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 스미스 (Lonnie Smith, 1972.07.03 ~ )

소울 재즈의 생존자 로니 스미스 박사

특정 장르 특정 시대의 음악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악기가 있다. 하몬드 오르간이 그렇다. 하몬드 오르간은 1935년 공학자인 로렌스 하몬드에 의해 발명되었다. 발명가는 이 새로운 전기 악기가 파이프 오르간이나 피아노를 대체해 교회에서 연주되기를 바랬다. 그 바람대로 여러 교회에서 하몬드 오르간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악기의 실질적인 인기는 1950년대 소울 재즈의 등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보다 흑인적인 맛을 살리자는 하드 밥의 열풍 속에 등장한 소울 재즈는 기존의 재즈에 흑인 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가스펠, 블루스, 소울 음악을 결합해 한층 끈끈한 음악을 선보였다. 이 때 오르간-기타-드럼으로 이루어진 트리오 편성이 소울 재즈의 인기를 주도했다. 특히 지미 스미스의 화려한 연주는 하몬드 오르간을 소울 재즈의 제왕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소울 재즈의 시대가 저물며 하몬드 오르간의 인기 또한 급격히 감소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하몬드 오르간 제작사 또한 기존의 톤휠(Tonewheel) 방식에서 트랜지스터 방식으로 변화를 주기도 했지만 결국 1985년 문을 닫고 말았다.

하몬드 오르간의 인기가 급격히 떨어진 것은 펜더 로즈 피아노, 신디사이저 같은 새로운 전기/전자 건반 악기의 출현 때문이었다. 그만큼 하몬드 오르간은 등장 당시 첨단 악기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첨단의 이미지가 바래면서 인기가 떨어진 것은 당연했다.

지미 스미스가 견인한 인기를 바탕으로 잭 맥더프, 지미 맥그리프, 돈 패터슨, 빅 존 패턴 같은 연주자들이 등장해 소울 재즈와 오르간 연주의 인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로니 스미스가 있었다. 주어진 곡을 새롭게 변주(Doctor up)하는데 뛰어나다고 하여 박사(Doctor)라 불리기도 한 그는 소울 재즈가 보다 펑키한 감각을 지닌 재즈로 변화하는 과정을 이끌며 오르간의 인기를 지속시켰다. 그리고 꾸준한 활동으로 2017년 미국 국립예술기금 위원회(NEA)이 지정하는 재즈 거장이 되었다.

1942년 7월 3일 뉴욕 주의 버팔로에서 태어난 닥터 로니 스미스는 보컬 활동을 하던 어머니를 통해 어린 나이부터 가스펠, 블루스, 재즈를 들으며 성장했다. 그의 음악 활동은 노래로 시작했다. 1950년대 중반 그보다 한 살 어린 동향의 색소폰 연주자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와 함께 보컬 그룹 틴킹의 멤버로 활동 한 것.

이 때까지 그는 계속 음악을 하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특정 악기를 전문으로 연주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지역의 악기 판매점에 자주 들러 악기를 구경하곤 했다. 이를 주목한 악기 판매점의 사장 아트 쿠베라는 그에게 하몬드 오르간을 보여주고 악기를 배울 기회를 제공했다. 이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이후 그는 당시 열정적이고 화려한 연주로 소울 재즈의 인기를 높이고 있던 지미 스미스의 연주를 모범으로 삼아 오르간 연주에 매진했다. 그 결과 20세에 즈음해 지역의 클럽에서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의 실력을 갖추었다.

실력을 갖추자 그는 파인 힐 클럽을 비롯한 지역의 재즈 클럽에서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 중 당시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오르간 연주자 잭 먹더프가 지역 클럽 공연을 위해 그에게 오르간을 빌렸다. 오르간을 빌려주고 로니 스미스는 오르간 임차인의 공연을 친구들과 함께 관람했다. 공연 중 그의 친구들은 잭 맥더프에게 로니 스미스에게 연주할 기회를 주라고 요청했다. 의외로 잭 먹더프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것이 또 다른 그의 전환점을 제공했다. 이 잠깐의 공연은 당시 잭 맥더프 밴드의 멤버였던 기타 연주자 조지 벤슨과의 인연을 가져왔다. 당시 기타 연주자는 자신의 리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로니 스미스는 음악은 물론 비슷한 나이와 성격 모두에서 최적의 오르간 연주자였다.

조지 벤슨 밴드 활동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오르간 연주자는 물론 기타 연주자 또한 1960년대 초반 당시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견뎌야 했다. 식당에서 다른 테이블에 놓인 종업원을 위한 팁을 슬쩍 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워낙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었기에 어려운 시기는 이내 지나고 영광의 시기가 찾아왔다. 두 장의 앨범 <It’s Uptown>(1966)과 <The George Benson Cookbook>(1967)을 녹음하며 조지 벤슨은 재즈의 미래를 이끌 신예 연주자로 주목 받았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부름을 받을 정도였다. 로니 스미스 또한 실력을 인정 받아 조지 벤슨의 앨범을 제작했던 콜럼비아 레이블에서 첫 리더 앨범 <Finger Lickin’ Good Soul Organ>을 녹음할 수 있었다. 조지 벤슨이 사이드맨으로 참여했기 때문인지 앨범은 같은 해 녹음된 <The George Benson Cookbook>과 유사했다. 그러면서도 한결 더 신선했다. 이후 분격화될 보다 가볍고 보다 흥겨운 그루브를 지닌 펑키 재즈의 원형이라 할만했다.

1967년 그는 또 다른 명작을 녹음했다. 조지 벤슨과 함께 소울 재즈 스타였던 색소폰 연주자 루 도날드손의 앨범 <Alligator Boogaloo>를 녹음한 것. 여기서도 그는 이전 오르간 연주자들보다 한층 펑키한 감각의 오르간 연주를 선보였다. 이후 그는 루 도날드손의 사이드맨으로 <Mr. Shing-A-Ling>, <Midnight Creeper>(이상 1968), <Everything I Play Is Funky>(1970) 등의 블루 노트 레이블 앨범을 녹음하며 색소폰 연주자의 대중적 성공을 도왔다.

그와 함께 <Think!>, <Turning Point>(이상 1969), <Move Your Hand>, <Drives>(이상 1970) 등 솔로 앨범 녹음을 병행했다. 이들 앨범에서 그는 주인공답게 작곡과 연주 모두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Think!>에서 보여준 예측하기 힘든 변화무쌍한 연주는 그를 박사라 부르게 했다. 또한 세련된 그루브와 펑키하게 해석한 부갈루(Boogaloo) 사운드를 활용하여 감상자를 몰아의 환각 상태로 이끌었다. 그 결과 1969년 <다운비트>지로부터 올해의 오르간 연주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변했다. 소울 재즈의 인기는 퓨전 재즈에 밀려 시들어졌고 하몬드 오르간 또한 새로운 건반 악기에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이제 소울 재즈와 하몬드 오르간은 지난 시대의 것이 되었다. 로니 스미스가 블루 노트를 떠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박사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이전에 추구하던 보다 가볍고 펑키한 감각의 재즈를 계속 밀고 나갔다. 1971년 CTI 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Mama Wailer>에서의 거침 없이 나아가는 화려한 솔로나 1975년 그루브 머천트 레이블에서 발매한 <Afro–desia>에서의 펑키한 리듬 감각은 그가 소울 재즈를 바탕으로 새로운 재즈를 만들고 있음을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Keep On Lovin’>(1976), <Funk Reaction>(1977), <Gotcha>(1978) 등 이후 발매된 앨범들은 좀 달랐다. 대중적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다수의 연주자를 참여시켜 사운드의 색채감을 높이고 대중 음악의 판도를 뒤집기 시작한 디스코 리듬을 받아들이는 한편 보컬을 기용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박사가 오르간 외에 피아노와 신디사이저를 연주한 것은 그가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였다기 보다는 따르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그 건반 연주 또한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자신의 재즈를 지난 것이 아닌 바로 지금의 것임을 입증하려는 의지가 낳은 뜻 밖의 아쉬움이었다. .

그래서였을까? 1980년대 그는 앨범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기타 연주자 멜빈 스파크, 드럼 연주자 앨빈 퀸과 1950년대 소울 재즈를 재현한 앨범 <Lenox And Seventh>(1985)가 전부였다. 어느덧 그는 지난 시대의 연주자, 공연은 이어가고 있지만 지난 앨범을 들으며 과거를 추억해야 할 연주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1990년대가 되자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1950년대 하드 밥 시대를 향해 강한 애착으로 그 시대의 그림자를 드리운 앨범을 제작하는 일본의 비너스 레이블의 요청을 받은 것. 이에 박사는 기타 연주자 존 애버크롬비, 드럼 연주자 마빈 스미티 스미스와 트리오를 이루어 석 장의 앨범 <Afro Blue>(1993), <Foxy Ladt>, <Purple Haze>(이상 1994) 를 녹음했다. 그런데 그 앨범들이 존 콜트레인과 지미 헨드릭스를 주제로 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펑키한 리듬을 바탕으로 박사의 오르간이 넘실대고 존 애버크롬비의 기타가 요동치는 연주 또한 소울 재즈 시대를 그리게 하면서도 낡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한편 20여년만에 루 도날드손과 만나 <Play The Right Thing>(1990)을 비롯해 넉 장의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다. 이들 앨범 또한 소울 재즈의 빛나는 추억을 되살리는 한편 그 음악적 매력이 여전히 유효함을 생각하게 하는 음악을 담았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지고 안정적이 되었다. 피터 번스타인, 로드니 존스 등의 기타 연주자, 데이빗 팻헤드 뉴먼, 도널드 해리슨 등의 색소폰 연주자와 트리오 혹은 쿼텟을 이루어 <Too Damn Hot!>(2004), <Jungle Soul> (2006), <Rise Up!>(2008), <Spiral>(2010) 등의 앨범을 팔메토 레이블을 통해 발매했는데 자작곡과 스탠더드 곡의 절묘한 편곡 그리고 여전히 감각적인 연주로 모두 소울 재즈의 과거와 그 지속을 느끼게 했다.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보다 안정적인 활동을 위해 직접 자신의 레이블 필그리미지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장의 앨범 <The Healer>(2012), <In The Beginning>(2013)을 녹음한 후 그는 활동을 멈추어야 했다. 블루 노트 레이블에서 다시 그를 부른 것. 세상을 떠난 제작자 부르스 룬드발의 후임으로 블루 노트의 제작을 책임지게 된 돈 워스는 젊은 연주자들의 앨범 제작 외에 지난 시절 명인들의 앨범 제작에도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웨인 쇼터, 찰스 로이드 그리고 로니 스미스 등의 연주자들을 다시 불렀다.

45년 만에 다시 돌아온 블루 노트 레이블에서 로니 스미스는 <Evolution>(2016)을 통해 오르간 솔로가 파도처럼 굽이치고 펑키한 리듬이 몸을 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소울 재즈의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라이브 앨범으로 제작된 <All In My Mind>(2018)에서는 열정과 차분함을 오가고, 대중적인 매력과 재즈의 진지함이 공존하는 음악을 선보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올 해 그는 새 앨범 <Breathe>를 선보였다. 이번 앨범에 담긴 6곡은 <All In My Mind>와 같은 시기에 녹음되었다. 2017년 박사의 75세 생일을 기념해 뉴욕의 재즈 스탠더드 클럽에서 있었던 공연을 담고 있는데 <All In My Mind>가 오르간 트리오 편성의 연주를 담은 것에 비해 이번 앨범은 오르간 트리오에 4명의 관악 연주자가 참여한 연주를 담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그래도 음악적인 질감은 2018년도 앨범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색소폰, 트럼펫, 트롬본이 참여했다고는 하지만 연주의 중심은 박사의 오르간 조나단 크라이스버그의 기타, 조나단 블래이크의 드럼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긴 호흡으로 솔로를 전해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솔로,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원초적인 그루브함도 2018년도 앨범의 연장이라 할만하다.

이 앨범의 새로움, 흥미로움은 사실 공연에서 녹음된 곡이 아니라 앨범의 시작과 끝에 자리잡은 스튜디오 녹음 곡에 있다. 티미 토마스의 노래로 1972년 인기를 얻은 후 수 없이 연주되고 노래된 “Why Can’t We Live Together”와 싱어송라이터 도노번의 1966년도 히트 곡 “Sunshine Superman”을 로니 스미스는 록 보컬(이지만 재즈 쪽에도 종종 얼굴을 보이고 있는) 이기 팝과 함께 했다. 모두 원곡을 존중하면서 소울 재즈의 매력을 잘 드러냈다. 여러 모로 대중적 관심을 받을 곡들이 아닐까 싶다.

하나의 스타일을 고집하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인기 하락 같은 부침이 있을 경우에는 말 그대로 고집이 필요하다. 로니 스미스는 그 고집으로 재즈의 과거로 사라질 위험을 극복하고 현재를 이끄는 연주자가 되었다. 그 결과 과거와 현재 모두를 아우른 그의 소울 재즈와 오르간 연주는 탈시간적인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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