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 연주자는 아직도 하고픈 이야기가 많다.
나이가 들면 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레 뒤를 향한다. 그 동안 쌓아 놓은 시간의 이야기를 들춰 그 안에 담긴 기쁨과 슬픔 등을 되새기며 지금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이를 좋지 않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회고와 정리가 주는 만족과 깨달음이 분명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세상의 이런저런 일들에 시큰둥해지지 않던가? 새로운 일이 드물다.
그러나 1939년생으로 80을 넘긴 드럼 연주자 앤드류 시릴은 아직도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이번 앨범의 간결하지만 매우 선명한 느낌의 타이틀 “The News”가 이를 말한다. 그리고 앨범에 담긴 음악 또한 타이틀처럼 새롭다. 신선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장 드럼 연주자가 꾸준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계속 새로운 만남을 이어왔기 때문이었다. 만날 때마다 왕년의 자신을 이야기하기 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라는 것이 하나의 작은 사건에서 발전되어 보다 크고 정교한 서사로 발전되는 것이라면 그는 새로운 만남이라는 사건, 만남의 상대와 나눈 대화로 새로운 자신의 현재를 만들고 이를 음악으로 표현해왔다.
이번 앨범의 경우 지난 2016년에 발표해 호평을 받았던 앨범 <The Declaration Of Musical Independence>의 속편이라 할만하다. 기타 연주자 빌 프리셀, 피아노 연주자 리처드 테이텔바움, 베이스 연주자 벤 스트릿과 함께 한 이 앨범은 네 연주자들의 개성이 자유로우면서도 매우 정밀하게 어우러진 음악을 담아냈다. 그 매혹적 어울림과 자유를 이번 앨범에서도 맛볼 수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2019년 녹음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던 리처드 테이텔바움을 대신해-결국 1년 후 세상을 떠났다- 데이빗 비렐레스가 새로이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전과 다른 음악적 질감을 띈다는 것이다. 멤버 구성으로만 본다면 25% 새로운 음악이라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색의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리더인 앤드류 시릴의 방임적인 방향 설정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자신이 전면에서 이번 앨범은 어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 연주자들의 음악적 특성들이 순간적인 비율로 섞이면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도록 했다는 것이다.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예가 빌 프리셀의 기타일 것이다. 이 자유 분방한 연주의 흐름 속에서도 그의 목가적이고 우주적인 맛은 그대로 드러난다. 그가 준비한 “Mountain”, “Baby”, “Go Happy Lucky” 같은 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데이빗 비렐레스가 쓴 “Incienso”에서도 앤드류 시릴과 활동했었던, AACM 출신의 아데고케 스티브 콜슨이 쓴 “Leavings East Of Java”에서도 그렇다. 마찬가지로 데이빗 비렐레스의 이국적 어두움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처럼 각 연주자들의 음악적 특성을 존중했기에 멤버의 변화는 그대로 음악적 변화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앤드류 시릴은 세 연주자가 자유로이 어울리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에 만족하지는 않았다. 그 스스로도 흥겹게 뛰놀고 동료와 어울리는 연주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의 드럼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여러 음들을 조합해 멜로디를 만들어내듯 드럼의 각 구성 악기, 브러시와 스틱 등을 순간순간 조합해 매번 색다른 소리, 멜로디가 같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The News”가 대표적인 경우로 이 곡에서 그는 스네어 드럼에 신문지를 올려놓고 문질러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냈다.
한편 타이틀 곡과 “With You In Mind”는 앤드류 시릴의 이전 앨범에서 들을 수 있었던 곡들이다. 다만 편성이 다른데 타이틀 곡은 1978년도 앨범 <The Loop>에서 드럼 솔로로 연주했고, With You In Mind”는 그렉 오스비와의 듀오 앨범 <Low Blue Flame>이나 헨리 그라임스, 빌 맥헨리와의 트리오 앨범 <Us Free. Fish Stories>에서 연주했다. 이들 곡은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변신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이번 앨범의 새로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2016년도 쿼텟 앨범과의 차이 외에 이전 앤드류 시릴의 몇 앨범을 들어보면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 계획도 없이 떠나는 여행만큼 두근거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앤드류 시릴의 이번 앨범이 그렇다. 이 앨범은 평소 가보지 못한 길을 가보길 제안한다. 처음의 낯섦을 극복하면 새로운 짜릿함이 올 것이고 그것이 주는 기쁨은 어마어마함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