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이지 못한 믿음에 대한 유쾌한 농담
만남은 늘 새로움을 낳는다. 새로움은 만난 사람들 각각의 개성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 개성들의 충돌과 어울림을 통해 만난 사람들 전체를 아우르는, 때로는 그들 전체의 합을 넘어서는 새로움이 만들어진다.
색소폰 연주자 신현필,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 베이스 연주자 서영도, 드럼 연주자 크리스티안 모란으로 구성된 그룹 신박 서클의 음악이 그렇다. 이들의 음악은 정말 참신하고 새롭다. 연주자들의 이름 첫 글자의 조합이라는 그룹 이름의 원래 의미를 뛰어넘을 정도로 신박하다.
이 새로움은 색소폰, 베이스, 드럼에 가야금이 가세했다는 것이 주는 색다른 구성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물론 네 악기의 합이 색다른 질감을 지닌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만남에 단순히 의존했다면 그룹의 음악은 그리 신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룹의 네 연주자는 차이가 아닌 같음에 대한 집중이 새로운 음악의 근원이 됨을 알았다.
첫 앨범 타이틀이 “Topology”, 그러니까 ‘위상수학’인 것이 이를 말한다. 이 학문이 연구하는 물체의 모양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성질처럼 멤버들은 첫 앨범에서 다른 음악적 배경이 아닌 음악 자체에 대한 사랑, 함께 연주하는 것의 즐거움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룹의 음악은 크로스오버니 하는 장르적 성격을 넘어서는 색다름과 재미를 주었다.
이번 두 번째 앨범은 스타일을 넘어, 공감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주는 신박함을 보다 잘 보여준다. 국악과 재즈가 함께 했으니 어떻게 음악을 만들까? 하는 1차적인 의문은 이제 없다. 이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한 만큼 네 연주자는 스타일에 대한 고민 없이 자유로이 어울리는 것에 집중했다. 그래서 긴장 가득한 육중한 베이스에 꽃 잎처럼 부드러운 가야금이 흐르고 이국적인 리듬 위로 색소폰이 평화로이 노래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 결과 이번 앨범은 색다르지만 결국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번 앨범의 주제는 음악과는 다른 흥미를 자극한다. 앨범 타이틀에서 눈치 챘겠지만 그룹은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듯 하지만 실제로는 근거 없고 증명할 수 없는,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맹신하는 과학 아닌 과학을 주제로 삼았다. 이에 구체적으로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켜고 자면 위험하다는 괴담부터 MSG 유해설, 평면지구설처럼 과학적으로 아닌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설(設), 별자리로 운세를 보고 혈액형으로 사람의 됨됨이를 구분하는 근거 빈약한 믿음 등을 소재로 9곡을 연주했다.
그렇다고 신박 서클이 연주가 주제와 소재에 맞추어 표현적인 차원에서 곡을 쓰고 연주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시종일관 흐르는 산뜻한 정서는 이 사라지지 않는 괴담과 그에 대한 이상한 믿음에 대해 비판만을 하려 한 것 같지도 않다. 분명 이치에 맞지 않는 설과 믿음이지만 그것이 주는 긍정적 효과라 할까? 아닌 걸 알지만 선풍기를 틀고 잘 땐 창문과 방문을 열고 자야 마음이 편한 것처럼 이 모순을 적당히 수용할 때 얻는 위안도 고려한 듯하다.
하긴 혼돈의 시대에는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이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것이 유사과학을 사라지지 않게 한다. 그러나 당신이 음악을 좋아한다면 어지러운 세상에 유사과학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음악이 삶에 위로가 될 것이니 말이다. 신박 서클의 이번 앨범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이상한 논리와 믿음을 심각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재지를 주는 이야기 거리 정도로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