤블루스 보컬 마비스 스테이플스의 육성을 담은 “Mavis”는 존 바티스트가 그녀와 사적으로 전화 통화를 하다가 들었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처럼 사회에 대한 존 바티스트의 목소리는 자신의 경험과 실제적인 관계를 담아내어 소박한 느낌을 주면서도 정서적 울림은 더욱 강한 결과를 낳았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은 2021년 3월 발매 후 몇 곡을 더해 10월에 발매된 디럭스 버전이다. 미 발표 곡 “Work It Out”과 “Freedom”, “Tell The Truth”, “We Are”의 리믹스 곡, “Sing”과 “Adulthood”의 또 다른 버전이 담겨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보통 디럭스 버전은 정규 버전 후반부에 곡을 추가하는 형태로 구성되곤 하는데 이 앨범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정규 버전이 “We Are”로 시작된 것과 다르게 이 디럭스 버전은 “I Need You”로 시작해 다르게 흐른다.
존 바티스트는 이 앨범을 소설이나 영화라 부르고 싶다고 했다.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한번에 이어서 들으면 서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디럭스 버전의 새로운 구성은 그가 단지 보너스 곡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곡을 포함해 새로운 서사를 들려주고 싶어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정규 버전의 순서대로 들어보고 비교를 해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다.
여러 음악 스타일이 잘 융합되어 있기에 이 앨범의 음악 장르를 정확히 무엇이라 규정하기 힘들다. 그저 존 바티스트의 2021년도 음악이라 하면 될까? 명확한 것은 그렇기에 이 앨범이 상업적인 성과, 음악적 깊이와 상관 없이 대중적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재즈를 듣다가 이 앨범을 듣게 되었건 힙합, R&B, 소울 등을 듣다가 이 앨범을 만나게 되었건, 아니 그저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궁금해 찾게 되었건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라도 한번 들으면 아! 정말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될 만하다고, 그냥 좋다고,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혼잣말을 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