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Playing: Movie Themes – Dave Grusin (GRP 2004)

  재즈 애호가들에게 데이브 그루신은 GRP 레이블의 주인으로 70년대와 80년의 퓨전 재즈의 인기를 이끌었던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의 퓨전 성향의 앨범들은 많이 감상되고 있다. 하지만 재즈 밖의 일반적인 음악 감상자들에게 데이브 그루신은 영화 음악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 그의 영화 음악 작업은 재즈 연주 활동만큼이나 오래된 것으로 첫 작업은 1967년 버드 요킨 감독의 <Divorce American Style>이었다. 그 이후 재즈 연주와 병행하여 꾸준하게 영화 음악을 작곡했었고 그가 참여한 영화들 대부분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덩달아 영화 음악 작곡가로서 그의 지명도는 높아졌다.

이번에 발매된 데이브 그루신의 신보는 그 타이틀이 의미하듯 그의 영화 음악 곡을 새롭게 연주한 앨범이다. <My Heart Is A Lonely Hunter>(1968)를 시작으로,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Golden Ponds>(1981), <Tootsie>(1978), <The Champ>(1979), 그리고 가장 최근 작인 <Random Hearts>(1999)의 주제 음악까지 총 10편의 영화에서 선별한 15곡이 연주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1987년에 이미 <Cinematic>이라는 앨범을 이미 녹음했었기에 영화 음악 모음집은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 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 음악들을 오로지 데이브 그루신의 솔로 피아노로만 연주되었다는 점은 새로운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데이브 그루신이 무반주 솔로 피아노 앨범을 녹음한 것은 필자가 기억으로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갑자기 왜 다시 영화 음악을 연주한 것일까? 왜 새로운 작곡을 담은 앨범을 녹음해야 할 이 시점에서 다시 잘나가던 시절의 자기 모습을 새롭게 떠올리고 있을까? 사실 엄밀히 생각해 보면 과거를 향한 데이브 그루신의 시선은 이미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매번 자신의 새로운 곡들로 앨범을 만들어왔던 그는 10년 전부터 거쉰을 시작으로 듀크 엘링턴, 헨리 맨시니, 레너드 번스타인 등 아마도 그에게 영향을 주었을 인물들을 앨범마다 차근차근 상기해왔다. 따라서 이번 앨범은 그 과정상 자연스럽게 자신을 추억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앨범에서 보여주는 데이브 그루신 자신에 대한 추억은 향수,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대한 막연한 허무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연주들은 보통의 솔로 피아노 연주들이 보여주곤 하는 내적인 면에의 집중, 유약한 자기표현보다는 노장의 여유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외향성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마치 이 영화 음악들을 작곡할 당시 직접 가 편집된 영화를 보거나 시나리오를 읽고 느꼈던 데이브 그루신 본인의 감동을 새로이 재현하려는 듯 각 곡들의 흐름은 매우 극적이다. 이로 인해 혹시 이러한 연주들이 각 영화음악의 편곡 이전의 순수한 원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한편 이 앨범에서 연주되고 있는 영화 음악들이 단순히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닌 사랑의 테마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특이하다. 영화 <Tootsie>의 주제곡 “It Might Be You”같은 달콤하고 낭만적인 발라드 외에 영화 <The Firm>에서 나오는 “Mud Island Chase”같은 긴박함이 느껴지는 곡까지 매우 다양한 정서의 곡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각 수록곡들이 말 그대로 영상에 종속된 영화 음악이고 또 그 선택된 영화들 가운데 코미디나, 멜로물 외에 스릴러 풍의 영화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서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성으로 인해, 그리고 솔로 연주라는 것으로 인해 다른 어느 때보다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데이브 그루신의 모습이 강력하게 부각되고 있다. 복잡하거나 어지러운 화성의 진행을 즐기고 있지는 않지만 멜로디보다 내적인 긴장을 제시하고 이를 다시 풀어 나가는 식의 연주는 기존 퓨전 스타일의 연주를 들어왔던 감상자들로서는 분명 낯선 부분이다. 그리고 피아노를 애무하듯 동그랗고 가벼운 질감의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기존과 달리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터치도 새롭다.

사실 이번 앨범이 솔로 영화 음악 연주를 담고 있다고 들었을 때 필자는 내심 그가 70세가 되면서 미래의 불확실성을 인식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은 이달에 함께 발매된 군대시절을 회상하는 아련한 데이브 브루벡의 피아노 솔로 앨범 <Private Brubeck Remembers>(Telarc 2004)과 맞물리면서 가중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 앨범에 담긴 데이브 그루신의 피아노 연주가 예상과 반대로 데이브 그루신의 건재를 증명하고 있어 매우 반갑다. 나아가 이 앨범이 데이브 그루신에게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예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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