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장르를 버무려 만들어 낸 현대인을 위한 힐링 음악
우리는 보통 한 음악가의 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규정한다. 그의 음악을 바탕으로 정한 것인 만큼 이러한 분류는 대부분 옳다. 그에 맞추어 음반사는 음악가의 앨범을 유통하고 우리는 그 음악을 기대하고 감상한다. 많지는 않지만 이런 장르 구분을 벗어나는 음악가도 있다. 그는 이 장르에서 저 장르를 자유로이 오가고 때로는 아예 분류 자체가 어려운 음악을 선보이곤 한다. 음악가의 이름으로 밖에 정의할 수 없는 음악이랄까? 노라 존스의 음악이 그렇다. 그녀는 재즈 뮤지션으로 분류되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까지 재즈를 중심으로 포크, 컨트리, 블루스, 팝, 록 등 다양한 스타일을 자유로이 섞어 기존 장르로 구분하기 어려운 음악을 선보여왔다. 예로 2002년에 발매되어 커다란 성공을 거둔 그녀의 첫 앨범 , 2004년도 앨범 , 그리고 2012년도 앨범 를 같이 들으면 이 앨범들의 주인이 같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겨지지 않는다. 재즈, 포크, 컨트리, 일렉트로닉 팝 등을 자유로이 오가는 음악인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장르를 가로질러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내는 노라 존스의 능력은 첫 앨범 부터 명백히 드러났다. 2002년에 발매되어 2700만장 이상 판매되며 다이아몬드 레코드를 기록하며 이듬 해 열린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올 해의 앨범, 최우수 신인상 등 5개 부분을 휩쓴 앨범은 전통적인 측면은 물론 다른 장르를 결합한 퓨전 재즈 혹은 스무드 재즈의 측면에서도 낯선 음악을 담고 있었다. 그 낯섦은 무엇보다 포크와 컨트리 음악의 함유가 높다는 것이었다. 퓨전 재즈나 스무드 재즈가 재즈보다는 팝의 함량이 높다는 비판 속에서도 재즈로 수용되어왔던 것은 재즈의 근간을 이루는 흑인 음악적인 요소를 어느 정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러 팝 음악 중 블루스나 R&B적인 색채가 강했기에 전통적인 재즈에서 팝의 비율을 높이면 자연스럽게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겠다는, 일종의 연속성에서의 이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포크나 컨트리는 달랐다. 특히 재즈의 정반대에 놓인, 지극히 백인적인 음악으로 평가 받던 컨트리적인 요소의 결합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노라 존스가 컨트리 음악을 좋아했고 그것을 재즈에 넣게 되었는지는 나 또한 알지 못한다. 다만 1979년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1986년부터 컨트리의 고장 텍사스에서 성장한 것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추측될 뿐이다. 기존의 재즈에 대한 관념을 넘어선 음악 때문일까? 앨범은 전세계적인 인기만큼이나 재즈냐 아니냐 하는 논란을 가져왔다. (국내에서도 이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그럼에도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장르와 상관 없는 앨범의 완성도와 “The Nearness Of You”처럼 재즈 본연의 맛에 충실한 곡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논란과 상관 없이 그녀는 자신의 취향을 따랐다. 그 결과 2004년에 발매된 앨범 에서는 컨트리의 색채가 보다 많아졌다. 여기에 2005년 컨트리 성향의 그룹 리틀 윌리스의 피아노 연주자로 참여해 앨범 를 발매한 것은 그녀의 음악적 근간에 컨트리 음악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컨트리 음악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니었다. 2007년에 발매된 에서는 컨트리 요소를 줄이고 블루스와 포크적인 색채를 보다 강화하고 2009년도 앨범 에서는 팝, 록적인 면을 보다 드러내더니 2012년도 앨범 에서는 전자적인 질감을 강화해 보다 팝 쪽으로 나아간 음악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2004년부터 8년에 걸쳐 발표한 넉 장의 앨범은 그녀가 재즈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재즈 밖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생각하게 했다. 정규 앨범 외의 활동 또한 이러한 면을 부각시켰다. 해롤드 메이번, 윈튼 마샬리스, 세스 맥팔래인, 토니 베넷 같은 재즈 뮤지션들과도 함께 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많은 다른 장르의 뮤지션들과 함께 한 것, 2010년에 발매된 앨범 <… Featuring Norah Jones>가 대표적인 예였다. 이 앨범은 그녀가 다른 뮤지션이나 그룹에 초대 받아 노래한 곡들은 모아 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면모를 보면 아웃캐스트, 큐팁, 푸 파이터즈, 라이언 아담스, 레이 찰스, 위클리프 진, 엘 매드모, 벨 앤 세바스챤 등 팝, 록, 컨트리, 힙합 등 여러 장르를 가로지른다. 이 앨범에 담긴 활동 외에도 머큐리 레브, 린지 버킹햄, 에밀루 해리스 등과도 함께 하며 장르에 구애 받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노라 존스의 활동은 재즈 뮤지션으로서 그녀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다채로웠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녀는 큰 선회를 시도했다. 2016년도 앨범 에서 앨범에서 가장 재즈적인 음악을 선보인 것, 이에 맞추어 편성 또한 기존의 기타 중심에서 피아노 트리오가 중심이 되어 브라스 섹션과 오르간 등이 추가된, 보다 재즈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그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노라 존스의 이미지 외에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노라 존스의 모습 또한 부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 앨범을 노라 존스가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재즈적인 사운드를 담고 있는 앨범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후 노라 존스는 다시 장르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만남을 이어갔다. 그래서 2019년 록 그룹 윌코의 제프 트위디와 함께 한 EP 앨범 을 발표하는가 하면 멕시코 싱어송라이터 릴라 다운스, 붑스, 리듬 앤 블루스 보컬 마비스 스태플스, 브라질 싱어송라이터 로드리고 아마란테, 펑크, 소울 그룹 탱크 앤 더 뱅가스의 리드 보컬 태로니아 탱크 볼 등과 함께 싱글을 발표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그녀가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음악적 자유? 새로운 음악에 대한 영감? 아무튼 모험에 가까운 만남에 집중한 나머지 그녀는 새로운 앨범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바로 그 때 새 앨범에 대한 청사진이 운명처럼 그려졌다. 드럼 연주자 브라이언 블레이드를 중심으로 앨범 에서 함께 했던 연주자들과 3일에 걸쳐 녹음했던 곡들과 EP 앨범 에서 함께 했던 제프 트위디와 녹음한 미공개 트랙들, 그러니까 앨범 발매를 고려하지 않고 싱글 단위로 녹음했던 곡들, 그리고 독자적으로 녹음한 몇 곡이 보이지 않는 끈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실제 앨범에 담긴 곡들은 곡마다 편성이 다르고 재즈, 블루스, 포크, 록 등이 다양한 비율로 섞여 있지만 질감에 있어서는 유기적인 면을 보인다. 그러면서 앨범 를 많이 연상시킨다. 물론 질감의 차이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노라 존스의 피아노가 다른 어느 때보다 사운드의 중심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이 앨범이 싱글 곡들의 모음이 아니라 애초에 기획된 앨범에 맞추어 씌어졌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곡들의 가사는 더욱 더 유기적이다. 이번 앨범은 “세상이 혼란스럽고 어둡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음악이 어둡고 우울하지 않다. 이 전제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바로 희망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곡들은 스타일과 상관 없이 희망, 낙담에 대한 공감과 위로의 정서를 담고 있다. 앨범 타이틀처럼 바닥에서부터 나를 들어올려주는 노래들인 것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발매 앨범들이 발매를 앞두고 시기를 미루는 것과 달리 이렇게 앨범을 발매한 것은 바로 이번 앨범에 담긴 희망적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실제 이번 앨범에 담긴 곡들은 잠시나마 사회의 혼돈, 어지러움을 잊게 한다.
사실 재즈에만 머무르지 않고 여러 스타일을 결합해 앨범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노라 존스의 앨범을 듣는 것은 일종의 모험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앨범이 늘 폭 넓은 사랑을 받았던 것은 그녀의 노래와 연주가 우리의 현재를 공감하고 힘듦을 위로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이번 앨범은 다시 입증한다. 그렇다. 분명 장르 이전에 음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