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 Me – Moon (Verve 2018)

많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 같은 편안한 노래

나는 파란색이나 갈색 계열의 옷을 즐겨 입는다. 그것이 내게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보라색 외투에 빨간색 바지를 입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일 뿐. 실제로는 내게 잘 어울리지 않음을 안다. 아주 파격적인 기회가 아니라면 내가 보라색과 빨간색으로 매칭한 옷차림을 하는 날은 없을 것이다.

확실히 누구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의 옷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유명 디자이너라 해도 모든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음악도 그런 것 같다. 연주자나 보컬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해주는 특정한 스타일의 음악이 있다. 그것은 음악의 완성도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보다는 한 연주자나 보컬이 앨범마다 상이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 <Kiss Me>의 주인공 문혜원은 그렇다면 어떤 음악이 가장 잘 어울릴까? 나는 팝 적인 색채가 가미된 도시적인 질감의 재즈라 생각한다. 이것은 그녀의 도시적인 외모만을 보고 내린 막연한 판단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그녀가 해온 음악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그녀는 윈터 플레이의 보컬이었다. 지난 2008년 윈터 플레이의 첫 앨범 <Choco Snow Ball>부터 2016년 그룹이 리더인 트럼펫 연주자 이주한의 솔로 프로젝트로 바뀌기 전까지 활동했다. 8년여의 활동 기간 동안 그녀는 그룹의 상징이었다. 팝 재즈를 표방하며 통통 튀는 밝은 사운드와 쉬운 멜로디, 감각적인 연주를 결합했던 그룹의 음악에 그녀의 목소리와 담백한 노래는 최적의 것이었다. 그 결과 윈터 플레이는 국내외에서 적지 않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문혜원 또한 그룹의 인기와 별도의 개인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윈터 플레이의 음악은 그녀의 개성이 수용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주한의 개성이 더 많이 반영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방향으로 음악을 진전시킬지 무척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평소 하던 스타일 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것이 내 선입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현명하게도 그녀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앨범 <Kiss Me>는 지난 10년간 우리를 매혹시켰던 그녀의 매력,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적 옷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먼저 그녀가 노래한 10곡의 면모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앨범에서 그녀는 “In A Sentimental Mood”, “Speak Low” 등의 스탠더드 곡도 있기는 하지만 디온 워익의 “The April Fools”, 샤데이의 “Kiss Of Life”, 식스펜스 논 더 리처의 “Kiss Me”, 홀 앤 오츠의 “Private Eyes”, 프랑크 시나트라 부녀의 노래나 로비 윌리엄스와 니콜 키드만 듀오의 노래로 유명한 “Something Stupid”, 이탈리아 곡으로 세계적으로 수 없이 노래된 “Quando Quando Quando” 같은 팝 히트곡을 주로 노래했다. 여기에 일본의 키보드 연주자로 미국에서도 활동했던 유타카 요코쿠라의 “Brazasia”, 우리에게는 나미의 “슬픈 인연”으로 익숙한 하시 유키오의 히트곡 “Kizuna (정, 絆)”등의 곡은 일본에서 인기를 얻었던 팝 성향의 곡들이다.

이 곡들은 “Private Eyes”처럼 주변의 권유로 부른 곡도 있지만 주로 평소 그녀가 첫 앨범을 녹음하면 노래하리라 생각했던 곡들이다. 그래서일까? 이들 곡에 대한 그녀의 노래는 원곡의 이미지를 반영하면서도 애초 그녀를 위해 씌어진 곡이었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예를 들면 “Kiss Of Life”의 경우 원곡을 노래한 샤데이와 그녀의 목소리 톤이 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 전에 원곡에 비해 한층 밝고 가벼운 분위기가 이 곡을 다시 부르기가 아닌 새로운 곡처럼 느끼게 해준다.

“Quando Quando Quando”도 그렇다. 이 곡을 문혜원은 이미 윈터 플레이 시절에 노래했던 적이 있다. 이 곡은 2017년 3월 배우 사카조우 미키가 일본 TBS의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해 요즈음 마음을 울리는 곡으로 소개되어 다시 인기를 얻기도 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번 첫 앨범에서 다시 노래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다시 노래하면서 그녀는 한층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노래했다. 그래서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결이 있는 벨벳 같은 목소리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한편 “Private Eyes”의 경우 개인적으로 8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블루아이드 소울 듀오 홀 앤 오츠의 곡을 노래해 흥미로웠는데 이 곡에서 그녀는 도시적 질감의 사운드에 자신의 목소리가 가장 잘 어울림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처럼 모든 곡들이 그녀를 위해 씌어진 것 같은 자연스러운 맛은 그녀가 이번 앨범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명확히 인식했기에 가능했다. 윈터 플레이 시절과 달리 그녀는 이기적인 관점에서, 노래의 기본 이미지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표현 방법, 음악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먼저 고려했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강점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한편 이번 앨범에서 문혜원의 매력이 돋보이게 된 데에는 앨범의 제작부터 기타와 피아노 연주까지 담당한 고로 이토를 비롯한 일본 연주자들의 편곡이 큰 역할을 했다. 고로 이토는 보컬과 기타로 구성된 듀오 나오미 & 고로의 활동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 활동을 통해 그는 보사노바를 중심으로 한 브라질 음악에 대한 수준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보컬에 맞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는 팝, 재즈, 보사노바 등의 여러 스타일을 오가는 한편, 키보드, 색소폰 등이 전면에 서는 꽉 찬 사운드부터 기타와 보컬의 듀오 등의 편성 변화로 문혜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고로 이토의 지원은 문혜원을 행복하게 했다. 앨범을 녹음하면서 그녀는 일본에서 일본인 연주자들과 앨범을 녹음해야 하는 도전적 상황을 맞이했지만 실제로는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행복한 상태에서 노래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앨범 녹음 후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기에 앨범 전체가 기분 좋은 에너지로 가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앨범을 녹음하면서 그녀가 느꼈던 행복이 고스란히 노래를 통해 드러난다. 그래서 “Kizuna”처럼 애상의 정서를 머금은 곡마저도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한 긍정의 정서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번 앨범의 매력은 긍정의 정서가 아니라 그것의 절제에 있다. 슬픔을 지우는 것에서 나아가 그녀는 행복에 무작정 도취되는 것 또한 경계했다. 감정의 극한을 어지럽게 오가는 대신 그 사이의 어느 중간 지점에서 노래했다고 할까?

그래서 “Brazasia”는 이국적이고 축제적인 분위기의 노래에서 그녀는 열광보다는 흐뭇한 미소의 느낌이 강하고, “Kiss Me”는 사랑의 기쁨을 전하면서도 그것이 마냥 가볍게 흐르지 않는다. 트롬본 연주자겸 보컬 도쿠와 듀엣으로 노래한 “Something Stupid”도 마찬가지. 이 곡에서 그녀는 사랑의 행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를 수줍어하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소녀 같다. 개인적으로 편곡이나 노래 모두에서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이라 생각하는 “April Fools”도 그렇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황홀한 느낌을 담은 이 곡을 그녀는 사랑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여인보다는 너무 드러내면 사랑이 달아날까 애써 평정을 유지하는 여인이 되어 노래한다.

스탠더드 곡 “In A Sentimental Mood”, “speak Low”은 어떠한가? 최소한의 편성으로 노래한 이들 곡에서도 그녀는 재즈 보컬로서의 기교를 과장하는 대신 담백한 창법으로 낭만 속에서도 무대에서 눈을 감고 노래하는 듯한 도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처럼 행복한 감정을 차분하게 절제해 노래했기에 그녀의 모든 노래는 편안하다. 감상자의 시간을 일체의 긴장이 없는 평온한 상태로 이끈다. 그리고 낭만적으로 만든다. 그냥 우리의 삶 한 발자국 뒤에서 들리는 배경 음악 같다. 마치 천사가 우리를 지켜보면서 흥분을 자제하게 하고 슬픔을 다독이며 조금은 더 나은 하루로 안내하는 것 같다.

글을 시작하며 나는 아무리 유명한 디자이너라도 모든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을 만들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이 대 음악이 옷이라면 문혜원의 음악은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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