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amichi – Masabumi Kikuchi (Red Hook 2021)

마사부미 기쿠치의 아름답고 처연한 마지막 스튜디오 녹음

약 2주간 피었다가 가벼운 바람에 산산이 해체되어 눈처럼 날리는 벚꽃의 덜어짐은 아름다운 만큼 슬픔을 자아낸다. 찬란한 슬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출신으로 미국 뉴욕에 거주하며 평생에 걸쳐 다른 연주자들이 가보지 못한 길을 가려 노력했던 피아노 연주자 마사부미 기쿠치의 이번 앨범은 표지에 담긴 벚꽃처럼 아름답고 그만큼 처연한 연주를 담고 있다.

피아노 연주자는 2015년 7월 경막하혈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병으로 그는 오랜 시간 괴로워했던 것 같다. 2013년 12월에 녹음된 이 앨범이 마지막 스튜디오 녹음이라고 하니 말이다. (한편 현재까지 알려진 그의 마지막 라이브 녹음은 2016년에 발매된 솔로 앨범 <Black Orpheus>에 담긴 2012년 도쿄 공연이다.) 이 앨범을 녹음할 때도 그는 병으로 괴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6곡으로 이루어진 이 앨범을 이틀에 걸쳐 녹음해야 했다. 제작을 담당한 정선이 먼저 제안했다고 하지만, 스탠더드 곡을 비롯해 알려진 곡과 자신의 이전 곡을 연주한 것도 어쩌면 당시 그의 건강 상태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폴 모션과 활동하면서 스탠더드 곡이나 다른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소리를 찾아 즉흥 연주를 즐겼던 이전 그의 행보를 생각하면 이것은 매우 과감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이 결정은 매우 훌륭한 것이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도 그의 연주는 여전히 추상적이지만 확고한 테마로 인해 감상자로 하여금 보다 그의 음악적 시정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화가 자신의 해설이 곁들여진 추상화 감상 같다고 할까?

첫 곡 “Ramona”만 해도 마사부미 키쿠치는 원곡을 해체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려는 듯 긴장 가득 연주를 시작하지만 1928년 마블 웨인이 무성영화 <Ramona>를 위해 쓴 원곡에 담긴 낭만성은 그대로 유지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감지한 듯 아쉬움과 긍정이 섞인 연주를 이어가는데 그것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러한 서정적 여백이 많은 연주는 라틴적 색채를 곁들여 경쾌하게 연주하고 노래했던 다른 재즈 연주자들의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거쉰의 곡을 연주한 “Summertime”도 다르다. 이 자장가를 피아노 연주자는 잘 알려진 테마를 강박적인 모드로 감싸고 그 속에서 편안한 자장가를 어두운 밤이 주는 무한한 공간감 가득한 환상곡으로 바꾸었다. 즉흥 연주지만 반복에서 자연스레 발현된 감흥을 따른 연주이기에 전혀 난해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한편 이번 앨범에서 피아노 연주자는 리차드 로저스 작곡으로 1965년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요 곡인 “My Favorite Things”는 두 번 연주했다. 이틀간 한번씩 녹음한 결과인데 날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두 연주가 매우 대조적이다. “My Favorite Things I”에서 테마를 와해시켜 비구상적인 방향으로 즉흥성을 발전시킨 반면 “My Favorite Things II”에서는 테마의 음들을 공간 속에 홀로 서게 하겠다는 듯한 연주로 서서히 곡을 새로운 자유의 지점으로 이끈다. 개인적으로는 육중한 느낌의 두 번째 연주를 먼저 듣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첫 번째 연주를 듣기를 권한다. 극적인 맛이 한층 더할 것이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사전 준비 없이 순간에 집중한 “Improvisation”에 이어 연주된 “Little Abi”는 도쿄 라이브 앨범 <Black Orpheus>에서도 연주되었던 피아노 연주자의 자작곡이다. 이 곡을 피아노 연주자는 그의 딸 “아비 기쿠치”를 위해 썼다. 아버지의 사랑을 담아 연주한 곡이라 할 수 있는데 연주 자체는 담담하다. 말이 없어도 전해지는 가족간의 사랑이 그런 것이리라.

이번 앨범의 타이틀 “하나미치”는 가부키 극장에서 객석을 가로질러 중앙무대로 연결된 통로를 의미한다. 배우가 관객 사이로 출현하고 보조 무대로서의 역할도 한다. 이것은 나아가 극의 현실감을 관객이 보다 잘 느낄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따라서 알려진 곡을 새롭게 연주하면서 그만의 소리, 감성, 상상을 다른 어느 앨범보다 감상자에게 잘 전했다는 점에서 표지만큼이나 앨범의 성격을 제대로 전달하는 타이틀이라 하겠다.

그만큼 그의 사망이 다시 한번 아쉽게 다가온다. ECM 레이블을 통해 보여준 후기 연주의 미학이 이 앨범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만큼 그가 조금 더 살았다면 더 아름다운 연주를 펼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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