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85세에 선보이는 아련한 분위기의 첫 번째 솔로 앨범
혼자 있을 때면 절로 지난 시간이 생각난다. 소소한 어린 시절의 사건부터 젊은 시절 막연히 나를 사로잡았던 기쁨, 슬픔 등의 감정이 아스라히 떠오르며 마음을 흔드는 것이다. 언제부터 미래보다 과거를 떠올리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미래가 과거보다 작아진 어느 순간부터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청춘을 떠나 보냈을 것이다.
다소 감상적으로 글을 시작한 것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반도네온 연주자 디노 살루지의 이번 앨범이 지난 시절에 대한 아련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에도 이 반도네온 연주자의 음악에서는 과거의 향기가 나곤 했다. 그의 음악이 아르헨티나의 탕고는 물론 안데스 음악을 비롯한 전통적인 포크 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찰리 헤이든, 엔리코 라바, 로사문트 쿼텟, 팔레 다니엘손, 안야 레흐너 등의 유럽 연주자와 함께 하면서 그의 음악에 담긴 오래된 종이 같은 향기는 새로운 페이지의 기대감으로 상쇄되곤 했다. 동생 펠릭스 살루지, 아들 호세 마리아 살루지 등 가족이 함께 한 그룹 앨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거를 기반으로 그는 새로운 공간, 가상의 공간을 그리곤 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다르다. 이전 앨범들보다 더 많은 그리움을 담고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 이번 앨범을 다른 동료 없이 혼자서 연주했기 때문이다. 2019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위치한 “살루지 뮤직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고 하니 집에서 앨범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1982년에 녹음한 ECM에서의 첫 앨범 도 솔로 앨범이었다. 하지만 이 때에는 반도네온 외에 플루트와 타악기까지 연주했다. 솔로 앨범이지만 솔로 같지 않은 음악을 지향했던 셈이다. 그러니 오로지 반도네온만으로 녹음한 이번 앨범이야 말로 진정한 그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이 아닐까 싶다.
디노 살루지는 자신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지난 시간을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는,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으로 바라본 것 같다. 앨범 초반의 세 곡이 이를 말한다. 첫 곡은 클래식 음악 작곡가 기아 캔첼리를 향한 곡이다. 그는 이 조르지아 출신 작곡가의 2010년도 앨범 에 참여하며 인연을 맺었다. 작곡가가 2019년 10월 2일 세상을 떠나자 곧바로 녹음한 애도의 연주는 멜로디가 아닌 바람이 통과해 만들어 내는 소리의 헛헛한 울림으로 가득하다. 그것이 부재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Ausencias 부재(不在)”, 그리고 밀롱가 스타일로 연주한 “Según me cuenta la vida(삶이 말해주듯)”의 애잔함으로 이어진다.
디노 살루지는 잡을 수 없는 아련한 것이라 해서 과거를 슬프게만 바라보지는 않았다. 역시 음악가였던 아버지 카예타노 살루지를 주제로 한 “Don Caye – Variaciones sobre obra de Cayetano Saluzzi”가 그런 경우다. 여기서 그는 아버지를 그리워하지만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가 남긴 음악 유산, 따스함이 더 많이 기억에 남은 듯 하다. “Íntimo”에서도 그는 어린 시절을 아련하지만 정감 있게 추억한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고 해서 음악 자체가 옛 스타일이지는 않다. 자신의 감정, 생각을 자유로이 연주에 담을 수 있는 그답게 실제 연주는 시간을 벗어나 있다. 과거를 기반으로 만들어 낸 디노 살루지 스타일이이라 할까?
특히 이번 앨범에서 그는 솔로 연주인 만큼 이전보다 더 명확하게 반도네온이 지닌 아름다움을 맛보게 한다. 이번 앨범에 담긴 그의 연주는 멜로디, 화성 외에 반도네온의 소리에 기반하고 있다. 왼손과 오른손이 각기 다른 음역대를 차지하고 접혔다 펼쳐지는 과정은 마치 두 대의 악기가 연주하는 것 같고 그 소리 또한 때로는 관악기 같고 때로는 오르간 같다. 특히 마지막 곡 “Ofrenda – Tocata”에서의 부드럽게 상승하는 소리는 반도네온의 거대한 표현력을 느끼게 한다. 자신의 전존재를 악기에 투영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연주다.
앞으로 계속 디노 살루지가 과거에 연연할 것 같지는 않다. “새벽”을 앨범 타이틀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다. 새벽은 지난 밤을 아쉬워하면서도 다가오는 새로운 시작을 받아들이는 교차의 시간이다. 결국 지난 시간을 추억했다지만 그 순간 그는 또 다른 새로운 출발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만 85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꾸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