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1928.11.10 ~ 2020.07.06)

7월 6일 영화 음악의 거장인 엔니오 모리코네가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다소 황망스럽게도 낙상(落傷)이라고 한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는데 이것이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고 한다. 올 해로 만 91세였던 나이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1928년 11월 1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그는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트럼펫으로 음악 수업을 시작한 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트럼펫 연주, 클래식 작,편곡을 공부하고 학위를 받았다.

자니 맨델처럼 그 또한 음악적 활동 시작은 재즈였다. 1940년대 재즈 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한 것. 나아가 아방가르드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영화 음악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400여 편의 영화 음악과 100여 편의 TV 드라마 음악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음악은 영화 속 현실 어디선가 들리는 듯 영화에 잘 스며들었다. 동시에 영화 밖으로 뛰쳐나와 독자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는 <황야의 무법자>로 대표되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의 음악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휘파람, 채찍 소리 등이 어우러진, 전통적인 오케스트라 연주와는 다른 생경한 질감의 음악을 선보인 (1968)의 사운드트랙은 영화의 성공과 별도로 큰 인기를 얻으며 영화 음악의 전설로 자리잡았다.

한편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또 다른 영화 (1984)와 롤랑 조페 감독의 (1986),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1988)을 위해 만든 음악은 그를 영화 음악의 거장의 반열로 이끌었다. 특히 이들 영화의 대표 곡들은 별도로 다양한 편성과 스타일로 연주되고 노래되며 영화 이상의 영원성을 획득했다. 이것은 , (1992), (1993), (1994), (2000), (2015) 등의 영화로 이어졌다.

세계적인 명성과 음악적 훌륭함, 그리고 수 많은 영화제에서의 수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2007년까지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후보조차 많이 오르지 못했다.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의 음악을 담당했음에도 그가 LA가 아닌 로마에서 작업을 이어왔으며 그만큼 영어에도 서툴렀던 것이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아카데미는 로컬이다!)

아카데미 상의 공정성에 대해 비난과 비판이 이어지자 결국 아카데미 협회는 2007년 그에게 평생 공로상을 수여했다.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결국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로 2016년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평생 영화와 함께 살아온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시네마 천국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천국은 여러 동료 음악인들은 물론 평범한 영화 애호가들까지 아울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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