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종종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하곤 한다. 그 곳은 그저 낯선 곳이 아니라 우리가 가보고 싶어했던 곳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어떨까? 이 음악은 물론 우리를 크리스마스로 데려간다. 춥지만 흰 눈이 내리는 날, 사랑 가득하고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가족과 연인이 선물을 주고 받는 행복한 크리스마스에 우리를 위치시킨다. 이 행복한 장면에 대한 상상 때문에 캐롤을 듣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때 생각하는 캐롤은 아마도 재즈의 맛이 강할 것이다. 브라스 섹션이 풍성하게 울리고 윤기 있는 목소리의 보컬이 그 위로 노래하는 스윙 재즈에 가까울 것이다.
나 또한 매년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이 흥겨운 재즈 캐롤을 듣곤 했다. 그런데 너무 비슷한 스타일의 캐롤만 들으면 가끔은 싫증이 난다. 더구나 음악에 담긴 이상적 크리스마스와 현실 속 내 크리스마스가 너무나도 다르기에 위화감이 들기도 한다.
만약 당신도 보통의 재즈 캐롤을 듣다가 한번이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면 여기 노라 존스의 크리스마스 앨범을 들어보기 바란다. 그녀의 크리스마스 노래는 재즈 캐롤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다.
2002년 첫 앨범 <Come Away With Me>부터 노라 존스는 지금까지 피곤한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주는 음악을 선보여왔다. 앨범마다 재즈, 포크, 컨트리, 팝 음악 등을 자유로이 조합하며 변화를 주었던 그녀의 음악이 꾸준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 공감과 위로의 정서 때문이었다. 이것이 이번 크리스마스 앨범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크리스마스를 위해 준비한 13 곡 중 첫 곡 “Christmas Calling (Jolly Jones)”를 비롯한 6곡이 그녀가 쓴 곡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이들 곡은 가사를 제외 한다면 기존 노라 존스의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괜히 밝은 치장을 더 하지 않았다. 지난 해 발매한 앨범 <Pick Me Up Off the Floor>이나 2016년도 앨범 <Day Breaks>과 함께 들어도 분위기의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특히 블루지한 분위기로 당신이 힘들고 지친 상황에 있더라도 혼자가 아니니 슬퍼 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You’re Not Alone”은 그녀만이 생각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곡이 아닌가 싶다. “A Holiday With You”도 그렇다. 3분이 채 되지 않는 이 곡은 참 담담하고 소박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소녀 같은 감성이 크리스마스 트리,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의 선물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한 크리스마스임을 깨닫게 해준다. 또한 마리카 휴즈의 첼로가 노라 존스의 피아노와 함께 한 “It’s Only Christmas Once A Year”는 경건하고 평화로운 크리스마스를 그리게 한다.
이러한 질감의 연속은 이전 두 앨범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던 레온 미셀이 역할을 확장해 제작까지 담당하고 여기에 토니 쉐어(베이스) 브라이언 블레이드(드럼), 데이브 가이(트럼펫) 등이 다시 한번 그녀와 호흡을 맞추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노라 존스의 곡이 아닌 나머지 7곡도 자작곡만큼이나 그녀다운 맛을 낸다. 역시 화사한 흥겨움보다는 차분함, 특별하지 않은 대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페달 스틸 기타의 나른한 소리가 눈 내리는 날 썰매와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이른 아침 흰 눈 덮인 세상을 떠올리게 하는 “Winter Wonderland”와 느린 템포에 노라 존스가 이야기하는 듯한 노래가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하는 “Christmas Time Is Here”가 그렇다. 여기에 쓸쓸한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Blue Christmas”를 노래한 것은 그녀다운 선택이었다 할 수 있다.
차분하고 소박하다고 해서 밝고 경쾌한 곡이 없지는 않다. ‘징글벨’의 테마를 차용한 브라스 섹션이 빛나는 “Christmas Don’t Be Late”나 피아노 트리오 편성으로 간결하게 연주하고 노래한 “White Christmas”, 블루스적 리듬감이 돋보이는 “Run Run Rudolph”이 그 곡들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녀는 화사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과장하지 않았다. 조도를 살짝 낮추어 왁자지껄한 파티보다는 여유가 있어 기분 좋은 저녁 모임 정도의 분위기를 유지했다.
이처럼 노라 존스의 이번 크리스마스 앨범은 귀를 자극하지 않는 편안하고 담백한 사운드와 노래로 화려하지 않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의 소박한 크리스마스를 그리게 한다. 그녀가 이런 크리스마스 앨범을 만들게 된 것은 그녀의 음악 성향 외에 지난 해부터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 코로나 19 펜데믹 상황이 영향을 끼쳤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에 그녀는 펜데믹 상황으로 인해 록다운(Lockdown) 상황에서 제임스 브라운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크리스마스 앨범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올 1월 크리스마스 앨범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캐롤 앨범 특유의 화려함보다는 편안함, 안락함이 더 강조되지 않았나 싶다.
보통 다른 재즈 연주자나 보컬들의 크리스마스 앨범은 명절을 한상차림 같은 성격을 띄었다. 그래서 특별한 앨범으로 따로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노라 존스의 이번 크리스마스 앨범은 평소와 같은 상차림에 케이크 하나를 놀려 놓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정규 앨범의 하나로 이 앨범을 바라보고 싶다.
무슨 차이가 있냐고? 아무 때나 들어도 좋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10월 3일에 쓰고 있다. 아직 더위가 덜 가신 청명한 하늘 아래 듣는 그녀의 크리스마스 음악은 전혀 철 이른 느낌을 주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이후에 듣는다 해도 청 지난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다. 이 앨범이 매우 이른 10월에 발매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인 노라 존스의 앨범으로서도 충분한 공감을 얻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이 앨범은 매번 들을 때마다 이전 그녀의 앨범들처럼 일상의 지친 우리의 마음을 살포시 감싸는 위안을 줄 것이다. 바쁜 일상을 따라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나마 나와 주변을 천천히 바라보는 시간을 줄 것이다. 이 때 크리스마스는 매해 12월 25일이 아니라 휴식과 여유를 의미한다.
때 이른 인사지만 이번 크리스마스 모두 편안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보내시기를 바란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