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는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이다. 살면서 느낀 감정, 인상을 바탕으로 곡을 쓰고 이를 자신이 지휘하는 빅 밴드 음악으로 표현하곤 한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었던 2016년도 앨범 <April>을 나는 그 해 최고의 한국 재즈 앨범의 하나로 꼽을 정도로 매우 인상적으로 들었다. “세월호“ 사건의 비극, 그에 대해 그녀가 느꼈던 슬픔, 미안함 등을 표현했는데 정서적 흡입력은 물론 빅밴드의 세세한 운용 또한 훌륭했다.
그녀는 뛰어난 보컬이기도 하다. 2018년에 발매된 두 번째 앨범 <As The Night Passes>에서는 마음 속 시정을 청아하게 표현했다. 직접 노래로 자신을 드러냈기에 대형 밴드는 필요 없었다. 첫 앨범과 대조적으로 피아노만을 대동했다.
그리고 다시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다시 자신이 지휘하는 빅 밴드 연주를 선보였다. 물론 전곡을 작곡했다.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가차 없고 흔들리지 않으며 다시 살아나고 만족하지 않는, 호기심 가득하고 용기 있는” 마음이다. 앞의 두 앨범에 담긴 서정적이고 부드러우며 때로는 여린 정서를 생각하면 그 자체로 색다른 느낌을 준다. 그것은 이번 앨범이 미국에서 살면서 첫 4년간 느꼈던 그녀의 삶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 던져진 느낌, 외로움 등의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썼던 곡인 것이다.
그렇기에 앨범의 각 곡들에 담긴 정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긴 호흡으로 안에서 부단히 살아 움직이며 마음을 다스리기까지의 복잡다단한 과정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피아노 반주에 독백조로 노래하는 것보다는 17명의 연주자가 어우러져 다채롭게 접혔다 펼쳐지기를 반복하는 빅밴드 편성이 더 적합했을 것이다.
실제 리듬 섹션 외에 14개의 관악기가 등장하는 그녀의 빅 밴드는 규모로 승부하지 않는다. 모두 어울려 오케스트라처럼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몇 개로 나뉜 섹션의 교차와 강약의 조절 등을 통해 하나의 추상적 감정을 복합적이며 극적인 것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관악기가 세 부분으로 분할되었다가 다시 모이고 때로는 솔로 악기 뒤로 사라지는 등 극적인 효과를 발산하는 “Dissatisfied Mind”는 단순히 “불만”의 감정을 넘어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시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와 그 과정을 그리게 한다. 피로를 머금은 듯한 트럼펫 솔로로 시작해 빅 밴드의 밝고 장엄한 울림으로 마감되는 “Struggle Gives You Strength”는 단순한 “투쟁”이 아니라 도전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희망”까지 그리게 한다.
순간의 거대한 울림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에 이지혜의 빅 밴드는 때로는 실내악적인 느낌마저 준다. 여기에서 현대적인 빅 밴드 운영을 보여준 대표 인물인 마리아 슈나이더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영향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내면을 바탕으로 한 만큼 독자적인 개성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첫 앨범과 비교하며 한층 정교해지고 깊어진 빅 밴드를 확인하는 것이 더 재미 있는 감상이 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빅 밴드와 보컬 활동 중 빅 밴드 활동에 더 애착이 간다. 계속 이번 앨범처럼 매혹적인 결과가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