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포터의 삶과 사랑에 대한 낙관론을 정리한 앨범
그레고리 포터는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재즈 보컬이다. 그의 인기는 재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블루스, 가스펠, 소울, R&B, 팝, 일렉트로니카 등을 아우르는 음악 취향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의 음악에 담긴 재즈의 함량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굳이 따지면 재즈의 함량이 주를 차지한다.) 그리고 단지 폭 넓은 음악 취향이 그의 인기를 견인했다고 보아서도 안 된다.
그의 인기는 결국 마음을 담은 그의 노래에 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나온 듯한 묵직한 저음으로 그는 마음 통하는 친구, 따스한 삼촌처럼 노래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피로, 슬픔을 잘 알고 이해하고 이를 편안한 노래로 위로한다. 나아가 아무리 힘들어도 버티면 좋은 일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우리가 음악을 듣는 이유가 일상에서 한발 뒤로 물러서서 푸근한 여유를 갖기 위해서라면 그레고리 포터의 노래는 매우 이상적이다.
삶의 경험에서 만들어진 진실한 희망 노래
그레고리 포터가 다른 누구보다 우리의 마음에 와 닿는 노래를 하게 된 데에는 음악적 취향, 목소리 이전에 그의 삶 자체가 영향을 주었다. 1971년 11월 4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세크라멘토에서 태어나 베이커즈필드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음악을 좋아하던 어머니와 함께 들었던 냇 킹 콜의 노래가 이를 대신했다.
어린 시절 그의 꿈은 가수가 아니었다. 미식 축구선수였다. 실력도 뛰어나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샌디에고 대학의 미식축구 선수로 선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꿈을 접어야 했다. 이후 그는 방황 끝에 노래하는 것이 그에게 제일 잘 어울린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노래를 시작했다.
이후 그는 긴 무명 시절을 견뎌야 했다. 만 39세가 되어서야 첫 앨범을 녹음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20여 년을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오늘을 버티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 어찌 쉬운 일인가? 그렇기에 그의 노래가 공감과 위로 그리고 희망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가 자작곡을 중심으로 노래하는 것도 지난했던 삶에서 얻은 느낌을 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고생 끝에 찾아온 낙(樂)은 기대 이상으로 달콤했다. 2010년 첫 앨범 <Water>를 시작으로 그는 지난 해에 발표했던 <All Rise>까지 6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두 장의 라이브 앨범-영상포함-을 발표했다. 이들 앨범은 모두 평단과 대중 모두의 호평을 받으며 성공했다.
다른 음악인들도 그의 음악을 좋아했다. 일렉트로니카 DJ 들이 그의 곡을 리믹스하는가 하면 재즈뿐만 아니라 팝, 록의 유명 음악인들이 그를 초대하곤 했다.
음악 인생을 정리한 베스트 앨범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은 그레고리 포터가 지난 10여 년간 해온 다양하고 폭 넓은 활동을 정리하고 있다. 먼저 두 장으로 구성된 앨범 중 첫 장에는 <Water>(2010), <Be Good>(2012) <Liquid Spirit>(2013), <Take Me To The Alley>(2016) <Nat King Cole & Me>(2017), <All Rise>(2020)의 대표 곡을 엄선해 10곡을 선정했다. 으를 위해 현재 그가 소속된 블루 노트 레이블 이전 모테마 레이블에서 제작된 초기 두 장의 앨범에서도 곡을 선곡했다.
아울러 지난 2017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렸던 폴라 뮤직 프라이즈 시상식에서 노래한 스팅 원곡의 “It’s Probably Me”와 월트 디즈니 사의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메이크어위시(Make-A-Wish)재단을 후원 곡 “Love Runs Deep”, 그리고 올 봄에 발매되었던 모비의 앨범 <Reprise>에서 노래한 “Why Does My Heart Feel So Bad?”을 골랐다. 정말 그의 음악을 잘 정리하는 베스트 선곡이라 할만하다.
두 번째 장에는 첫 장 후반에 이어 그동안 그가 여러 음악인들의 앨범에 게스트로 참여했던 곡들을 정리했다. 모비의 앨범 <Reprise>에서 노래한 또 다른 곡 “Natural Blues”를 시작으로 제이미 컬럼, 다이안 리브스, 트레인티에 우스테르후이스(Trijntje Oosterhuis), 제프 골드 블럼 등의 재즈 보컬과 연주자들, 벤 롱클 술(Ben L’Oncle Soul), 팔로마 페이스, 로라 음불라, 레일라 해서웨이, 리즈 라이트 등 소울, R&B, 블루스 계열의 보컬, 르네 플레밍, 요요마 등 클래식의 유명 인사들과 함께 한 곡들이 선곡되었다. 심지어 버디 홀리와 함께 한 “Raining In My Heart”, 엘라 핏제랄드와 함께 한 “People Will Say We’re in Love”, 줄리 런던과 함께 한 “Fly Me To The Moon”, 냇 킹 콜과 함께 한 “Fly Me To The Moon” 등 리믹스를 통해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과 함께 한 곡도 있다.
이들 곡은 그만큼 그가 여러 연주자와 보컬 그리고 앨범 기획자들의 사랑을 받는 보컬이자 스타일과 상관 없이 최고의 노래를 할 수 있는 실력자임을 알아보게 한다.
아직 그의 베스트 앨범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이번 앨범은 지난 10여 년간 그레고리 포터가 해온 활동을 입체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잘 만들어진 베스트 앨범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그는 이 앨범을 베스트 앨범으로 부르기를 거부한다. 그는 “보통 베스트 앨범은 한 음악인의 끝에 위치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새롭고 젊다고 느낍니다. 아직 할 말이 더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이번 앨범의 타이틀 “Still Rising”은 정리보다는 과정을 의미한다. 아직도 그는 비상 중에, 성장 중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그는 이전 앨범에 이어 트로이 밀러와 작업한 “I Will”, “My Babe”, “Bad Girl Love”, “Dry Bones” 등의 신곡을 추가했다. 그리고 앨범 <Liquid Spirit>에 담긴 “No Love Dying”을 새롭게 노래해 실었다.
이 새로운 곡들은 가까이는 지난 해 발매된 <All Rise>앨범 의, 멀리는 그의 이전 앨범 전체를 연장하는 성격을 지닌다. 재즈, 소울, 블루스, 팝, 일렉트로니카를 아우르는 그의 폭 넓은 음악 소화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또한 이들 곡들은 그가 언급한 “할 말”이 무엇인지 확인하게 한다. 그것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엔 사랑 가득한 긍정적인 세상을 만들고 싶은 그의 바람이다. 삶과 사랑에 대한 낙관론은 이미 지난 세월 동안 그가 노래했던 주제들이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의 바람대로 좋은 세상이 온다면 그는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 때면 진정한 베스트 앨범을 기획하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오긴 할까?) 그 전까지는 어떻게 하면 노래로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려는 마음을 담은 그의 노래는 이어질 것이다. Still Ris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