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ah Jones – Pick Me Up Off The Floor (Blue Note 2020)

혼란한 세상 속에서 희망을 담아낸 앨범

나는 노라 존스의 여러 앨범 중 2016년도 앨범 를 제일 좋아한다. 피아노 트리오 중심의 연주와 노래가 그녀의 앨범들 가운데 가장 재즈다웠던 데다가 정서적 매력 또한 첫 앨범 이상으로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감히 말하면 재즈의 관점에서 그녀의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정수를 맛보게 해주었다. 그녀도 나와 생각이 같았을까? 이후 그녀는 최근까지 새로운 앨범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과의 만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에 집중했다.
그 결과가 지난 해 발매된 EP앨범 이었다. 에서도 함께 했던 드럼 연주자 브라이언 블레이드, 베이스 연주자 크리스토퍼 토마스와의 협연을 비롯해 포크, 일렉트로닉 뮤지션들과 함께 했던 토마스 버틀렛, 록 그룹 윌코의 기타 연주자겸 보컬인 제프 트위디 등 여러 개성 강한 뮤지션들과 함께 한 싱글 곡들을 모아 놓은 앨범은 그녀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에 관심을 두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이후에도 그녀는 컨트리 밴드 퍼스 앤 부츠의 멤버로 앨범 를 발매하는 한편 멕시코 싱어송라이터 릴라 다운스, 붑스, 리듬 앤 블루스 보컬 마비스 스태플스, 브라질 싱어송라이터 로드리고 아마란테, 펑크, 소울 그룹 탱크 앤 더 뱅가스의 리드 보컬 태로니아 탱크 볼 등과 함께 한 싱글 곡을 발표하는 등 새로운 만남을 이어갔다. 미니 앨범 의 타이틀처럼 기존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이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이번 앨범에 대한 영감은 바로 이러한 만남들 사이에서 떠올랐다. 아직 발표하지 않은 곡들, 특별히 앨범을 만들겠다는 생각 없이 곡 자체에만 집중해 녹음했던 곡들을 모아 듣던 중 서로 상관 없을 것 같았던 곡들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산발적으로 흩어진 곡들을 하나의 앨범 안에 모이게 했을까? 나는 먼저 앨범의 사운드를 꼽고 싶다. 노라 존스 자신이 연주한 피아노를 기본으로 첼로, 비올라가 함께 한 첫 곡 “How I Weep”같은 곡부터 기타와 함께 한 마지막 곡 “Heaven Above”까지, 총 네 곳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이번 앨범에 담긴 11곡은 모두 편성이 다르다. 그만큼 각 곡들은 재즈, 블루스, 포크, 록 등을 다양한 비율로 함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앨범은 여러 싱글의 모음집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애초 하나의 기획 하에 제작된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유기적이다. 이것은 11곡 중 8곡이 앨범 에서 함께 했던 연주자들, 그러니까 드럼 연주자 브라이언 블레이드를 중심으로 베이스 연주자 존 패티투치와 크리트토퍼 토마스, 오르간과 기타를 연주한 피트 렘, 트럼펫 연주자 데이브 가이, 색소폰 연주자 레온 미셀스, 기타 연주자 댄 리드 등 다수의 연주자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앨범은 적어도 사운드의 질감에 있어서는 의 연장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실제 “Heartbroken, Day After”, “Hurt To Be Alone”, “to Live” 같은 곡들을 듣다 보면 절로 의 기분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나머지 3곡도 사운드와 잘 어울린다. 특히 제프 트위디와 함께 한 “Were You Watching?”, “Heaven Above”가 스타일이나 편성으로 인해 이질적인 느낌을 줄 수 있었는데 의외로 다른 곡들과 잘 어울린다.

여러 연주자들과 다양한 편성으로 함께 했음에도 11개의 싱글 곡들이 하나의 앨범으로 수렴할 수 있었던 데에는 노라 존스의 피아노 연주가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연주 곡이 없음에도 이번 앨범에서 그녀의 피아노는 에서 보다 더욱 더 강렬한 존재감을 보인다.
제프 트위디의 기타와 함께 한 “Heaven Above”가 대표적이다. 이 곡에서 그녀의 피아노는 기타가 만들어 낸 포크의 건조함 위로 재즈의 촉촉함을 덧입혔다. 그것이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희망 속에 마감하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한편 첫 곡 “How I Weep”에서는 현의 느낌-피아노는 현을 두드려 소리를 낸다-을 한층 살린 연주로 첼로, 비올라와 절묘한 어울림을 보인다. 이 외에 “Flame Twin”, “Say No More”를 비롯한 여러 곡에서 그녀의 피아노는 연주의 중심에서 앨범에 일관적인 분위기를 부여한다.

노라 존스의 앨범이 장르, 스타일과 상관 없이 매번 대중적 성공을 거둔 것은 그녀의 담백한 노래에 담긴 공감과 위로의 정서 때문이었다. 이번 앨범에서도 이 공감과 위로의 정서는 여전하다. 마치 그녀에 내재된 음악적인 요소인양 자연스럽게 앨범 전체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가사가 그렇다. “바닥에서부터 나를 들어올려줘”라는 앨범 타이틀처럼 이번 앨범의 가사는 “세상이 혼란하고 어둡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녀가 쓴 가사와 편안한 목소리로 부른 노래는 바로 이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희망을 꿈꾸게 한다.
“To Live”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그녀는 어둠을 뚫고 나오는 햇살 같은 브라스 섹션 위로 제약 없이 자유로워 바로 지금 이순간에 충실할 수 있는 삶을 노래한다. 이 외에 “Heartbroken, Day After”에서는 상심 가득한 삶에서도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라고, “I’m Alive”에서는 어두운 상황이 바뀌는 날이 오리라고 노래하는 등 힘든 현실 뒤로 새로운 내일을 그리게 한다.
나아가 상실감 가득한 사람들을 위한 슬픔을 노래한 “How I weep”같은 곡은 나를 위한 친구의 노래를 넘어 “우리”를 향한 노래라는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집단적 연대감을 보다 강조했다는 것은 아니다. 노래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타인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 앨범이 다소 추상적이지만 사회적, 정치적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

희망을 노래한 만큼 그녀의 노래와 전체 사운드는 대체적으로 편안하다. 긍정적인 정서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호들갑스럽게 희망을 과장하지는 않았다. 차분하게 희망을 그렸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그 중 특별히 개인적으로 마음에 와닿은 곡 하나를 언급해야겠다. 바로 “Stumble On My Way”다. 이 곡은 느린 템포 위로 흐르는 쓸쓸한 분위기의 노래가 절로 허전함으로 가득한 해질 무렵의 퇴근 길을 그리게 한다. 오늘 하루 무엇을 위해 살았나 하는 허무 속에 그럼에도 다시 새로운 날을 위해 살아야지 하는 시지프스 같은 다짐을 하게 만든다. 우리의 피곤한 현재를 가장 잘 위로한 곡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삶은 갈수록 어지러워지고 있다. 전세계가 코로나 19로 신음하는 요즈음은 더 그렇다. 음악계에서도 상업적인 흥행 저하를 우려했는지 여러 앨범들의 발매가 연기되었다. 그래서 노라 존스의 이번 앨범이 나는 매우 반갑다. 게다가 앨범에 담긴 곡은 마치 현재를 예상이라도 한 듯 위로와 희망의 정서로 가득하다. 물론 이 한 장의 앨범이 세상의 어둠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묵묵히 견딜 힘을 줄 것은 분명하다. 음악의 힘이란 바로 이것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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