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삶을 살펴보게 된다. 새로운 시도보다는 지난 시절 시도했던 것을 이어가고 완성해야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중년은 얻으려 하는 것보다 갖고 있는 것을 지켜야 하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삶에 보수적이 되어가는 시기이다. 그러니 불안한 미래로 내 현재가 나아가고 있다는 불안과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내 삶이 흘러가고 있다는 허망함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자신의 현재를 정리해보게 되는데 이 때 중년은 깊은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철학자가 된다.
기타 연주자 찰리 정도 어느 덧 자신의 삶을 둘러보는 시간을 맞이 했던 모양이다. 이번 앨범에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고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과 의문을 던진다. 사실 지난 2020년에 발매했던 앨범 <Sein’s Blues>에서도 그는 인생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드러냈었다. 그런데 이 때는 자신을 믿고 삶아가는 가족에 대한 사랑, 책임감 등 개인적인 면이 강했다. 그래서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한 연주 또한 매우 목가적이었다.
이번 앨범에서는 관심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블루지한 톤의 일렉트릭 기타로 몽상적 분위기를 연출한 타이틀 곡을 시작으로 그는 인류란 존재에 대한 의문(Sapience), 전쟁의 위협(Blue Alert)과 공포(No Exit), 지금과 확연히 다를 것 같은 미래의 세계(The Way To Mars)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일렉트릭 기타로 표현했다. 개인에서 세계로 시선을 확장한 것인데 세계 평화가 곧 나와 가족의 평화이니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기타 연주자에게는 철학적 사고의 확장 이전에 안정적 삶에 대한 생각이 더 정교하고 복잡해 진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기타 연주자는 여타 미래학자들처럼 다가오지 않은 시간을 불안하고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고 있지 않다. 아니 불안과 부정의 해소, 위안에 더 집중하려 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예를 들어 두 국가, 두 세력이 극단적으로 대치하고 결국 서로 막대한 피해를 보는 전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주제로 한 두 곡 “Blue Alert”와 “No Exit”는 분위기 자체는 어둡지만 많은 사람이 피 흘리는 무자비한 전쟁을 상상하게 하지 않는다. 보통 이런 경우 거친 톤으로 분출하는 듯한 연주를 상상하게 되는데 찰리 정은 절제된 톤으로 비극적 상황을 비교적 부드럽게 그려냈다. 그래서 “No Exit”의 절규하는 듯한 연주조차 희생자의 외침보다 이를 위로하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둘러보게 되는 순간은 보통 현재가 불만스럽고 미래가 불안할 때이다. 그럴 때 우리는 좋았던 지난 날을 떠올리며 이를 이겨보려 한다. 기타 연주자에게 삶의 깨달음을 주었다는 사람을 주제로 한 “Marco”와 네팔 포카라에 있는 음악 카페에서의 연주했던 편안한 추억을 담은 “Kailash”처럼 네팔에서의 기분 좋은 추억을 담은 곡이 삶의 방향에 의문을 던지는 이 앨범에 포함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나온 기분 좋은 기억을 바탕으로 기타 연주자는 현재를 위로하고 내일을 희망으로 바라보게 한다.
행복한 기억이 많은 찰리 정의 과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현재를 비교적 안정적이라 생각하고있기 때문일까? 이를 바탕으로 한 기타 연주가가 생각하는 우리 삶의 방향은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 가까운 미래로 다가온 화성 여행을 그린 “The Way To Mars”를 들어보자. 이 곡은 공상과학 영화의 디스토피아적 우주관이 아니라 화성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희망을 담고 있다. (고요한 밤하늘을 담은 앨범 표지는 이런 기대에 대한 시각적 표현이 아닐까?) 또한 인간으로서 인류의 진화 과정에 대한 숙고에서 나아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비교를 담아 낸 “Sapience”의 평화로운 분위기도 행복한 여정에 대한 상상을 꿈꾸게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고민을 하건 삶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삶이 아무리 불안하고 위태롭다고 해도 그 여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목적지가 아닌 삶이라는 과정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앨범의 진정한 타이틀 곡은 “Journey”라 생각한다. 이 곡의 목가적인 분위기는 “Where Are We Going”에 대한 기타 연주자 본인의 답변이라 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