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랑 (Walter Lang, 1961.05.13 ~ 2021.12.16)

피아노의 서정시인 세상을 떠나다.

2021년 12월 16일 피아노 연주자 발터 랑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만 60세. 오랜 시간 앓고 있던 암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이었다.

어쩌면 상당 수의 재즈 감상자들에게 이 피아노 연주자는 다소 낯설 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떠난 것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렇게 추모 기사가 나올 정도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나 또한 이런 의견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소수의 재즈 감상자, 특히 유럽 연주자들의 재즈에 관심을 둔 사람들에게서만 관심을 받았던 연주자였다. 아하! 그 앨범! 할 정도로 대중적 호응을 크게 얻었던 앨범도 없었고 감탄할 정도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인 적도 없다. 그럼에도 실력에 비해 저평가된 피아노 연주자였다. 그는 아무리 어지러운 테마일 지라도 낭만적으로 연주할 수 있었던 연주자였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서정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이었다고 할까?

그는 1961년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바덴 뷔르템베르크의 슈베비슈 그뮌트 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아코데온과 피아노를 연주했던 만큼 음악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그가 재즈 연주자의 삶을 꿈꾸게 된 것은 키스 자렛의 연주를 듣고 난 후였다. 이에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 보스톤의 버클리 음대에서 재즈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다. 그러나 높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네덜란드로 옮겨 암스테르담 예술 대학에서 학업을 마쳤다.

이후 1988년 후반 미국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던 드럼 연주자 릭 홀랜더의 쿼텟 멤버로 전문 연주자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쿼텟에서 그는 포스트 밥 계열의 음악을 지향했던 리더의 의지에 따라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움직임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간간히 시성으로 반짝이는 솔로를 선보이곤 했다.

그 또한 서정적 연주에 자신이 강점이 있음을 알았던 것 같다. 1999년 10년 이상의 인연을 맺은 릭 홀랜더에 베이스 연주자 니콜라스 타이스를 불러 발터 랑 트리오를 결성한 후 처음 녹음한 <Plays Charlie Chaplin>부터 그의 서정성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와 트리오의 연주는 테마의 고유한 선율을 우아하고 부드럽게 다듬고 유지하고 이를 기반으로 시냇물처럼 편안하게 흘러가는 솔로 연주를 펼쳤다. 그와 함께 연주의 즐거움, 함께 하는 짜릿함, 재즈 본연의 스윙감을 잃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키스 자렛과 그의 스탠더드 트리오의 영향을 흡수하고 자신만의 감수성을 넣어 발전시킨 결과물이었다. 이후 그의 트리오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유럽의 서정미와 재즈의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연주를 이어갔다. 베이스와 드럼 연주자 모두가 교체된 후에도 트리오의 음악은 그대로였다.

트리오의 연주는 일본에서 유난히 높은 지지를 얻었다. 일본 레이블에서 트리오의 앨범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키스 자렛, 칙 코리아, 팻 메시니, 스티브 쿤, 칼라 블레이, 리치 바이락 등 ECM 레이블과 관련 있는 연주자의 곡들을 연주한 앨범 <The Sound Of A Rainbow>와 독일의 고성이 아름다운 도시로의 여행을 자극하는 연주를 담은 앨범 <Romantische Strasse>는 일본 재즈 전문지 스윙 저널로부터 최우수 녹음 상과 골든 디스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발터 랑 또한 2003년도 앨범 <Lotus Blossom>에서 일본의 동요를 우아하고 산뜻하게 편곡해 연주하고 일본인 보컬 아야 무로다테에게 노래하게 하는 등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발터 랑 트리오는 발터 랑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외에도 그는 매우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2005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트리오 엘프(ELF>가 대표적이었다. 베이스 연주자 스벤 팔러, 드럼 연주자 게르윈 아이젠하워와 함께 한 이 트리오는 기존 발터 랑 트리오의 편안함과는 다른 보다 현대적이고 진보적인 연주를 펼쳤다. 어쿠스틱 사운드와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어우러진 트리오의 음악은 2000년대 초반 세계를 휩쓴 에스뵤른 스벤슨 트리오의 새로운 연주를 독자적으로 해석 변용한 것이었다. 또한 강박적인 리듬이 지배하는 사운드 속에서도 발터 랑의 서정성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이 외에 월드 퍼쿠션 앙상블과 협연하거나 트리오를 쿼텟, 퀸텟 등으로 확장시켜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색소폰 연주자 리 코니츠와 함께 한 <Ashiya>(2007), <Someone To Watch Over Me>(2011)은 트리오와는 또 다른 발터 랑의 시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많은 보컬들과 함께 하기도 했다. 제니 에반스, 루스 영, 리사 발란트, 필립 바이스 등의 보컬을 비롯해 돈 멘자, 제이슨 자이저 등 여러 연주자들과 함께 하기도 했다. 그 중에는 우리의 보컬 정금화-그녀 또한 고인이 되었다-와도 함께 하기도 했다. 정금화가 소속되었던 레이디스 토크의 앨범 <Ladies Talk>(2004)의 수록 곡 “꿈꾸는 백마강”을 편곡한 것을 계기로 2005년 정금화의 솔로 앨범 <Hellos & Goodbyes>에 트리오를 이끌고 참여했는데. 보컬을 지원하면서도 곡을 신선하게 만드는 신선한 솔로 연주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정금화의 앨범은 발터 랑을 국내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나 또한 이를 통해 이 독일 피아노 연주자의 앨범을 찾아 듣게 되었다. 그 때만 해도 그는 40대의 젊은 연주자였다. 음악은 더욱 젊게 느껴졌다. 그로부터 약 17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요즈음은 60세도 그리 나이가 많다고 느껴지지 않는 시대지만 발터 랑의 연주는 60세라는 나이를 생각할 수 없게 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사망이 아쉽다. 그 사이 그의 아름다운 연주가 보다 폭 넓게 소개되지 못했다는 것 또한 아쉽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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