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세상에 대한 시선을 편안하게 풀어내다
피아노 연주자 비제이 아이어는 지금까지 매 앨범마다 새로움으로 가득한 음악을 선보여왔다. 1970, 80년대에 키스 자렛이 여러 개의 자아를 지닌 듯 다채로운 활동을 했던 것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특히 2013년 이후 ECM 레이블을 통해 선보인 앨범들은 편성과 음악적 질감에서 매번 다르고 새로웠다. 그래서 그가 다음 앨범에 어떤 음악을 어떤 그릇에 담아낼 것인지 예상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무방비 상태에서 맞이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기에 우리 작가 안웅철이 찍은 자유의 여신상 사진을 커버로 사용한 이번 앨범이 피아노 트리오 편성으로 녹음되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는 감상자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 있다. 연주 또한 전에 비해 한층 감상이 용이하다.
그렇다면 이 앨범은 비제이 아이어답지 않은 평이한 앨범인 것일까? 아니다. 이번 앨범은 편성이전에 주제가 중요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먼저 이번 앨범의 타이틀은 앨범 내지에서 비제이 아이어가 직접 밝혔듯이 2011년 무용가 캐롤 아미티지와 함께 했던, 미국 사회에서 증가하는 불안, 불안정성을 주제로 한 무용 프로젝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는 지금도 미국 사회가 “Uneasy”하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곡 “Children Of Flint”가 좋은 예이다. 이 곡은 2014년 미국 미시건 주 플린트에서 있었던, 납으로 오염된 수돗물이 공급되어 많은 어린이가-대부분이 흑인이었던- 건강이상, 학습장애 등을 겪게 된 사건을 환기시킨다. 이어지는 “Combat Breathing” 또한 2014년 브루클린 음악원이 당시 막 일기 시작한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동조하는 것을 위해 씌어졌다.
또한 유일한 피아노 솔로 연주곡인 “Augury”는 새의 움직임이나 울음소리를 통해 길흉의 징조를 파악하는 조점술(鳥占術)을 의미하는 것으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난세에 대한 불안을 담고 있다. 그리고 2001년 앨범 <Panoptic Modes>에서 쿼텟 연주로 선보인 이후 다시 연주한 “Configurations”나 “Retrofit”도 새로운 안정에 대한 연주자의 바람으로 이해 가능하다.
한편 비제이 아이어가 바라는 불안정의 안정화는 상황이 좋았던 때로의 회귀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콜 포터의 스탠더드 곡을 연주한 “Night And Day”나 제리 알렌의 곡을 연주한 “Drummer’s Song”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이 두 곡에서 최근 세상을 떠난 맥코이 타이너와 제리 알렌의 영향을 드러내는 한편 두 선배의 스타일이 자신을 통해 연장이 아닌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음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 앨범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피아노 연주자의 사회, 정치적 시선에 있지 않다. 오히려 다소 무거운 주제가 매우 부드러운 연주-그 자신은 이들 곡이 쉽지 않다고 했지만-로 구현되었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달착지근한 멜로디가 있다거나 쉬운 리듬을 사용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리듬은 복잡하고 멜로디 또한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충분한 여유 속에 세 연주자가 강한 연대를 이루었기에 그 연주가 어지럽다거나 격렬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다른 편성이 아닌 트리오로 앨범을 녹음한 것도 안정에 대한 피아노 연주자의 바람을 표현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대신 각각 오래 전부터 인연을 이어 온 베이스 연주자 린다 메이 한 오와 드럼 연주자 타이숀 소리와 새로이 트리오를 구성해 세 연주자가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입체적 삼각형을 만들게 한 것은 신선도를 높이기 위한 현명한 결정이었다.
이번 앨범의 커버는 우리 작가 안웅철이 찍은 사진을 사용한 것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멀리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비제이 아이어의 사회, 정치적 시선이 미국 사회에 국한된 것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그리고 주제 의식으로 인해 감상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감상전의 불안에 지나지 않는다. 막상 감상을 시작하면 부드러운 질감과 자유와 질서 모두를 획득한 트리오 연주자 자체에 빠질 것이다.
의도와 결과가 다른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불편한(Uneasy)”이란 말 속에 이미 “편한(Easy)”이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처럼 혼돈의 시대일수록 과격하고 시끄러운 음악보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음악이 더 마음에 와 닿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