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피아노 연주자 에단 아이버슨이 ECM에서 앨범을 발표한다는 것은 내게는 의외였다. 제작자 맨프레드 아이허가 기본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바탕으로 연주자와 음악을 선택한다고 하지만 이미 자기 세계를 이루고 인정받은 중견 연주자의 앨범을 제작하는 것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찰스 로이드 같은 완성된 연주자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맨프레드 아이허를 만났을 때 그는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ECM을 만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다. 이 외에 팀 번, 빌리 하트, 마이클 포마넥 같은 연주자도 있지 않나 싶지만 이들은 오래 전부터 ECM과 연관성이 있거나 단발적 성격이 강했다. 실제 이들의 앨범 또한 발매 당시 상당히 의외로 다가왔었다. ECM이 미국의 포스트 밥이나 아방가르드 재즈까지 포용해야 할 정도로 미국 레이블이 침체를 겪고 있나 생각될 정도였다.
에단 아이버슨이 ECM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빌리 하트 쿼텟을 통해서였다. 여기서 피아노를 연주하더니 이내 그룹의 멤버였던 색소폰 연주자 마크 터너와 듀오 앨범<Temporary King>(2017)을 발표한 후 이렇게 자신의 쿼텟 앨범을 발표하게 되었다.
이 피아노 연주자를 이야기할 때면 트리오 배드 플러스를 빼놓을 수 없다. 15년 이상 트리오에 머무르면서 그는 역동적이고 진보적인 연주를 펼쳤다. 기존 피아노 트리오의 전형을 넘어서는 현대적 울림의 연주였다. 그러나 2017년 트리오를 탈퇴한 후 그의 연주는 보다 온건하고 전통적임 방향으로 움직였다. 드럼 연주자 앨버트 투티 히스, 연주 색소폰 연주자 시머스 블레이크 등과 함께 한 연주들이 좋은 예이다. (이에 앞서 나는 그가 2013년 사천국제재즈워크숍에 빌리 하트 멤버들과 함께 강사로 내한했을 때 그가 배드 플러스와는 다른 방향의 연주를 생각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워크숍 공연에서 스탠더드 곡들을 매우 느긋하게 연주했던 것이다.)
빌리 하트 쿼텟 시절 함께 했던 베이스 연주자 벤 스트릿 그리고 드럼 연주자 에릭 맥퍼슨과 트리오를 이루고 트럼펫 연주자 톰 하렐을 불러 쿼텟을 이루어 연주한 이번 앨범은 2017년 빌리지 뱅가드 클럽 공연을 담고 있다. 이번에도 에단 아이버슨이 이끄는 밴드의 연주는 매우 전통적이다. 스탠더드 곡을 곱게 낭만적으로 연주한다. 톰 하렐의 트럼펫도 자신의 리더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화려함 대신 담백하게 연주한다. 누구 하나 뜨거워지는 법 없이 겸손하다. 앨범 타이틀이 “관습”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안정적인 연주라지만 감상이 심심하지는 않다. 전통적인 만큼 느린 템포에서도 스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정적인 면이 감상을 편안하고 즐겁게 한다. 나아가 이 부드러운 연주가 에단 아이버슨의 것임을 생각하면 그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확실히 이 전통적인 연주는 ECM의 카탈로그에서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 후반작업에서 그리 공간적인 효과를 주지 않은 듯한 사운드 또한 무엇인가 다르다는 느낌을 강화한다. 그래서 기존 ECM의 앨범들과 다른 소리, 음악을 들으며 왜? 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감상자가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이에 대해 맨프레드 아이허는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왜? 그러면 안되나? 어쨌건 좋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