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즈는 여전히 마니아 층이 얕고 그만큼 연주자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제작과 연주자 층의 깊이만큼은 최근 추세로 비추어볼 때 안정적이라 할 수 있다. 매해 새로운 연주자가 등장하고 많은 수의 앨범이 발매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꾸준히 활동하면서 차근차근 자신의 음악적 이상을 실현 나가는 연주자는 드물다.
피아노 연주자 고희안은 그 드문 연주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룹 프렐류드의 활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그는 2009년부터는 그룹과는 별개로 자신의 트리오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의 트리오는 스탠더드 곡을 연주한 앨범을 시작으로 자작곡을 담은 앨범으로 천천히 영역을 넓히면서도 전통을 향한 존중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자신만의 개성, 현대성이라는 이름으로 보다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자신을 두고 연주해 온 것이다.
국내에서의 꾸준한 활동을 바탕으로 고희안 트리오는 일본에서도 정기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가운데 지난 해 6월 30일에는 구마모토 현 야츠시로 시에 위치한 재즈 퍼스트 클럽에서 공연했다. 이번 다섯 번째 트리오 앨범은 바로 이 공연을 담고 있다. 트리오는 두 장의 앨범을 라이브 연주로 녹음한 적이 있다. 이 앨범들을 녹음하며 트리오는 라이브라고 해서 이전에 연주했던 곡을 다시 연주하지 않았다. 새로운 곡들을 연주했다. 트리오의 한 시기를 반영한 곡들을 바로 그 순간의 진실에 기반을 두어 연주했던 것이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고희안의 새로운 창작곡 10곡의 연주를 담고 있다. 클럽 공연과 새 앨범 녹음이 동시에 이루어진 셈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번 앨범의 매력은 역동성과 밝음에 있다. 첫 곡 “Snap”부터 “Clean Up”, “Nigeria” 등을 거쳐 마지막 곡 “No Denying”에 이르기까지 고희안을 중심으로 세 연주자가 펼침과 뭉침을 자유로이 오가는 움직임은 시종일관 활력을 잃지 않는다. 그렇다고 트리오가 비밥/하드 밥의 빠르고 직선적인 연주를 고집했다는 말이 아니다. “In The Middle Of Raindrop”처럼 느리고 서정적인 연주에서도 피아노-베이스-드럼의 울림은 매우 강렬하다. 이것은 결국 트리오가 그만큼 연주와 어울림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즉, 연주 스타일이 아닌 연주자의 마음에서 역동성이 나왔다는 것이다.
실제 트리오의 자신감은 음악의 화사한 질감으로 이어진다. 매우 반짝인 나머지 때로는 라틴적인 느낌마저 준다. “Habana” 처럼 아예 라틴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곡을 제외하고도 기분 좋게 도로를 질주하는 느낌의 “Highway”나 마음의 두근거림을 스윙감으로 표현한 “Pit A Pat” 같은 곡에서의 유쾌하게 흐르는 트리오의 연주는 감상자를 햇살 가득한 지역으로 이끈다.
전통적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그 안에 새로움을 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고희안 트리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익숙한 어법으로 지금의 우리가 새롭게 공감할 수 있는 연주를 했다. 재즈의 매력이란 바로 이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