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새롭게 바라본 재즈
SF 문학의 하위 장르 중에 스팀펑크라는 것이 있다. 보통의 SF 문학이 다가올 미래를 그리는 것과 달리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19세기 근처로 돌아가 그 시점에서 미래를 그리는 장르다. 과거의 시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사회가 아닌 다른 현재를 그리는 것이다. 가능성으로 끝난 역사의 다른 방향을 그리는, 일종의 대체역사물이라 볼 수도 있겠다. 이를 위해 작가들은 과거를 매우 정확히 묘사해 독자가 그들의 새로운 상상을 있을 법 한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재즈 연주자들 중 상당 수는 50,60년대 하드 밥의 시대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그 시대를 재현하려는 시도를 하곤 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재즈의 과거에 한 발을 둔 연주자일수록 스팀펑크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전통의 재현에만 목적을 둔다면 그 연주는 명화의 모조품 같은 느낌을 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 그 시점에서 나라면 어떻게 연주했을까 하는 고민과 상상을 바탕으로 연주해야 하는 것이다.
색소폰 연주자 이용석의 이번 새 앨범은 이른바 스팀펑크 재즈라 할만하다. 스탠더드 곡 중심으로 2015년에 발매했던 <Shall We>에서 그는 재즈의 기본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었다. 이번 앨범은 여기서 더 나아가 연주자에게 육화(肉化)된 전통,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새롭게 바라본 “새로운 과거:의 재즈(The New Old One)를 담고 있다.
앨범은 하드 밥의 익숙함에서 출발한다. 멜로디에 하모니, 리듬을 입힌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처럼 떠오른 듯한 테마, 화려한 움직임으로 직선적 움직임을 보이는 중에도 잠깐의 여유를 잊지 않은 솔로(들)의 이어짐-여기엔 피아노 연주자 강지은을 비롯한 동료들의 힘도 크다-, 색소폰 연주자가 가장 재즈다운 사운드를 구현하기에 이상적인 편성이라 생각한다는 섹스텟의 오밀조밀한 어울림으로 이루어진 곡들은 분명 하드 밥 시대를 추억하게 한다. “Age Is No Guarantee Of Efficiency”나 첫 앨범에 이어 다시 새롭게 연주한 “Early Bird”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용석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현재로 감상자를 이끈다. 라틴 리듬과 스윙 리듬을 오가고 코드가 이어지고, 악기들의 겹쳤다 펼쳐지는 과정에서 보이는 세련된 선택과 조합으로 이곳과 다른 현재를 그린다. 분주한 움직임의 “Newsroom”, 허성의 노래가 추가된 “May” 같은 곡이 그 예이다.
이런 그의 음악을 포스트 밥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용석의 재즈를 하드 밥과 포스트 밥의 어느 중간 지점에 놓인 재즈라 말하고 싶다.
한편 이 앨범의 미덕은 온기에 있다. 내가 말하는 온기란 열정적인 연주를 의미하지 않는다. 하드 밥 시대의 앨범을 들을 때, 아무리 화려하고 예측 불가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연주에서조차 느껴지곤 하는 인간적인 면을 말한다. 화려한 연주, 정교한 편곡으로 이루어진, A학점 모범생 같은 음악에서 부족하기 쉬운 인간적 온화함이 들을수록 느껴지는데 이것이 바로 이용석이 새것을 만들면서 오래된 것을 활용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